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나와 마주하기
지현준은 두 번째 연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데뷔 10년 차에 만난 야성미 넘치는 <모비딕>의 작살잡이 퀴퀘그를 통해 좀 더 높고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작은 날개’를 얻었고, 섬세하고 따뜻한 <댄스 레슨>의 게이 댄스 강사 마이클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조금 더 솔직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싶다는 지현준. 그가 새로 선보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카인즈가 궁금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모비딕>과 <댄스 레슨>을 통해 지현준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뮤지컬 신인상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나. 요즘 뮤지컬 공연들 보러 다니면서 더 미안해지더라. 우리 어머니는 고두심 선생님과 연기하는 게 무슨 신과 함께하는 줄 아신다. 큰 효도 하는 기분이다.
<댄스 레슨>의 마이클은 딸 같고 친구 같은 든든한 아들의 이미지 덕분인지 어머니 관객들이 특히 좋아하셨던 것 같다.
연습할 땐 아무도 웃어주지도 않고 박수 쳐 주지도 않고 정말 힘들었다.(웃음) 처음 작품을 접하고 어머니를 많이 생각했다. 밤늦도록 아들을 기다리며 TV 앞에 누워 잠들어있는 어머니 뒷모습을 보면서 ‘자기 인생 다 버리고 살아가는 여자들을 비추는 빛이 저 정도밖에 안되나’ 싶더라.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을 때 존재한다’는 브레히트 대사가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게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하면 쉽고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예전에 게이 바에서 일하는 크리스천인 트랜스젠더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을 통해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들을 많이 버릴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을 쉽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기도 하다. 다행히 관객들이 좋게 봐주셨다. 무엇보다 ‘어머니 연극’이 아닌 ‘여자 연극’으로 받아들여 주신 게 정말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차기작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하 <베르테르>)를 선택한 특별한 까닭이 있나.
고전은 항상 설레게 한다. 보여줄 것도 많고 상상의 여지도 많고. 일상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민들이 가슴 뛰게 하는 것 같다. 물론 일상의 연기에 도전할 수 있었던 <댄스 레슨>이 설레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베르테르> 연습에 <댄스 레슨> 지방 공연 일정까지 소화하느라 그런지 조금 지쳐 보인다.
어쩌다 보니 2인극 페스티벌까지 준비하게 됐다. <라롱드>가 <베르테르>와 공연 일정이 겹쳐서 몇 번 고사했는데 안 할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만들어진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모비딕>에 이어 고두심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면서 문득 내가 뾰족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극장 연극이 필요했다. 연희단에서도 다작은 했지만 이렇게 겹치기 일정으로 출연한 적이 거의 없어서 너무 정신이 없다. 지난 한 달간 너무 힘들었다가 이제 좀 정신을 차려야지 하는 중이다.
세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었던 것인가.
내가 갖고 있는 군더더기들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고두심 선생님과 무대에서 대사를 주고받다가 문득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특별히 하지 않아도 그냥 내 것을 솔직히 꺼내놓는 거 말이다. 그동안은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고 그걸 해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연기라는 게 나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상대 배우, 관객들이 좋아하는 건 뭘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이 넓어지고 있었는데, 무대 위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살아보니 나를 더 많이 버려야겠더라.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작품들이 겹친 거다. 나는 매일 연습실에 나가서 상대 배우와 몸을 맞대고 해야 뭔가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과연 그걸 다 해낼 수 있을까, 지금 갖고 있는 걸 쓰면 욕은 먹지 않을 텐데, 그걸 버리고 솔직하게 나를 보여주다가 욕먹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 욕먹더라도 그냥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이틀 정도 됐다.
그동안은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안에서 연기를 만들어갔던 건가. 그걸 극대화하고 드라마를 끌고 와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저렇게 가면 되겠다’는 계획 아래 뭔가를 만들어내면 모두들 오케이 해주셨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근데 <베르테르>는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카인즈 역을 맡게 됐을 땐 분명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있었을 것 같다.
진짜 남자를 보여주고 싶었다. 베르테르가 보여주지 못하고 저 안에 가둬놓은 남성성 말이다. 내가 얼굴도 크고 대극장 배우라 폭풍처럼 휘젓는 카인즈를 해보고 싶었는데 연출님이 생각하는 공간 안에서는 큰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멈췄다.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잘 들여다보면 카인즈가 해결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작품을 삶으로 끌어들였다면 이젠 내 삶을 작품으로 가져가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게 제일 두려운 거다. <기적의 오디션> 때도 그랬다. 동생이 아픈 걸 한번도 얘기한 적 없고, 나한테 그런 마음이 있는지도 몰랐다. 동생을 챙기는 건 늘 부모님 몫이었으니까. 근데 이름을 부르고 나니 주체하지 못할 감정이 따라오더라. 내가 어떤 인간인지 대강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배우를 하면서 이런 부분을 꺼내봐야지 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내가 모르는 나를 꺼내놔야 하는 거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들이 얼마나 많겠나. 많이 두렵지만 카인즈를 통해서 좀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나를 꺼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카인즈가 보여주는 사랑과 열정이 눈물겨운 것은 누구보다 순수한 인물이라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 열정을 뜨거운 것이라고 본 거다. 남성적이고 진취적인. 지금까지와는 다른 카인즈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원시인(퀴퀘그), 게이(마이클), 이번에는 제대로 남자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들을 하나씩 걷어내보니, 이제야 그 열정이 순수였다는 게 보이는 거다. 몰라서 좋아할 수 있었고 표현할 수 있었던 거다. 내 역할의 비중이 크든 작든 작품 안에서 살아있는 시간은 다 똑같다. 햄릿을 하든, 카인즈를 하든 고민의 시간과 투자해야 하는 생각과 열정은 똑같은 건데 너무 쉽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오늘이 순수 카인즈로 다가가는 첫날이다.
카인즈처럼 누군가를 마음에 품어본 적이 있었나.
온 집안의 포커스가 나한테 맞춰진 탓에 학원 7개씩 다니며 살았다. 그러다 고3 때 처음 가본 독서실에서 ‘여자 사람’을 처음 봤다. 그땐 정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서 아무것도 못했다. 손잡는 것도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베르테르>를 하면서 그 시절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배우가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다잡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그게 한 끗 차이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재밌게 즐기는 순간은. 그래서 바이올린, 피아노, 색소폰 배우고, 무용단에도 가서 이것저것 배워놓았다. 두 달 안에 뭐라도 배워놓으면 기본은 하니까. 성악 레슨도 시작했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웃음) 그동안 늘 뭔가 새로운 것을 하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걸 지속하면서 하루하루를 똑같이 살아야할 것 같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부모님과 아침 식사 같이하고 매일 바이올린 30분씩 연습하면서 말이다. 실력이 느는 데에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시간을 견디면서 즐겁게 살다보면 또 뭔가가 있겠지 싶다.
규칙적인 삶을 사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래도 그게 맞는 것 같다.
햄릿 대사 중에 ‘연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혼의 거울을 들이미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외모의 거울은 안 되니까(웃음) 영혼의 거울이라도 깨끗하게 닦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됐다. 신앙을 갖고 술, 담배를 끊은 것도 그래서다. 어머니한테 짜증내고 게으르게 살면서 관객들에게 사랑을 얘기하고 아픔을 얘기하는 게 아이러니했다. 물론 다른 분들의 진심이 훌륭하다는 걸 알지만 내가 가는 길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생활에서 자신감이 있어야 연기가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거울을 항상 깨끗하게 닦으려는 건 그래야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좋은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라고 먼저 느껴지는 건 그래서인가보다. 무대 위에서도 그 결이 보일 때가 많다.
그게 참 무서운 일이다. 요즘은 내가 무대 위에서 주체라기보다는 어떤 도구 정도의 인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덕분에 나보다는 내 주변에 시선을 두게 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하는 고은 선생님의 시를 좋아하는데, 배우라는 사람들이 길에 있는 아무것도 아닌 꽃 같기도 하다. 고두심 선생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평소 맨발에 매만지지도 않은 머리를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앉아 계신다. 여배우 같지 않아서 참 좋은데, 막상 연기를 시작하면 정말 배우구나 싶다.
서른다섯. 배우에게는 참 좋은 나이인 것 같다.
그러게. 서른다섯은 실패해도 충분히 괜찮은 나이였다. 배우 인생은 마흔부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나보다. 아,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 같다.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9호 2012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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