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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Oh! Broadway] 주목받는 브로드웨이의 프로듀서들 [No.114]

글 |지혜원(공연 칼럼니스트) 2013-03-26 5,145

`어떻게 하면 브로드웨이 프로듀서가 될 수 있을까?’ 많은 뮤지컬 프로듀서에게 브로드웨이는 언제나 꿈의 그라운드다. 우리나라에 비해 큰 시장임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인맥과 친분이 비즈니스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브로드웨이에서 새로운 세력을 구축하는 프로듀서들이 있어 관심을 끈다. 장벽 높은 브로드웨이에 당당히 진입한 이들을 통해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로 성공하는 방법을 엿본다.

 

 

 

프로듀서는 곧 브랜드                                       
회사의 형태로 운영되는 디즈니 시어트리컬을 제외한 대부분의 브로드웨이 상업 연극과 뮤지컬은 한 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하나의 법인체가 구성되어 기획되고 제작된다. 하나의 제작사에서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 공연하는 우리 공연계의 일반적인 시스템과는 상이한 제작 구조다. 따라서 프로듀서(보통 다수)는 작품별로 투자를 유치하게 되고, 투자자는 회사의 규모나 이름값보다는 프로듀서의 선택을 믿고 각 작품에 자신의 돈을 투자하게 된다. <위키드>의 프로듀서 데이비드 스톤(David Stone), <헤어스프레이>와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마고 라이온(Margo Lion), <렌트> 및 <애비뉴 Q>, <인 더 하이츠>의 케빈 맥컬럼(Kevin McCollum)과 제프리 셀러(Jeffrey Seller) 등 브로드웨이의 흥행 작품은 프로듀서의 이름과 함께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즉, 작품뿐만 아니라 프로듀서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셈이다.


최근 국내에 소개된 미하일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의 뮤지컬 <레베카>는 투자 사기극이라는 초유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브로드웨이 진출이 좌절된 바 있다. <레베카>는 비영어권인 유럽의 생소한 작품이고, 유명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가 참여하지 않아 투자자를 유치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마크 홀튼(Mark Horton)이라는 투자 중개인을 고용해 투자자 모집을 도모하기에 이르렀지만 결국 이 과정에서 사기에 휘말리게 되면서 <레베카>의 브로드웨이 공연이 불투명해졌다. 브랜드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작품일수록 브로드웨이 초연의 투자 유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마릴린 먼로의 일대기를 담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제작 스토리를 담고 있는 NBC의 TV 시리즈 <스매시>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고스란히 묘사된다. 극 중 프로듀서인 아일린이 자신의 프로듀싱 파트너이자 남편인 닉과 이혼한 후 단독으로 작품 제작을 시도하자, 많은 공연계 지인과 투자자들은 그녀를 불신하며 비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대개 프로듀서 개인의 브랜드를 위시로 한 인맥을 중심으로 프로듀서와 투자자가 구축되는 브로드웨이의 현실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즌 1에서는 실제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의 전설인 매니 아젠버그(Manny Azenberg)가 카메오로 출연해 작품 제작에서 유명 프로듀서의 참여가 얼마나 강한 힘을 보태는지 묘사하기도 했다. 1960년대부터 제작에 참여해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뉴욕 공연계를 지키고 있는 아젠버그는 2012년 토니상에서 공로상를 받기도 한 명실상부 브로드웨이 대표 프로듀서다. 실제로 공동 프로듀서 또는 투자자를 유치하고자 할 때 ‘프로듀서 OOO’도 함께 참여한다는 사실은 꽤나 이점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프로듀서들은 워크숍이나 쇼케이스를 통해 유명 제작자의 참여를 적극 도모한다. 말하자면, 어떤 작품인가 하는 것만큼 누가 제작하느냐가 제작비 유치에 직결되는 요소이다. 브로드웨이는 신참 프로듀서가 진입하기에 그리 녹록한 시장이 아니다. 그리고 이 점이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는 우리나라 공연 프로듀서들의 도전기를 접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그들만의 리그’에 진입하는 전략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브로드웨이 진출에 성공한 비영리 공연 단체의 브랜드 파워                 
<원스>와 <피터 앤 더 스타캐쳐(Peter and the Starcatcher)> 두 작품으로 2012년 토니상에서 13개 부문의 트로피를 거머쥔 오프브로드웨이의 비영리 공연 단체인 뉴욕 시어터 워크숍(New York Theatre Workshop)은 <렌트>의 고향으로 유명한 공연장이다. <코러스 라인>과 <헤어>를 개발한 퍼블릭 시어터(Public Theatre),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오리지널 프로듀서인 아틀랜틱 시어터 컴퍼니(Atlantic Theatre Company), 브로드웨이에 앞서 <넥스트 투 노멀>을 공연한 세컨드 스테이지 시어터(Second Stage Theatre) 등의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단체도 자신만의 분명한 브랜드로 브로드웨이에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프로듀서의 브랜드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브로드웨이에서는 이렇듯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비영리 공연 단체의 작품들도 주목받는다. 상업 프로듀서에 의해 브로드웨이로 옮겨진 이후에는 오리지널 프로듀서인 비영리 공연 단체가 더 이상 프로덕션에 대해 의사 결정권을 발휘하지는 않지만, 위의 작품들처럼 여전히 비영리 공연 단체에서 먼저 개발하고 제작된 작품들은 오히려 상업 프로듀서의 이름보다 그들의 브랜드로 먼저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조나단 라슨을 발굴해 수년간 <렌트>의 개발을 묵묵히 도왔던 뉴욕 시어터 워크숍은 여전히 젊은 아티스트들의 든든한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브로드웨이와는 또 다른 신선하고 독특한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의 또 다른 브로드웨이 진출작 <원스>는 <렌트>와는 다소 다른 경로로 제작에 관여하고 브로드웨이로 옮겨진 작품이다. 하지만 처음 이 작품을 개발했던 상업 프로듀서들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공연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공연장으로 뉴욕 시어터 워크숍이 유일했다는 데 입을 모으며, 공동 프로듀서로서 뉴욕 시어터 워크숍의 브랜드를 인정하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메니어 초콜릿 팩토리(Menier Chocolate Factory)는 180석 규모의 공연장을 운영하는 작은 비영리 공연 단체다. 2004년에 문을 연 이 단체는 브로드웨이의 예전 작품들에 자신들의 색깔을 더해 새롭게 리바이벌한 프로덕션으로 브로드웨이에 역진출한 전력을 갖고 있다. 2008년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를 시작으로, 2009년에는 <리틀 나잇 뮤직>, 2010년에는 <라카지>를 차례로 브로드웨이에 진출시키며 주목을 끌었다. 세 작품 모두 평단과 관객의 고른 평가를 받으며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에 수상 후보로 올랐으며, <라카지>는 2010년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리바이벌 작품상을 동시에 석권하는 쾌거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들의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자신들의 공연장 사이즈에 맞게 작은 규모로 축소하며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무대 디자인을 프로젝트 이미지로 대체하거나(<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미니멀한 무대 디자인으로 효과적인 공간 활용을 하거나(<리틀 나잇 뮤직>), 출연진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작품의 규모를 줄이는 방식(<라카지>) 등으로, 제작비를 낮추면서도 신선한 접근을 시도했다.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프로덕션에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며 독특한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도 성공했다.

 

 

 

 

새롭게 주목받는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    
한 해 시즌이 시작될 때, 주목받는 신작은 크게 세 부류다. 영화나 소설 등 흥행 원작 콘텐츠에 기반한 작품, 유명 창작자의 새로운 작품, 그리고 유명 프로듀서가 선택한 신작이다. 양상은 다소 다르지만 결국 브랜드 가치에 대한 기대치가 반영되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북 오브 몰몬>과 <원스>는 이러한 관점에서 다소 예외적인 경우다.


2011년 3월 개막한 <북 오브 몰몬>은 원작 콘텐츠가 없는 순수 창작뮤지컬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시트콤 <사우스 파크(South Park)>의 두 창작자 트레이 파커(Trey Parker)와 매트 스톤(Matt Stone), 그리고 <애비뉴 Q>의 공동 작곡자 중 한 명인 로버트 로페즈(Robert Lopez)가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는 했으나, 브로드웨이 베테랑 작가들은 아니라는 점과 몰몬교라는 소재가 다소 낯설다는 점에서 막상 관객들에게 공개되기 전까지는 많은 관계자들이 반신반의한 작품이었다. 이들의 친구이자 <사우스 파크>와 <팀 아메리카> 등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유명 영화·공연 프로듀서 스코트 루딘(Scott Rudin)이 프로듀서로 참여하기 전까지, 이 작품은 창작자들의 아이디어와 협업만을 바탕으로 수 년간 개발 작업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 루딘의 참여로 제작은 빠르게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적중했다. 루딘은 20세기 폭스, 파라마운트 픽처스, 디즈니사 등에서 30여 년간 활약해 온 베테랑 영화 프로듀서다. 16살에 공연 프로듀서의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해 매니 아젠버그를 비롯해 다수의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밑에서 일을 배우며 캐스팅 디렉터로도 활약했으나 브로드웨이보다는 할리우드에서 활약이 더 두드러졌다. 그런 그에게 이 작품은 이제 자신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뮤지컬이 되었다. 그는 이전에도 <패션>과 <집시> 등의 뮤지컬과 다수의 연극 제작에 참여하기는 했으나, 제작을 진두 지휘한 <북 오브 몰몬>에 비하면 결과는 보잘것없었다. 이 한 작품으로 그는 2011년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무려 토니상 9개 부문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약 100억 원(9백만 달러)이라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완성돼 관객과 평단 모두의 호평을 받으며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 작품은 불과 8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또, 지난해 8월 덴버를 시작으로 미국 투어 프로덕션을 출범했으며, 12월에는 시카고에서 싯-다운 프로덕션(투어 프로덕션보다 긴 기간 한 곳에서 공연되는 프로덕션으로, 주로 시카고, LA 등 공연 시장이 활성화된 곳에서 유치된다)이 개막해 공연 중이다. 또한 지난 2월에는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이 개막함으로써 명실상부 브로드웨이의 가장 주목받는 최근 흥행작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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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인 <원스> 역시 베테랑 영화 프로듀서들의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안착으로 인정되는 경우다. <원스>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은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잘 알려진 영화 프로듀서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다. 그녀는 <치티 치티 뱅뱅>으로 뮤지컬 제작에 참여했으나 안타깝게도 처음 막이 오른 런던과는 달리 브로드웨이에서 흥행 참패를 맛보며 서둘러 막을 내린 경험이 있다. 그녀의 화려한 브로드웨이 귀환작 <원스>는 무려 토니상 8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흥행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의 공동 프로듀서 중 한 명이자 브로콜리의 남편이기도 한 프레데릭 졸로(Frederick Zollo)는 베테랑 공연·영화 프로듀서다. 부인에 비해 공연 제작 경험이 많은 졸로는 이 작품으로 한층 크레딧에 무게를 더할 수 있었다. <원스>의 또 다른 프로듀서인 존 하트(John Hart) 역시 <소년은 울지 않는다>와 <레볼루셔너리 로드> 등 다수의 영화를 제작해 왔다. 특히 인디 영화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아가씨와 건달들>, <애니 겟 유어 건>, <시카고> 등의 프로덕션에 참여하며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로도 활동했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주로 영화 프로듀서로서 활약해왔다. 그에게 <원스>는 다시 한번 공연 프로듀서로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또 다른 공동 프로듀서 패트릭 밀링 스미스(Patrick Milling Smith)는 2002년에 스머글러(Smuggler)라는 영화, TV, 광고, 뮤직비디오 제작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2009년 존 하트와 함께 스머글러 필름을 분사하여 설립 후 2011년 연극 <세미나>와 뮤지컬 <원스>의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입지를 넓히고 있는 프로듀서다.

 

 


이렇듯 브로드웨이 유명 프로듀서가 아닌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듀서들이 실력을 발휘한 <원스>는 지난해 3월 개막한 이후 연일 매진을 기록했고, 무려 21주 만에 전체 제작비인 약 61억 원(5.5백만 달러)을 모두 회수하는 기록을 남기며 매일 흥행 기록을 새로 써가고 있다. 8개의 토니상 트로피와 4개 부문의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수상에 빛나는 <원스>는 그래미 어워드에서도 최우수 뮤지컬 앨범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고, 오는 4월에는 런던 웨스트엔드의 피닉스 극장에서도 막이 오를 예정이다.


<북 오브 몰몬>과 <원스> 등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제작된 작은 작품들의 연이은 성공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남긴다. 이들의 성공은 베테랑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의 안이한 제작 문법에서 벗어나 영화와 TV 등 더욱 넒은 시각에서 공연 비즈니스를 바라본 프로듀서의 안목과 선택이 적중한 결과일 수도 있다. 작품을 선별하는 눈에서부터 창작자와 호흡을 맞추는 작업, 관객과 소통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프로듀서가 갖추어야 할 역량은 딱히 한계가 없을 만치 넓은 폭과 깊이를 요구한다. 최근 몇 년간 브로드웨이의 유명 프로듀서와 창작자들이 만들어낸 많은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막을 내린 상황에서 어쩌면 지금 브로드웨이에 필요한 건 좀 더 새로운 시각과 신선한 접근일지도 모르겠다. 매체와 문화권을 넘나드는 프로듀서들의 도전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새로운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4호 2013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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