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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브로드웨이를 향해 던져진 새로운 카드 <넥스트 투 노멀> [No.69]

글 |이곤(뉴욕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09-06-23 6,617

지난 5월 5일 토니상 후보작들이 발표된 이후, 브로드웨이 연극계는 6월 7일에 있을 시상식에 대한 흥분과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다. 뉴욕 타임즈는 일련의 기사를 통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올 해 토니상 후보작 중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빌리 엘리어트>는 작품상을 비롯해 15개 부문의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엘튼 존의 음악과 스티븐 달드리의 연출로 만들어진 이 공연은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강력한 작품상 후보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본 리뷰의 대상이 된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역시 토니상 수상을 놓고 <빌리 엘리어트>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공연은 작품상을 비롯한 11개 부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어 <빌리 엘리어트> 다음으로 많은 부문의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여우 주연상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넥스트 투 노멀>은 <빌리 엘리어트>와 경쟁을 벌인다. (<빌리 엘리어트>는 여우주연상 후보를 내지 못했다.)

 

<빌리 엘리어트>가 영국에서 만들어져 올해 브로드웨이에 수입된 뮤지컬인 데 비해 <넥스트 투 노멀>은 순수 미국 아티스트들에 의해 만들어져 오프?브로드웨이를 거쳐 지난 4월 15일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작품이다. 브라이언 요키(Brian Yorkey)가 대본과 가사를, 톰 킷(Tom Kitt)이 곡을 담당하고, 뮤지컬 <렌트>와  <그레이 가든스>의 연출가로 잘 알려진 마이클 그리프가 연출을 맡았다. 이 작품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여타 뮤지컬과는 다소 다른 예외적인 경로를 하나 더 거쳤다. 2008년 오프 브로드웨이의 세컨드 스테이지 시어터에서 공연을 마친 뒤, 연출가는 곧장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는 대신 워싱턴의 아레나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하면서 작품을 수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워싱턴 공연을 거치면서 내용 전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곡들은 과감히 삭제되고 인물을 보완하는 대사와 노래가 추가되었다. 이를 통해 작품의 어수선함이 정리되어 브로드웨이 공연은 극의 전개에 있어 훨씬 집중력을 가진 극으로 거듭났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전반적으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뉴욕 타임즈는 ‘대담한, 놀랄만한 뮤지컬`, `좋은 느낌을 뛰어넘어 완벽한 느낌이 드는 뮤지컬`이라고 극찬하였다.

 

 

 

 

눈물과 웃음을 함께 자아내는 스토리


이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은 탄탄한 이야기의 구성에 있다. 16년째 정신병과 싸우는 한 여인과 그녀의 가족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사랑에 대해 그리고 있다. 적절한 순간에 불거지는 갈등의 배치를 통한 치밀한 이야기의 구성, 그리고 정신병과 싸우는 주인공과 가족의 세심한 심리묘사는 곳곳에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막이 오르면 새벽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고 있는 아들(가브리엘)을 기다리는 어머니(다이아나)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학업과 음악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지만 어머니만큼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고 있는 딸의 모습이 소개된다. 다이아나는 딸에게 자신과의 섹스를 기다리는 네 아버지에게 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극의 시작부터 이 가족 안에 감돌고 있는 다소 비정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곧 이러한 비정상적인 분위기는 다이아나가 앓고 있는 정신질환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녀는 16년째 조울증을 앓고 있다.


딸(나탈리)과 남자친구(헨리)의 연애 이야기는 어머니의 정신질환을 다룬 주 플롯과 더불어 중요한 서브플롯으로 기능한다. 나탈리는 자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신질환을 앓아온 어머니와 정신적인 유대를 가질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증오의 감정 속에서 어느새 그녀 역시 어머니처럼 신경증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거부감은 그녀의 남자친구 헨리가 가족과 만나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연히 집 앞에서 아버지(댄)와 마주침으로써 헨리는 그 날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된다.


이날 저녁 이 극에서 가장 커다란 반전이 일어난다. 식사 후 다이아나는 촛불이 가득 켜진 생일 케익을 들고 나타난다. 누구의 생일인지 어리둥절해하는 헨리에게 나탈리는 어릴 때 죽은 오빠를 아직도 살아있다고 여기는 어머니의 정신질환을 처음으로 밝힌다. 관객이 처음 보았던 다이아나와 청소년인 아들의 모습은 어머니의 정신질환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던 것이다. 다이아나의 무의식 속에서 아들은 죽지 않고 계속 성장해 지금은 헨리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사실은 죽은 아들 가브리엘의 존재는 가족과 다이아나의 관계에 커다란 갈등으로 작용한다. 가브리엘은 다이아나의 사랑스런 아들이지만 그의 존재는 다른 가족들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머니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과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상담 치료, 약물 치료, 그리고 최면 치료에 이르기까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출현은 더욱 잦아지고 어머니의 상태를 더 악화시킨다. 결국 다이아나 거실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의사는 마지막 수단으로 전기쇼크 치료를 권한다.

 

2막이 시작되면 전기쇼크 치료의 후유증인 기억 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이아나는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었지만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 딸까지 알아보지 못한다. 의사는 기억에 도움이 될 물건이나 이야기를 통해 서서히 그녀의 기억을 회복시킬 것을 권한다.


댄은 앨범을 보여주며 그들의 삶에 대해 하나하나씩 이야기해 나가지만 다이아나는 뭔가가 상실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연히 딸을 찾은 헨리를 본 다이아나는 그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려 애쓰지만 알 수 없어 답답해한다. 그녀가 의사를 찾아 자신의 고충을 얘기하던 중 우연히 자신에게 아들이 있었음을 알게된다. 집에 돌아온 다이아나는 집안을 뒤져 감쳐둔뒀던 뮤직박스를 찾아낸다. 그 뮤직박스는 어린 아들을 재우기 위해 늘 틀어놓곤 했었던 것이었다. 뮤직박스의 음악을 통해 다시 아들의 존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다이아나는 남편에게 아들에 대한 기억에 대해 더 얘기해 줄 것을 요구하고 댄은 모든 이야기의 전말을 털어놓는다. 그들은 대학에 다니던 중에 결혼을 해 아이를 가졌고, 너무 바빠서 아이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8개월 째 되던 때 심하게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갔지만 결국 아들은 숨지고 만다. 그 뒤 다이아나는 정신치료를 받기 시작하였고 몇 달이면 치유 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은 지금까지 16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다.
다이아나는 자신에게 소중한 아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려 하는 모든 정신치료를 거부한다. 더불어 자신의 환상 속의 아들과 나머지 가족이 함께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 역시 깨닫는다. 어머니는 딸에게 이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갈 것을 부탁한다.


남편 앞에 트렁크를 가지고 나타난 다이아나는 집을 나가겠다고 통보한다. 이 장면은 마치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를 연상시킨다. 다만 다른 점은 뮤지컬의 장면이 보다  센티멘털하고 온정적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배신이 아닌 가족의 사랑 때문에 자신이 집을 나가는 선택을 한다. 이제 아버지와 딸은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인상적인 무대


이 뮤지컬을 본 관객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무대에 대한 인상이 뚜렷하게 각인될 것이다. 공연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공연의 무대는 철제 골격으로 만들어진 3층 세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나눠진 공간들은 여러 장면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극 전개의 템포를 빠르게 하는 데 일조한다.


1층은 주로 거실과 정신병원으로 쓰이고 2층은 딸의 방, 학교 등의 공간으로 쓰이지만 그 사용이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3층은 아들의 공간, 즉 어머니 기억 속의 공간,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쓰인다. 3층 세트의 높이가 주는 강한 인상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한 예로 1층에서 다이아나가 정신치료를 받는 동안 3층에 자리 잡은 아들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존재를 호소한다. 그들은 서로를 열망하지만 그들 앞에 놓인 거리는 그들의 만남을 아득하게 만든다. 이렇듯 높이가 주는 강한 인상은 이 장면을 가장 인상 깊은 순간 중의 하나로 만들었다.


무대는 매우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철제로 이루어진 인더스트리얼 세트의 후면은 투명한 소재의 벽면으로 마감되어 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검은 색의 가리개가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장면에 따른 분위기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즉 진중하고 심각한 장면이 진행될 때는 검은색의 가리개를 통해 무대의 분위기를 안정시켜 주었고, 밝고 활기찬 느낌의 장면에서는 가리개가 없어지고 대신 투명한 벽을 통한 다채로운 조명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었다. 또한 투명한 벽체가 마치 부서질 듯이 투사된 눈부신 조명의 사용은 불안정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주는데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무대 2층에 설치된 커다란 두 개의 눈 그림은 마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처럼 모던하면서도 또한 상징적인 느낌을 주었다. 공연의 포스터에서도 보이듯이 이 커다란 눈의 이미지는 이 공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평상시에는 2층 프레임의 일부로서 흐릿하게 감춰져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눈의 이미지가 선명히 부각된다. 이 눈의 이미지를 통해 어머니의 불안감, 그리고 그녀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들의 존재가 강하게 관객에게 투사된다.

 

 

 

 

배우
어머니 다이아나 역을 맡은 앨리스 라이플리(Alice Ripley)는 신경질적이면서도 자상한 성격을 섬세한 심리묘사, 그리고 뛰어난 가창력을 통해 무대 위에 성공적으로 재현해 내었다. 현재 토니상 여우주연 후보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그녀는 가장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아버지 댄 역할을 맡은 로버트 스펜서(Robert Spencer)는 정신질환의 아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지쳐가는 가장의 모습을 무대에 잘 구현하고 있다. 그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맡았던 브라이언 제임스(Brian d’Arcy James)가 뮤지컬 <슈렉>의 타이틀 롤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그 역할을 꿰차게 되었다. 그는 브라이언 제임스와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


십대 아들의 역할은 아론 테이트(Aaron Tveit)가 맡았다. 그는 선과 악 두 가지 모습을 한 캐릭터 안에 성공적으로 융화시켰다. 어머니의 사랑스런 아들이자 어머니를 자살로 몰고 가는 그의 모습은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제니퍼 다미아노(Jennifer Damiano)는 아들의 존재 때문에 어머니에게 있어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했던 딸 역할을 감미로우면서도 투명한 음색으로 잘 소화해 내었다.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됨에 따라, 그녀 역시 어머니한테 느끼는 분노, 열망, 슬픔, 죄의식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약물에 빠져 들어간다. 질투와 사랑 두 감정을 함께 지닌 딸의 모습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와 더불어 관객에게 커다란 감정적 동화를 불러일으켰다.

 

 

음악과 안무


톰 킷의 음악은 록 음악적인 요소를 기조로 하고 있지만 훨씬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소화하고 있다. 뮤직박스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더불어 컨트리 스타일의 음악까지, 그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해 극에 역동성을 더해 주고 있다.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이 공연은 다른 뮤지컬과는 달리 안무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별도의 안무가가 없다. 아마도 연출과 배우가 그 역할을 분담했을 것이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기존의 춤 동작 위주의 안무에서 벗어나 마치 피나 바우쉬의 댄스 공연을 보듯이 제스처를 이용한 새로운 느낌의 안무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안무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극형식, 즉 표현주의가 가지는 인상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기능을 하였다. 그에 비해 이 뮤지컬은 보다 사실주의적이고 드라마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적인 움직임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는 힘들다. 노래는 대사보다 추상적이고 그에 맞는 움직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가끔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노래에서 그에 맞는 안무, 춤이 아닌 제스처의 안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계의 새로운 시도


현재 브로드웨이에서는 볼거리 중심의 뮤지컬 보다는 관객의 정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뮤지컬이 각광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 자신의 꿈을 향해 환경적인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빌리 엘리어트>)나 해체되어 가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일깨우고 있는 이 이야기(<넥스트 투 노멀>)는 관객에게 볼거리 이상의 감동을 전달해 준다. 미국의 드라마의 역사에는 해체해 가는 가족의 이야기가 커다란 흐름을 이루고 있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나 샘 세퍼드의 <매장된 아이> 그리고 작년에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어거스트, 오세이지 카운티 (August, Osage County)> 등의 작품들이 바로 이러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드라마처럼 가족의 해체라는 심각한 주제를 다룬 작품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심각한 이야기가 과연 뮤지컬 관객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계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작품성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이 흥행에서도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결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또 하나의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이 후 향배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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