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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AST VS CAST] <블러드 브라더스> 미키·에디 [No.131]

글 |송준호 사진제공 |창작컴퍼니다 2014-10-07 5,514
쌍둥이 형제의 예정된 비극



<블러드 브라더스>는 ‘핏줄(연극)’, ‘의형제(뮤지컬)’ 등 다른 이름을 달고  오래전부터 한국 관객과 만나온 작품이다.  웨스트엔드에서는 더 오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시간과 국경을 초월한 작품의 보편적 정서는 익히 알려진 대로 쌍둥이 형제의 엇갈린 운명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계급 차에 따른 빈부 갈등도 있다.  이 작품에는 군데군데 희극적 요소가 많지만,  이처럼 예측 가능한 비극의 복선 때문에 마냥 웃을 수 없게 한다. 


미키  조정석 vs 송창의                 
                                                                         
1막 내내 7살로 등장하는 쌍둥이들은 유년기부터 대비되는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극의 절반은 이처럼 쌍둥이 형제의 운명이 엇갈리게 되는 어린 시절에 할애된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아이 연기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남겨진 아이’ 미키는 첫 등장부터 무대를 휘저으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조정석의 미키는 전형적인 개구쟁이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시종일관 에너지가 넘친다. 이 역동적인 에너지는 신파에 가까운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는 <찰리 브라운>이나 <바람의 나라>에서도 아역을 맡았지만, 여기서는 아역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이처럼 뛰어논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뜩이’는 그가 원래 지닌 짓궂음이 효과적으로 구현된 결과였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그런 자신의 개성을 캐릭터 안에 담았다. 땅바닥에 누워서 침을 2m 높이까지 뱉거나, 바지 지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움직이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그의 모습은 그냥 꼬마 자체다. 그래서 성인 배우들이 아역을 할 때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송창의는 하층민의 생활상이 잘 느껴지는 미키를 보여준다. 머리부터 얼굴, 옷까지 모든 게 꼬질꼬질하다. 코를 후비다가 그 손을 입에 넣는가 하면 엄마 옷에 모른 척 닦기도 한다. 분장을 해도 부티가 나는 조정석보다 이런 점에서 캐릭터 부합도는 높다. 그의 미키는 좀 더 순수하고 귀엽다. 단, 배우 본인의 점잖은 이미지 탓에 코믹한 설정에서 웃음의 파괴력은 덜하다. 조정석이 딱 부러지는 성격의 미키라면 송창의는 종종 멍한 모습을 보여준다. 에디와 이별할 때는 영문도 모른 채 보냈다가 나중에 그의 집에 찾아가 친구의 부재를 확인하고 혼자 쓸쓸해하는 장면에서는 송창의의 연기와 노래가 더 효과적이다. 

미키와 에디의 삶이 극적으로 갈라지는 2막에서는 두 배우의 차이가 극명해진다. 14세로 등장하는 초반부에서 조정석은 덩치만 커진 꼬마 같지만, 송창의는 이미 성인의 느낌이다. 송창의는 청년기부터 벌써 남자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장승조 에디와 함께할 때는 그의 여성스러움과 잘 대비된다. 미키와 에디가 처음으로 충돌하는 장면에서 조정석은 돈을 에디의 얼굴에 뿌리고, 송창의는 허공에 뿌린다. 조정석이 박탈감과 열패감을 그 대상인 에디에게 직접 투사한다면, 송창의는 이런 계급 갈등을 빚은 세상을 향해 분노하는 것 같다.  

2막의 갑작스러운 전개 때문에 감정 변화의 증폭은 둘 다 크다. 특히 조정석은 감옥 신 이후 정신이 붕괴돼 갑자기 신경질적이고 불안한 미키가 된다. 반면 1막에서 멍한 눈빛을 보였던 송창의는 2막의 넋을 놓은 연기에서 상대적 이점이 있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연기에선 더 큰 설득력을 얻는다. 엄마에게 진실을 듣게 되는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다. 경악과 원망, 질투와 분노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이 클라이맥스에서 조정석은 분노를 발산하는 반면, 송창의는 회한과 원망이 담긴 절규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에디  오종혁 vs 장승조                  
                                                                         
급격한 상황 변화를 겪는 미키에 비해 에디는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인물이다. 부잣집에서 곱게 자라 한없이 해맑기만 한 ‘도련님’이다. 미키와 어울릴 때를 제외하면 인상적인 상황 변화도 없다. 이런 인물의 경우 어느 정도 표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종혁의 꼬마 에디는 순박하다 못해 어리바리한 느낌이다. 미키와 처음 만나서 그의 거친 말투나 환경에 흥미를 갖는 1막에서 이런 어리바리함은 미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아이돌 출신이 무색하게 미키의 말 타는 놀이를 흉내내는 연기는 흡사 각목처럼 뻣뻣하다. 하지만 그가 설정한 이런 유약하고 바보 같은 에디는 충분히 효과적이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화초처럼 자란 환경이 밝기만 한 인성으로 잘 표현된다. 

장승조의 에디는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다. 머리부터 옷, 말투까지 모든 게 단정하다. 오종혁의 에디가 순하고 내성적인 아이라면 장승조는 자신의 음색을 살려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한다. 수줍음도 없어 미키에게 말도 잘 건네고 자기 표현도 잘한다. 자기 집에 놀러온 미키를 내쫓는 엄마에게 화를 내는 장면에서 두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며 분을 못 참는 연기는 작위적이지만 귀엽다.  
 
청소년기에 이르면 두 사람의 성정은 역전된다. 유약하게만 보였던 오종혁의 에디는 급격히 남자다워지고 미키와 대등해진다. 미키의 여자 친구 린다에게 노래를 부르며 은근슬쩍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에선 노련한 ‘선수’ 같기도 하다. 반면 장승조는 글로 배운 연애법으로 미키에게 고백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장면은 잘 소화하지만, 하이톤의 음색 때문인지 린다에게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는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이런 일부 장면을 제외하곤 에디 캐릭터는 감정의 변화를 표현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든 성장한 미키와 달리 에디는 여전히 유아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키가 “난 어른이 되었는데 넌 아직 애야”라고 화내는 장면은 두 에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이 부분에서 오종혁과 장승조 둘 다 미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쓸쓸하게 돌아선다. 

 
진실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은 이제껏 쌓아온 드라마의 무게가 허무할 정도로 짧게 정리돼버린다. 특히 이 대목에서 에디는 충격에 빠진 사이 감정을 드러낼 새도 없이 죽음을 맞는다. 총자루를 쥔 미키에게 시선이 모아지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두 에디 모두 어색하고 불안해 보이는 건 이런 까닭이다. 배우의 역량이 아니라 캐릭터상의 한계다. 그래도 오종혁은 찰나나마 미세하게라도 자신이 받은 충격을 표현하려 애쓴다. 장승조는 그럴 새도 없이 총소리와 함께 쓰러진다. 극 중 삶에서는 미키가 불쌍했지만, 무대 위에서는 에디의 처지가 더 애처롭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1호 2014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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