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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미아 파밀리아> 가닿지 못한 뮤지컬 광대의 자기다짐 [No.122]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MJ Starfish 2013-12-04 4,841

자의식과 작가의식
창작뮤지컬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창작품’은 바로 작가일 것이다. 작품이 한 그릇의 물이라면 작가는 깊은 우물과도 같다. 몇 그릇의 물이라도 길어낼 수 있는 물의 근원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작품의 조물주이다. 신이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듯이 작가는 자기의 작품 안에 자신의 형상을 오롯이 담아낸다. 작품은 작가의 자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거울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형상에 도취되는 순간 그는 나르시스의 결말에 이를 뿐이다. 자의식으로부터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작가의식은 시작된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인간을 향한 신의 감탄은 신의 손길과 호흡을 받은 인간이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 앞에 온전히 독립된 개체로 섰을 때 터져 나오지 않았던가. 미학적 거리감이 있을 때 비로소 작품은 생명을 부여받는다. 조물주의 자의식이 작가의식으로 진화하는 기점은 이 생명체가 홀로 온전히 살아남을 힘을 발휘하는 그때부터이다. 이때 비로소 작가의 주관은 관객이라는 보편적 세계와 화합을, 또는 대결을 시작할 수 있다.

 

작가로서의 이희준, 김운기
이런 면에서 볼 때 이희준은 이야기꺼리를 많이 품은 작가이다. 지속적인 창작을 이어오면서 자기의 색깔을 담아내는 것으로 치자면 그의 이름은 앞줄에 속한다. 대중의 취향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자기 스타일을 쉽사리 접지 않는 고집스러움은 그의 작업이 추구하는 ‘작가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희준 작가와 김운기 연출이 지금까지 해온 작품의 제목을 떠올려보시라. 전형적이지 않다. 일단 소재부터 그렇다. 뱀파이어와 혁명, 그리고 보드빌과 마피아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서사를 이미 품고 있는 소재는 일견 작품의 질감을 두텁게 보이게 한다. 하지만 소재 자체가 갖는 해석의 의미가 적지 않기에 작가만의 서사가 능수능란하게 덧붙여지지 않는 한 자칫 소재주의에 그칠 위험도 많다. 이들의 작업도 그런 한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들의 거창한 소재를 그저 겉멋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이들이 선택하는 형식 때문이다. 이들의 작업은 꽤나 연극적이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극적 효과를 지향한다고나 할까. 공간은 넓지 않고 음악은 4인조 라이브 밴드로 충분할 뿐더러 배우도 많아야 세 명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재료로 그려내는 시공간의 영역은 넓다.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교차시키고 극중극을 통해 한꺼번에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전개시키기도 한다. 그들의 작업을 쇼 뮤지컬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담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한 마디로 복잡하다. 진지해지고 싶은 욕구와 놀고 싶은 욕구가 마구 섞여있는 듯하다.

 

창작자로서 이들이 추구하는 자기 색깔은 이희준이 창작한 여타의 ‘하청’ 작업과 비교할 때 더 분명해진다. 이희준은 <내 마음의 풍금>, <살짜기 옵서예> 같은 문학적 정감을 지닌 작품으로부터 <미녀는 괴로워>, <미남이시네요> 등등 트랜디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각색과 대본 작업의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이다. 원작 텍스트가 깔고 있는 기본적인 가벼움과 발랄함에 이야기다운 연결고리를 튼실하게 만들어내는 데 유능하다. 하지만 이런 ‘생계형’ 작업에서 작가다움이란 원작을 어떻게 잘 재현하느냐에 있을 뿐 그 안에 작가의 ‘추구’가 들어갈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원작 텍스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뜻을 담아낼 수 있는 원작을 기반으로 삼을 때 이희준과 김운기의 작업은 빛났다. 이들 콤비의 첫 번째 작품 <사춘기>가 그랬다.

 

그러니까 이야기와 형식에서 전적으로 자기다움을 드러내기 시작한 작품을 작가로서의 출발점으로 본다면 이들의 창작은 <마마 돈 크라이>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라레볼뤼시옹>을 거쳐 <미아 파밀리아>까지 이제 세 편째 접어들었다. 공연계라는 환경에서 적은 수의 작업은 아니지만 작가라는 기준, 즉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작품을 만든다는 기준으로 볼 때 이들의 작업은 이제 막 출발 지점을 떠난 셈이다.

 

뮤지컬 광대를 꿈꾸다
그 중에서도 <미아 파밀리아>는 뮤지컬 광대로서의 자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먼저 설정 자체가 그렇다.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는 보드빌 극장의 배우들. 내일이면 문을 닫는 극장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공연, 즉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브루클린의 연인들 이야기를 연습한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무대에 올려야 하는 공연은 이 애틋한 자기네들의 작품이 아닌, 자기네들이 사는 동네인 뉴욕을 한손에 쥐고 있는 마피아의 생애이다. 마피아 대부의 꼬붕이 쓴 스토리는 말 같지도 않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어쩌랴. 보드빌 배우들이 감히 마피아에게 대적할 수는 없는 법. 살기 위해서는 찍소리 없이 해야 한다. 자기네들의 작품인 브루클린의 연인들 이야기는 언제나 연습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거다. 함께 공연했던 친구도 행복한 미래를 위해 극장을 떠날 텐데, 우리의 공연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 자기네들이 원하지도 않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들은 노래한다. ‘난 어디에 속했는지도 모르겠어. 넓은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같아. 난 혼자니까. 그래도 난 무대에서 죽기를 바래.’

 

 

<미아 파밀리아>를 소개하는 글을 보면 이 작품이 마피아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건 큰 오해다. 이 작품은 마피아가 아니라 보드빌 배우, 그러니까 뮤지컬 광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보드빌 공연을 표방하면서 헐렁한 농담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뮤지컬 동네에서 자기의 색깔을 고집하는 작가의 자의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마피아가 판치는 뉴욕 한 복판에서 어차피 살아남을 수 없다면 굳이 이곳에 남을 이유가 없다. 함께 공연할 친구만 있다면 이들은 어디에서나 자기들만의 공연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피아 조직 출신이든지 안정된 삶으로부터 ‘이혼’당한 사람이든지 공연을 위해 함께할 수 있는 모든 이들. 그들이야말로 바로 ‘나의 가족’이다. ‘미아 파밀리아!’

 

아직은 홀로 서지 못한 작품 
그런데 말이다. <미아 파밀리아>가 이들에게는 뮤지컬 광대로서의 출사표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그 뜻이 관객에게까지 가닿을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이 팀의 작품은 많은 관객이 아니라 마니아에게 사랑받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렇게 관객이 소수화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작품이 정말 작가주의적이기 때문에, 즉 지금 뮤지컬계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 만큼 파격적이거나 실험적이기 때문에 당대의 대중들에게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것인지, 아니면 아는 사람만 알고 즐기는 사람만 즐기도록 굳이 설명하기 싫은 자폐성 때문인지 말이다. 보드빌 쇼를 표방했다고 보기엔 이야기가 복잡하고,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는다고 보기에는 이야기 사이의 개연성과 연결고리가 너무나 허술하다. 이중으로 짜인 극중극에 보드빌 배우들의 이야기까지 얹힌 삼중구조의 스토리 전개는 그 경계가 엉성해서, 현실과 연극 사이가 흐려지고 자시고 할 것도 애시당초 없다. 농담도 그냥 유치하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모든 게 너무 많다. 이야기도 많고 노래도 많고 작가의 자의식도 많다. 그런데 그게 작품의 일관성으로나 또는 작가의식의 객관성으로 규모 있게 정리된 것 같지는 않다. 보는 입장에서는 노래에만 집중하든지 배우에게만 집중하는 게 오히려 맘 편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만 보기에는 이들이 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다. 어쩔 것인가. 이들의 작품을 연속선상에 놓고 볼 때 <미아 파밀리아>는 ‘볼 만한 작품’이겠지만, 떼어놓고 볼 때 이 작품은 여전히 불친절하고 뜬금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좀 더 차분하게 조곤조곤 자기네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순 없을까. 아니면 좀 더 화끈하게 쇼의 경쾌함과 가벼움의 품위를 보여줄 순 없을까. 이들의 작품을 보고나면 언제나 생각이 복잡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2호 2013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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