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지] 배우 전병욱에게 들어보는 연극<깃븐우리 절믄날> - 2부
`거짓말과 시(詩)는 예술이다. 플라톤이 이해했듯이 서로 관련이 있는 예술이다.`-오스카 와일드-
연극 <깃븐우리절믄날>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아래, 경성에서 살았던 젊은 예술가들인 소설가 박태원, 시인 이상과 그들의 친구 정인택, 카페 여급 권영희 연애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이 연극은 당시 실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여자와 세 남자의 복잡한 내면세계와 시대상 그리고 이중적인 예술가의 속마음을 그린 작품이다.
<깃븐우리절믄날>이라는 제목은 이탈리아 작곡가 엘리코 토셀리(Enrico Toselli)의 <세레나데>에 가사를 붙여 취입했던, 현제명의 <소야곡>의 가사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성기웅 연출의 `1930년대 경성 트릴로지` 3부작 중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에 이은 후속작이기도 하면서, <이자람 사천가>와 <청춘, 18대1>에 이은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의 세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1930년대 당시의 서울말과 외래어를 혼용한 감각적인 대사와 영상과 음악을 적절하게 사용한 탄탄한 구성이 극의 재미를 더한다.
이상 役을 맡은 배우 전병욱에게 들어보는... <깃븐우리절믄날>
Q: <깃븐우리절믄날>은 어떤 작품인가?
A: 많이 들어본 제목이라 영화나 드라마같은 작품을 무대로 옮긴 것이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연극<깃븐우리절믄날>은 순수 창작 작품입니다. 1930년대 경성의 이야기로, 일제 강점기 시절의 현존했던 젊은 예술가들, 소설가 박태원, 정인택, 시인 이상과 그 들 사이에 있었던 권영희라는 여인의 연애 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미스터리도 있고,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누구의 말이 거짓일까?’하는 고민을 작품을 보면서 해볼 수 있는 재미가 있는 연극이죠. 또한, 그 시절 청년 예술가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볼 수도 있어요. 빠른 템포의 폭소가 터지는 작품은 아니지만,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고증을 거쳐 만든 작품이기에 픽션과 논픽션이 적절히 혼합이 되어, 1930년대 경성의 분위기와 인물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이 오셔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천재 시인 ‘이상’을 연기하고 있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가?
A: 올해 들어 연극을 연달아 4편째 하고 있어요. 특히 <깃븐우리절믄날>은 제가 너무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제가 굉장한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제 삶 속에서 느껴지는 고민, 행복, 즐거움을 이 작품 통해 더욱 느끼고 있어요. <깃븐우리절믄날>을 하면서, 나의 지금의 젊은 날이 얼마나 기쁜지, 아니면 나중에라도 얼마나 기뻤었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기쁜 젊은 날`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상’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서 많은 질타를 받고 있기도 한데, 사실 실제로 ‘이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누구나 각자 다른 ‘이상’의 이미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 다름 속에 있는 공통점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지요. 연애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서 시인 ‘이상’이 작가로서 삶 속에서 느껴지는 고뇌, 우울함, 꿈, 좌절 등을 제 자신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관객들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Q: 시인 ‘이상’과 배우 전병욱의 닮은 꼴 찾기?
A: 이상과 저의 가장 닮은 부분이 있다면, 굉장히 재미있는 점인데 `띄어쓰기`를 싫어한다는 것이에요. 저도 띄어쓰기를 싫어한지 한 10년 정도 되었거든요. 그리고 닮은 점이 또 있다면, ‘허세가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생각해도 제가 좀 허세가 있는 편인데. 그런 것이 타인들에게 ‘오만하다, 건방지다’라는 오해를 종종 불러 일으키기도 하거든요.
일반적으로 사람을 여우나 곰에 빗대어 표현하는데, 저는 여우가 아닌데 저를 여우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세요. 사실 여우가 되고 싶기도 한데, 어쩔 수 없는 곰이라서... 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제가 미련하고 바보같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이러한 ‘여우의 탈을 쓴 곰’과 같은 모습이 이상과 닮은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자유연애와 보수적인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이상’의 연애관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는가?
A: 연애관에 있어서 딱 정해져 있지 않은 혼란스러움이 있는데, 그것이 이상과 비슷한 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상은 이 작품 안에서 어떤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할 때, 혹은 다가왔을 때 도망가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찌 보면 예전에 했던 <썸걸즈>에서의 캐릭터와 닮은 구석이 있다고 보는데, 그 순간만큼은 충실히 사랑을 하지만, 막상 누군가에게 묶인다는 현실에서는 도망가고픈, 그 어떤 자유연애를 꿈꾸는 거죠. 저는 항상 꿈꾸는 자유연애를 생각하면서 한 사람과 지내고 싶습니다.
Q: 2008년을 돌아보면?
A: 올해 초에 <아이 러브 유 비코즈>를 끝내고, 봄부터 연극 네 작품을 연달아 했기 때문에, 제가 다작을 하는 배우로 비춰질 수 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올해 초에 제 능력보다 더한 욕심을 냈기 때문에, 그것이 고스란히 제 자신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욕심을 버리는 과정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사람과 작품을 접하면서 제가 배울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어떤 한 작품에 모든 걸 쏟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그러다 보면 자신의 욕심 때문에 과해져서 나뿐만이 아닌 타인에게도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주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다작을 하든 한 두 작품을 하든 되도록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도 모르게 자꾸만 욕심이 생겨서 스스로를 괴롭히기 때문이지요. 저를 지켜보시는 분들과 제 자신에게 자꾸만 인정받고 싶은 맘이 생기는데, 때로는 그것을 버릴 필요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내년에도 연극과 뮤지컬 구분없이 꾸준히 할 생각이고, 몇 작품은 벌써 계획되어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모습으로 여러분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Q: 차기작과 앞으로의 계획?
A: 우선은 제일 먼저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라는 창작 초연 뮤지컬로 찾아뵐 예정이에요. 예전에 워크숍을 통해 발표되었던 <난중일기에는 없다>라는 연극이 뮤지컬<영웅을 기다리며>로 재탄생되었어요. 요즘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꽤나 느낌이 좋고, 재미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관객들이 많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들고, 거기에 더하여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보고나면 ‘좋은 공연을 보았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작품일 것 같아요. <영웅을 기다리며>는 실제로 난중일기에서 없어진 3일 간의 행적을 그리고 있는데, 저는 거기에서 일본 무사 ‘사스케’라는 역할을 맡았어요. 사실 ‘이순신’ 역할을 제의받기도 했지만, 지금 저의 단계에서는 욕심을 내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절했어요. 앞으로는 제가 가진 것을 숨기고 조금씩 보여드리려고 해요. 그것이 어쩌면 더 길게 여러분을 뵐 수 있고, 제 자신도 배우로서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요.
Q: 관객들에게 한 마디?
A: 2008년이 경제도 어렵고 여유로웠던 한 해는 아니었지만, 내년에는 좀 더 잘되리라는 믿음을 가져봅니다. 항상 따뜻한 마음 잃지 마시고, 맞이하는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다 잘되어서 부자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출연하는 작품 꼭 보러 오십시오. 항상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극 <깃븐우리절믄날>
일시: 2008년 11월 25일 ~ 2008년 12월 31일 /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문의: 02-708-5001
* 정정(訂正): 영상에 게재된 시인`이상`의 본명 김혜경이 아닌 `김해경`입니다. 이를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