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을 표현하는 안무 <백조의 호수>
매튜 본의 공연을 처음 본 건 2000년 즈음 런던에서였다. 그때 나는 영국에서 유학 중인 학생이었고, 매튜 본은 요즘 말로 가장 핫한 안무가였기에 그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를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었다. 발레 전공자인 내게 <백조의 호수>는 지겨울 만큼 익숙한 작품이었음에도,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충격을 주었다. 아름다우면서도 강렬한 언어가 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나를 가장 흥분시켰던 건 사물의 속성을 안무로 표현한 점이다. 일반적으로 백조는 겉모습 때문에 아름답고 우아한 동물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백조를 별로 볼 일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더), 알고 보면 굉장히 사납고 무서운 남성적인 느낌에 가까운 새다. 매튜 본은 이러한 백조의 성질을 극 안에서 아주 잘 표현해냈다. <백조의 호수>에서 가녀린 발레리나 대신 건장한 남자 무용수를 만나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내가 매튜 본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춤이 테크닉에 치우치지 않고 유쾌하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매튜 본은 이건 발레, 이건 재즈, 이런 식으로 장르를 구분 지으면서 춤을 구성하지 않는다. 특정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장르에 상관없이 다양한 장르의 춤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한 장면 안에 발레, 디스코, 플라멩코 등 여러 장르의 춤을 볼 수 있다. 표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인지 공포면 공포, 즐거움이면 즐거움, 그런 에너지를 잘 표현하는데, 그게 가장 잘 드러났던 신이 4막에서 왕자가 악몽을 꾸는 장면이었다. 침대 밑에서 백조 무리들이 하나둘씩 등장할 때의 섬뜩함이란. 왕자가 느끼는 두려움을 그보다 더 훌륭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내가 추구하는 것 역시 그 장면이 가진 에너지를 안무로 표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매튜 본의 공연은 나의 생각을 더 확고히 해줬다(<영웅>에서 추격 신은 추격이라는 느낌 자체를 표현하고자 하는 접근 방식으로 짠 안무였다. 어떤 장르의 안무를 보여주겠다가 아니라 추격이라는 에너지에 맞게 여러 춤을 믹스시켰다).
영국에서 유학 생활은 생각의 터닝 포인트였다.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에서 안무에 접근하게 됐는데, 그렇게 한 가장 큰 장본인이 매튜 본이다. 같은 세대의 예술가로서 추구하는 에너지가 비슷하게 느껴져 그의 공연을 보면 공감하게 되고, 그만큼 큰 자극을 받게 된다. 이보다 더 좋은 자극제가 또 있을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5호 2012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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