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투명한 장르, 로맨틱 코미디
가끔씩 달달한 것이 생각날 때가 있다. 원래 단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일단 단 것이 땡기기 시작하면 그때는 반드시 먹어줘야 한다. 생각해보니 이런 습관은 논문을 쓰면서 생겼던 것 같다. 머리는 안 돌아가지, 책은 쌓여있지,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은 다 돼오지, 하루 종일 썼던 한 문단의 글은 다시 보니 쓰잘데기 없는 소리지, 정말이지 진퇴양난이 따로 없는 거다. 그럴 때마다 위로가 됐던 건 우습게도 초콜릿이었다. 건물 밖 벤치에 앉아 초콜릿을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혼자 인생의 고뇌를 다 메고 있는 것처럼 심각한 내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강박의 무거움을 진지함의 무게로 착각하고 있었구나, 진짜 진지해지려면 한없이 가벼워져야겠구나. 달콤함이 주는 위로는 여유로우면서도 현명했다.
연말이 될 때마다 뭔가 달콤한 공연을 찾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복잡하지 않은 해맑음만큼 좋은 휴식은 없는 법이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 로맨틱 코미디는 완벽한 장르이다. 거기엔 현실의 복잡함, 인간관계의 얽힘 따위가 어쩌지 못하는 선량함이 있다. 인간사의 모든 갈등은 악함 때문이 아니라 약함 때문이라는 따뜻한 낙관이 있는 것이다. 악함은 사람들을 갈라놓지만 약함은 서로를 넉넉히 끌어안을 수 있게 한다. 이런 약하고 찌질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이야기, 그것이 로맨틱 코미디이다. 그 안에는 겉은 초라하고 별 볼일 없어도 소박한 진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을 알아봐주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엮일 수 있는 한, 세상에 허물지 못할 벽, 행복해지지 못할 이유 따위는 없는 거다.
로맨틱 코미디의 달콤함은 이렇듯 현실의 논리를 상큼하게 짓밟는 데 있으니, 현실에 짓밟힌 사람들에게 이 장르가 위안이 되는 것은 당연할 터. 이야기의 비약이 있거나 다소 황당한 설정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이 장르를 즐기는 것에 하등 방해가 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초라한 일상을 발판삼아 환상을 향해 높게 도약한다. 이런 도약이 말도 안 된다고? 사람이 어찌 떡으로만 살겠는가. 낭만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힘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 뮤지컬 <웨딩싱어>
일상과 환상의 사이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자리를 찾는다면 <웨딩싱어>만큼 자기 자리를 잘 찾은 작품도 없을 것이다.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웨딩싱어와 평범한 여종업원의 사랑 이야기는 시작부터 일상의 냄새를 풀풀 풍긴다. 게다가 이들이 각각의 상대에게 차이거나 흥미를 잃게 되는 계기도 꽤나 설득력이 있으니, 멋진 록커가 되지 못해 여친에게 버림받은 남자나 돈 버는 재미에 홀딱 빠져버려 사람마저 변해버린 남친에 실망하는 여자 모두 그럼직하지 않나? 이들이 친해지는 계기도 충분히 그럴 만하다. 결혼준비는 해야 하는데 남친은 바쁘다고 코빼기도 안 내밀지, 살림살이는 마련해야 하는데 어디서 뭘 사야 할지도 모르겠지, 이럴 때 결혼준비 경험이 있는 친구가 옆에 있다면 나라도 그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겠다. 그러다보면 서로의 취향을 알게 되고, 취향을 나누는 사람들은 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부르는 노래이다. ‘너와 함께 늙고 싶어!’ 이쯤 되면 달달함을 넘어서서 이제부터는 감동의 지경으로 넘어간다.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고백은 추상적이지만 함께 늙고 싶다는 고백은 구체적인 일상의 시간을 껴안는다.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에서 이런 고백을 들으니 꽤나 신선하다.
<웨딩싱어>는 이야기에서나 노래에서나 경쾌함에서나 로맨틱 코미디의 미덕을 잘 보여주는 공연이다. 소박한 사랑의 설렘을 그려내는 데 공헌한 것들은 많다. 귀에 부담 없이 착착 감기는 노래들은 극의 분위기에 잘 들어맞고, ‘그댄 나의 반쪽, 난 그대 뺨에 쪽’처럼 재치 있게 라임을 살린 가사도 경쾌하다. 극중 주인공이 가수이다 보니 무대에서 직접 통키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장면도 꽤 나오는데, 아날로그적인 라이브를 듣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다소 부산스럽지만 조연을 맡은 배우들의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그런 와중에 극에 일상성을 덧입힌 최고의 공신은 줄리아 역할을 맡은 방진의이다. 전반적으로 발랄한 에너지가 과하리만큼 흘러넘치는 무대에서 차분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준 그이 덕분에 극은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줄리아마저 방방 뛰었더라면 이 작품은 이야기의 끈을 놓친 채 배우들의 과도한 에너지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었을 것이다.
‘로맨틱’과 ‘코미디’ 사이의 강박관념
아쉬운 것이 바로 이것인데, <웨딩싱어>는 분명 잘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장르의 강박관념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 강박은 ‘로맨틱’과 ‘코미디’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 있다. <웨딩싱어>는 다른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에 비해 이야기가 촘촘하게 짜인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런 이야기와 노래는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둬도 관객들에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사이사이에 연출적 장치를 가미하면 오밀조밀한 재미가 옥시글거릴 터, 만드는 이들이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노래 가사에서, 조연들의 설정에서, 대사에서, 무대장면에서 이것저것 재미를 위한 장치를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이런 의욕이 과잉으로 치우친다는 데 있다. 일례로 한 번에 그쳤으면 재미삼아 즐겼을 욕설은 두세 차례 반복되면서 발랄함을 졸렬함으로 바꿔놓았고, 홀리나 린다 같은 여자 캐릭터들을 묘사하는 과도한 에너지는 인물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의심하게끔 만들었으니 무대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이 두 여자의 직업을 맞춰보시라.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그 외에도 웃음을 위한 많은 설정이 있었지만 솔직하게 말하련다. 재미 하나도 없다.
굳이 과장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 유치하리만큼 직설적인 설정이 개입되는 것은 `뮤지컬은 볼거리`라는 또 다른 강박관념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강박관념은 비단 이 작품에서만 아니라 지금 공연되고 있는 다른 작품에서도 예외 없이 마주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그 강박관념이 보여주는 것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대하는 낮은 자존감뿐이다. 물쇼까지 준비하지 않아도 <웨딩싱어>는 보기에 흐뭇하고 듣기에 정겨운 작품임을 모르는 걸까.
<웨딩싱어>는 재미난 뮤지컬이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기엔 아직 콤플렉스가 있어 보인다. 뮤지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따뜻한 재미를 재치와 유치의 사이에서 헤매게 하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다. 부디 가벼우면서도 품위 있는, 제대로 로맨틱한 공연으로 만들어주시길. <웨딩싱어>는 충분히 그렇게 될 만한 저력을 이미 갖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때를 사는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함이 절실하다.
* 본 리뷰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6호 2010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