망각 속에 빛나는 기억
<밖은 지금 어두워요>
얼마 전 명동예술극장에 올라간 플로리랑 젤레르의 연극 <아버지>는 치매 노인의 시각에서 본 세상을 연극적 방식으로 구축해 치매 노인이 느끼는 혼란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했다. 치매 노인의 세계는 이성의 축이 무너진 세계이자, 그 혼란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비극적이다. 합리적인 세계가 뒤죽박죽되면서 통제 불가능한 세계 속에 던져져 버리는 치매는 이제 극소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호주 극단 The Last Great Hunt의 <밖은 지금 어두워요(It's Dark Outside)>는 치매 현상 중 하나인 일몰 증후군(Sundown Syndrome)을 다룬다. 일몰 증후군은 치매 환자들에게 종종 드러나는 현상으로 낮에는 유순하게 지내다가 해가 지고 나면 안전부절 못하고 불안해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밖은 지금 어두워요>에서 보여주는 치매 노인은 비참하거나 암담하지 않고 현상 자체를 감성적으로 제시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낮에는 온순했던 한 노인, 불안한 기억 속에 사물이 이동하고 무엇이 사실이고 아닌지 혼란스럽다. 해가 지면서 혼란과 초조는 점점 심해진다. 알 수 없는 존재가 노인을 쫓아오고 이를 피해 노인은 어두운 황야로 떠난다. 정체불명의 존재를 피한 여행은 다양한 오브제와 애니메이션, 마임과 인형극을 통해 동화적이고 시적으로 펼쳐진다. <밖은 지금 어두워요>는 언어를 배제한 다양한 연극적 방식을 통해 노인의 처한 상황과 그의 여정을 서정적으로 제시한다. 치매는 암담하고 완치가 매우 어려운 질병이지만, 작품은 노인을 슬프지만 비참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노인의 망각과 혼란을 담담하게 제시하면서 그의 삶을 재조명한다. 노인의 망각은 그가 살아온 기억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주는 세상이 실제 노인이 경험한 황야인지, 아니면 그의 혼란스러운 망상인지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지만 노인의 여정을 진지하고 다정한 눈길로 바라본다.
치매라는 질병을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동정심과 이해를 보여준 <밖은 지금 어두워요>의 제작진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젊은 연극인으로 구성된 극단 The Last Great Hunt이다. 이들은 인형극과 애니메이션, 가면극, 즉흥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새로운 연극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들의 작업이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새로운 양식을 다양하게 결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기존의 보수적인 연극적 방식 이외에 영상이나 인형극 등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를 대신해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한 인형극과 가면극,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결합한 아름다운 동화 <밖은 지금 어두워요>는 세계 보건기구가 정한 치매의 날이자 우리 정부가 정한 치매 극복의 날인 9월 21일 첫 공연을 올려 그 의미를 더한다.
9월 21~24일
성남아트센터 앙상블 시어터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6호 2016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