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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애비뉴 Q> 무언가 꼭 되지 않아도 괜찮아 [No.121]

글 |이수진(공연 칼럼니스트) 2013-11-06 4,366

뉴욕시는 다섯 개의 구와 같은 개념인 보로로 이루어져 있다. 맨해튼, 브롱스, 부르클린, 퀸즈, 스테이트 아일랜드인데, 그 중 ‘뉴욕’ 이라고 하는 곳은 맨해튼을 가리킨다. 우편번호상 행정구역이 New York, NY인 곳도 맨해튼뿐이다. 시티라고 불리는 곳도 이 길쭉한 섬이다. 뮤지컬 배우 라이자 미넬리가 부른 유명한 노래 ‘뉴욕, 뉴욕’의 가사 역시 이 행정구역 상의 뉴욕의 주소와 뉴욕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주 넓지도 않은 이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맨해튼은 그 안에서 또 작은 지역으로 나뉜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우편번호로 나뉘지만 뉴요커들은 각 지역마다 그 특징에 따라 애정 혹은 애증을 담아 애칭을 붙여왔고 지금도 애칭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그리고 길쭉한 섬의 동편 아래 쪽 뚱뚱하게 튀어나온 지역을 알파벳 시티라고 부른다. 보통 이스트 빌리지라고 하는 전통적인 젊은이의 거리이자 한때는 예술가들의 거리였던 지역의 가장 동쪽 끝이다. 정식 애비뉴로 이름 붙이기에는 짧기에 알파벳을 따라 A, B, C까지 있기에 그 지역을 알파벳 시티라고 부른다. 자동차의 마치 임시 번호판 같은 알파벳이 붙은 애비뉴, 이곳은 한 때 이스트 빌리지에서도 가장 바깥 쪽의 안전하지 않은 지역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제는 뉴욕시의 호황 덕분에 핫한 젊은이들의 거리가 된 지 오래다. 이렇게 길게 맨해튼의 지리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난데없이 생겨난 애비뉴 Q 때문이다. 사실 애비뉴 Q가 미국에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데없이 애비뉴 C 너머에, 어딘가 애비뉴 Q가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이 뮤지컬 덕분에 구글 맵에 애비뉴 Q를 치면 뉴욕이 찍힌다. 정말로 갈 데 없는 젊은이들이 끝까지 밀려가서 자신의 청춘의 꿈을 찾아가는 이 뮤지컬이 이제는 정식 고향까지 얻는 것이다.

 

 

꿈 없는 주인공

 

애비뉴 Q의 주인공인 프린스턴은 이름 하나는 근사하지만 실제로는 영어과를 졸업해서 할 줄 아는 게 영어밖에 없는 미국인이다. 국문학과를 졸업해서 할 줄 아는 게 한국말밖에 없다는 한국 대학생의 취업 한탄과 그다지 다를 게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가까스로 취업해서 살 곳을 찾으며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애비뉴 Q까지 밀려온 프린스턴. 하지만 집을 구하면서 동시에 간신히 얻은 직장에 출근도 하기 전에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는 불운을 겪는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직장이 아니다. 이게 웬일인가, 감히 뮤지컬의 주인공이 억 만금보다 더 귀한 ‘꿈’이 없다. 응? 꿈이 없다고? 여태까지 대부분의 뮤지컬의 주인공들은 ‘꿈’ 하나는 확실하게 챙긴 인물들이었다. 아무리 돈이 없고 사랑에 실패하고 고통을 겪든 어떻게 되든 꿈 없는 사람은 뮤지컬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스위니 토드는 복수를 꿈꾸고 오페라의 유령은 크리스틴을 꿈꾼다. 사랑이든 복수든, 성공이든 주인공의 미덕은 ‘꿈’이다. 주인공이 자신을 소개하는 곡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첫 노래부터 되고 싶은 게 없는 인생에 대해 노래한다. 때문에 이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의 이단아다. 작품의 주인공이 힘들게 찾아가는 꿈의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린스턴이 자기 길을 찾지 않는 건 아니다. 프린스턴은 ‘꿈’을 찾는 길 위에 서 있다.

 

타인의 소중한 꿈

 

꿈이 없는 프린스턴은 애비뉴 Q에 와서 자신과 같은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이웃들의 꿈을 엿본다. 프린스턴이 사랑에 빠진 사람은 유치원 보조 교사인 케이트 몬스터. 잠깐 몬스터? 뮤지컬 <애비뉴 Q>의 세상은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겁게 보았던 ‘새서미 스트릿’의 세상이다. 인형과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 케이트 몬스터는 푸른빛이 도는 털투성이 몬스터다. 아마도 그 아버지는 쿠키 몬스터의 사촌쯤 되지 않을까? 그 귀엽던 인형들과 몬스터가 성인이 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주인공들이 성인이다 보니 이 작품은 연소자 관람불가다. 육두문자가 날아다니고 복도 많은 우리의 주인공 프린스턴은 두 여인과 사랑을 나누니 말이다. 프린스턴의 이웃들은 다양하다. 한 번도 정신과 상담 환자를 받아보지 못한 정신 상담사 크리스마스이브, 직장을 못 구하고 매번 아르바이트만 하지만 그마저 잘도 짤리는 니키와 남들은 다 알지만 자기 혼자만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닉키의 룸메이트 로드 등이다. 이 작품은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한 인생을 살고 있음을 유쾌하게, 들이밀지 않으면서도 확실하게 보여준다.

 

 

투어 프로덕션

 

라이브 밴드와 함께 하는 투어 프로덕션은 주인공인 프린스턴과 로드의 인형을 맡은 니콜라스 던컨과 브라이언 역의 크리스토퍼 래그랜드가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배우들은 대체적으로 좋은 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래픽을 과감하게 사용한 자막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주지만 아무래도 영어로 들리는 웃음의 포인트와 자막이 읽힐 때의 포인트의 접점이 다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서 웃음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마도 내한 투어 공연 가운데 가장 정성 들인 자막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잘 짜여진 사랑스러운 19금의 내용과 유머 넘치는 대화와 상황은 두 시간이 좀 넘는 공연 시간 동안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해준다.

 

공연이 끝날 즈음 프린스턴은 자신의 꿈이 뭔지 찾을 수 있을까? 미리 말하자면 찾지 못한다. 느닷없이 그가 꿈을 찾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까? 프린스턴이 아마도, 언젠가는 꿈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프린스턴은 끝끝내 꿈을 찾지 못해도 큰일은 아니다. 이 작품은 뭔가 큰 사람이 되라는 강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청춘들에게 주는 일종의 힐링 뮤지컬이다. 누구나 위인이 되고 누구나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주어진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음을 다정하게 보여준다. 어쨌든 프린스턴은 이 작품 안에서 사랑을 찾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응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다양한 뉴욕의 여러 겹의 사람들이 서로가 가진 편견조차 인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애비뉴 Q>라는 작품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작품의 작가들은 2011년에는 <북 오브 몰몬>으로 다시 한 번 토니상을 휩쓴다. 그 작품 역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터무니없는 긍정성을 잃지 않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백인 몰몬 전도사가 내전 중인 아프리카 국가의 반란군 장군에게 몰몬교를 전도하려 한다는 황당한 내용이지만, 그 안에도 역시나 유머감각과 다정한 인간미가 녹아 있다. 이들 작가들이 아무리 평범한 인생도, 황당한 꿈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런 이야기로 이들은 이미 남들은 인생에 한 번도 손에 넣기 힘든 토니상을 두 번이나 손에 넣었다. <애비뉴 Q>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너의 동료가 여기 있어, 그것도 아주 많이. 하고 손 내밀어 주는, 그런 유쾌한 뮤지컬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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