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연주와 불 뿜는 묘기를 부리는 곡예사였던 기 랄리베르테는 1984년에 캐나다 퀘벡에 둥지를 틀고 ‘태양의 서커스’라는 이름의 공연단을 창립했다. 거리 공연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기치를 내건 ‘태양의 서커스’는 서커스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현재까지 <오(O)>
날개를 얻은 이카로스
그리스 신화에서 미노스의 노여움을 사 탑에 갇혔던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날아서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것이 너무 신기한 나머지,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너무 높은 곳까지 날아간 이카로스는 날개에 쓰인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버린 바람에 에게해에 추락해 죽었다. 이 신화 속의 주인공 이카로스가 바다에 빠져 죽는 대신에 나무가 우거진 미지의 숲에 떨어진다는 상상에서 또 하나의 아트 서커스 <바레카이>가 탄생했다.
<바레카이> 속의 이카로스는 마법의 숲에서 다양한 생명체들을 만나고, 그들은 이카로스가 다시 하늘을 날 수 있게 돕는다. <바레카이>의 극본과 연출을 담당한 도미닉 샹파뉴는 이카로스를 통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서 역경을 이겨내고 생존하는 주인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 신화 속의 이카로스가 불길 속에서 죽는 이미지가 마치 우주 왕복선이 폭발하고 테러의 화마에 휩싸인 현대 사회를 연상시켰다고 덧붙이며, <바레카이>에서는 이카로스가 숲에서 얻은 사랑과 희망의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로맨틱한 영웅의 모험담에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도미닉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카로스가 우연히 다다른 숲에 사는 기묘한 캐릭터들은 각자 자신만의 특기를 갖고 있어, 에피소드의 나열처럼 다양한 서커스 액션이 연이어 펼쳐진다. 인간 저글링 곡예인 이카리안 게임과 가는 막대 위에서 펼치는 핸드 밸런싱은 민첩성과 균형 감각을 요구하며, 공중에서 후프와 그네, 밧줄 등에 의지해서 선보이는 곡예 연기들은 우아함과 유연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카로스의 숲 속 친구들은 우스꽝스러운 광대 연기와 파워풀하고 로맨틱한 춤도 선보인다.
인간 신체의 움직임의 가능성을 확장한 기예들을 임의로 나열하지 않고 정해진 스토리 전개에 어울리도록 구성하고 배치했다는 점에서, <바레카이> 역시 ‘태양의 서커스’의 특징을 따른다. 그런 맥락에서 날개를 잃고 숲 속 세계로 낙하한 이카로스가 공중에 매달린 그물에서 민첩하고 능숙하게 곡예를 선보이는 장면은 <바레카이>를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요소들
<바레카이>의 무대디자이너인 스테판 로이는 숲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 뒤쪽에 300그루가 넘는 나무들을 세웠다. 그중 20그루의 나무는 공중 곡예에 활용되기도 한다. ‘캣워크’라 이름 지어진 계단은 바닥에서 무대 꼭대기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등장인물들이 숲 속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숲 속의 오두막 같은 ‘룩아웃’은 무대 중앙, 관객의 머리 위에 위치해 있어서, <바레카이>의 등장인물들은 무대 전면과 깊숙한 곳, 천장을 오가며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이 신비로운 세트는 이야기와 다른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춰 디자인되었다. 무대 이미지는 미지의 숲에 사는 생명체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표현하면서도, 줄거리와 의상, 음악과 일관된 컨셉을 공유하고 있다.
숲 속 생명체로 등장하는 배우들이 입은 의상은 이시오카 에이코가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서 디자인했다. 배우들이 아슬아슬한 곡예를 선보이는 서커스의 특성상 그들이 입은 의상은 뛰어난 기능성을 발휘해야할 것으로 짐작된다. 연출가 도미닉 샹파뉴의 설명에 따르면, 영화나 연극, 오페라 등과 달리 곡예의 안전성과 편안함을 보장하는 의상을 제작하기 위한 기술적인 방안을 찾는 데 가장 큰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배우들은 곡예뿐만 아니라 배역에 맞는 연기도 해내야 하기 때문에, 배역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시각적 효과를 주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태양의 서커스’는 음악 역시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어, 각각의 공연 음반들은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바레카이>의 음악을 맡은 비올렌 코라디는 하와이 민속음악과 프랑스 음유시인의 노래, 가스펠과 현대 음악 등을 결합시켜 숲 속의 이국적인 느낌을 표현했다. 다른 나라와 다른 시대에서 온 소리의 조합은 <바레카이>만의 독특한 세계를 표현한다. 이 곡들은 키보드, 드럼, 퍼커션, 베이스, 바이올린, 플루트, 아코디언으로 구성된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며 무대에 등장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 가수(The Patriarch)와 수줍게 숲 속에 숨어서 노래하는 여자 가수(The Muse)의 노래가 극의 분위기를 더한다.
여행하는 태양의 서커스
<바레카이>는 200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초연된 이후, 2006년까지 북미 31개의 도시에서 투어 공연을 가졌다. 2006년 8월 이후에는 북미 대륙 너머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2007년부터는 런던과 빈, 모스크바, 뮌헨, 바르셀로나 등 유럽의 21개 도시에서도 공연되었다. 2010년 벨기에에서 3,000회 공연을 맞기도 했다. 현재까지 600만 명 이상의 관객과 만난 <바레카이>는 2011년에 아시아에 첫발을 들여놓았는데,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대만의 타이페이에서 열린 쇼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공연 팀은 캐나다를 떠나왔을 때와 똑같은 짐을 꾸리고, 4월 6일부터 서울에서 체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태양의 서커스’는 라이선스를 주지 않고 그들이 구축한 시스템과 스태프, 배우진들로 투어 공연을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한결같은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어디든 여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바다 건너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일은 공연에 참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대 장비에도 해당된다. ‘빅탑’이라 불리는 공연장을 포함하여, VIP 고객을 위한 공간과 주방, 사무실 등 자체적으로 전기 공급까지 가능한 하나의 마을이 공연 팀을 따라 움직인다. 여행하는 공연장 ‘그랑 샤피토(Grand Chapiteau, 대형 천막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는 ‘태양의 서커스’의 투어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부심의 한 요소이다. 예로부터 서커스는 유랑 극단이 아니었던가. ‘태양의 서커스’는 관객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떠나겠다는 방랑자의 영혼에 기술력과 예술성, 관객 편의를 위한 마인드까지 갖췄다. ‘바레카이’는 집시 언어로 ‘어디든지’라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바레카이>를 따라 잠시나마 환상의 세계로 여행을 꿈꿔볼 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1호 2011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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