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으며, 믿음과 불신이 교차하는 시대였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대였으며 희망의 봄인 동시에 절망의 겨울이었다.
무엇이든 가능해 보였지만 정말로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는 천국을 향해 나아갔지만 정작 우리가 향한 곳은 그와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유럽의 잔인하고 혹독한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전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사회를 비판하는 동시에 양심을 지키려 애쓰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숭고한 숨결을 불어넣은 감동의 스토리가 파리와 런던을 배경으로 장엄하게 펼쳐진다. 1859년에 출간된 이후 전 세계 2억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명작의 위엄을 보여준 찰스 디킨스의 장편 소설이 동명의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오는 8월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를 미리 살펴본다.
찰스 디킨스의 펜 끝에서 되살아난 역사적 사건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 찰스 디킨스가 1859년에 발표한 『두 도시 이야기』는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해 그녀의 남편을 대신해 단두대에 오른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프랑스 혁명의 광란을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1859년 4월 30일부터 11월 26일까지 주간지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귀족들의 허영과 사치,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했던 1775년부터, 학대받고 핍박당하던 민중들이 자유와 평등, 박애를 외치며 반기를 들고 일어난 1789년 프랑스 혁명 전후의 혼란스럽고 무질서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야기는 에버몽드 후작 형제의 비리를 알게 되었다는 이유로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어 18년 만에 풀려난 마넷 박사가,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파리를 찾은 루시와 재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랜 감금 생활로 인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게 된 아버지의 기억을 되찾아준 루시는 런던으로 돌아가던 중 프랑스 귀족 청년 찰스 다네이를 알게 된다. 욕심에 눈이 먼 삼촌 에버몽드 후작으로 인해 귀족 신분과 프랑스와의 절연을 결심하고 영국행을 택한 찰스는 프랑스 첩자 혐의를 뒤집어쓰게 되지만,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루시의 부탁을 받은 변호사 스트라이버와 찰스와 쌍둥이처럼 닮은 보조수 시드니 칼튼의 도움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지극히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술에 취해 살아가던 시드니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 준 루시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루시가 찰스와 결혼을 약속한 이후였다. 찰스 다네이의 정체를 알면서도 딸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승낙한 마넷 박사와 짝사랑하는 여인의 친구로 곁에 남은 시드니의 축복 속에서 루시와 찰스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난다. 옛 하인을 구하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간 찰스는 혁명 정부에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는다. 이를 알게 된 루시와 마넷 박사는 그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로 가지만, 혁명에 앞장섰던 마담 드파르지는 에버몽드 일가에 대한 복수에 눈이 멀어 찰스 가족 전체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이를 알게 된 시드니는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루시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찰스를 구출하고 그를 대신해 단두대에 오른다.
찰스 디킨즈는 『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대상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간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을 변화와 부활의 위대한 상징으로 간주하면서도 혁명 이후 각종 부조리와 잔혹한 폭력을 저지르는 시민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숨기지 않는다. 혁명의 이념을 넘어 증오심에 불타오르던 마담 드파르지에게 비참한 최후를 안긴 것은 그 까닭이다. 대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시드니 칼튼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해줄 숭고한 사랑과 희생을 강조한다. 이 작품이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연애소설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드니 칼튼이 보여준 순애보의 역할이 컸다.
뮤지컬로 만나는 <두 도시 이야기>
『두 도시 이야기』는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 발레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재탄생되어 왔다. 뮤지컬로도 네 차례나 선보인 적 있는데 2003년에 공연한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이도물어-두 도시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한국에서 초연되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는 BMI와 ASCAP 뮤지컬 워크숍 출신인 질 산토리엘로가 극본을 쓰고 작사·작곡해 선보인 작품이다. 2007년 10월 미국 플로리다의 아솔로 레퍼토리 시어터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시작했고, 이듬해 9월 18일 브로드웨이 알 허쉬펠드 시어터 무대에 올랐다.
질 산토리엘로가 선보인 <두 도시 이야기>는 원작의 플롯이나 캐릭터 등을 그대로 따른다. 뜨개질로 사건들을 기록하는 마담 드파르지의 노래 ‘The Way It Ought To Be’로 시작되는 공연은 격동적인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찰스와 루시의 사랑과, 루시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시드니의 사랑, 딸을 향한 마넷 박사의 사랑을 촘촘하게 엮어 나간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등장인물들의 흔들리는 사랑과 야망, 운명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30여 곡의 뮤지컬 넘버들은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을 타고 객석에 전달된다. 시드니는 감미로우면서도 매력적인 솔로 곡 ‘Reflection’과 ‘I Can`t Recall’, ‘If Dreams Came True’, ‘The Letter’를 통해 루시를 향한 그의 마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여준다. 감옥에 갇힌 찰스와 그를 구하기로 결심한 시드니가 함께 부르는 ‘Let Her Be A Child’는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 용서를 기원하는 작품의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난 곡이다. 귀족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마담 드파르지의 ‘Out Of Sight Out Of Mind’와 혁명을 일으키는 프랑스 시민들이 부르는 ‘Until Tomorrow’, ‘Everything Stays The Same’ 등은 비장함이 느껴지는 곡이다. 에버몽드가를 향한 마담 드파르지의 증오가 폭발하는 ‘The Tale’ 역시 기대할 만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김문정 음악감독이 이끄는 18인조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라이브 연주로 감상할 수 있어 더욱 기대된다.
이번 공연에는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사용한 무대와 의상을 그대로 활용할 예정이다. 토니상을 네 차례나 받은 무대디자이너 토니 윌튼이 선보이는 철골 구조의 건축물과 시대의 비극을 상징하는 단두대, 시대상을 완벽하게 반영한 데이빗 진의 의상 200여 벌은 관객들을 18세기 파리와 런던으로 초대한다.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파리를 빨강색으로, 런던을 파랑색으로 극명하게 상징화한 조명은 무대 위에서 수차례 두 도시를 오가는 사건들의 이해를 돕는다.
<두 도시 이야기>를 위해 모인 실력파 배우들 역시 관객들의 기대를 모은다. 류정한과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윤형렬이 시드니 칼튼 역을 맡아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남자의 순애보를 보여줄 예정이다. 그의 연적이자 루시가 사랑하는 남편 찰스 다네이 역에는 카이와 전동석이 캐스팅됐으며, 최현주와 임혜영이 두 사람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루시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마담 드파르지 역에는 이정화와 신영숙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마넷 박사 역에는 김도형이 캐스팅되어 작품의 무게를 더해 줄 예정이다.
8월 28일 ~ 10월 7일 / 충무아트홀 대극장 / 1577-3363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6호 2012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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