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영 조명디자이너
내가 <아이다>를 처음 본 건 2000년대 초반 브로드웨이에서다. <아이다>를 본 사람이라면 조명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풍성한 조명 디자인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공연을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빨강, 파랑, 노랑과 같은 원색 계열의 컬러를 사용하는 데도 세련될 수 있다니. 원색은 촌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보통 사용을 꺼리지만, <아이다>는 과감하게 원색을 사용함으로써 강렬한 효과를 냈다. 하지만 내가 <아이다>를 내 인생의 작품으로 꼽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이다>를 통해 조명 큐잉(Cueing)의 중요성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음악에 맞춰 바뀌는 조명 변화가 기가 막혔다. 예를 들어, 박자가 ‘빠바밤 빰빰’이라면 거기에 맞게 조명도 일일이 다 바뀌었는데, 그때의 임팩트는 몇 배로 커졌다. 그게 무척 인상적이었던 터라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공연 앨범을 샀다. 집에서 혼자 음반을 들으면서 내 나름대로 박자를 나눠 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조명디자이너 나타샤 케츠(Natasha Katz)가 여성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두 배의 충격을 받았다. 그때의 좌절감이란.
그날의 충격이 영향을 준 작품이 <바람의 나라>다. 그 전에는 비트를 나눌 줄 몰라서 대충 감으로, 또 뭉뚱그려서 한 조명으로 처리했다면 <바람의 나라>에서는 음악을 따라가는 조명 디자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뮤지컬에서 음악의 변화는 곧 정서의 변화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조명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단순히 색깔이 바뀌는 게 아니라 각도, 조명기의 변화 등이 여기 다 포함된다). 어떤 음악을 듣든 어떻게 비트를 쪼개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반복해 들었고, 공연을 볼 때 조명 큐를 어떻게 바꾸나 유심히 봤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 그때부터 한 작품에 들어가는 조명 큐 사인이 몇 배, 몇 십 배 가까이 많아졌다. 한 예로, <영웅>의 조명 큐 사인은 500개다. 큐잉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확실히 음악을 잘 타는 조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 것 같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6호 2012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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