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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잠 못드는 밤은 없다> - 꿈을 잃어버린 히키코모리 [No.81]

글 |박병성 2010-08-17 4,846


<잠 못드는 밤은 없다>는 일본 조용한 연극을 선두 하는 히라타 오리자의 신작이다. 조용한 연극은 극사실적으로 보여주어서 마치 일상의 단면을 떼어놓은 듯한 작품을 말한다. 특별한 갈등이 존재하기보다는 작가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일상 속에 담긴 사회의 욕망과 개개인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기제들을 살핀다. 히라타 오리자는 그의 전작들에서 공공의 공간을 주요 무대로 삼았다. <도쿄 노트>에서는 유럽에서 3차 대전이 한창 중인 미래를 시간적인 배경으로 하고 그에 비해 한가로운 일본의 화랑 로비를 선택했고, <과학하는 마음>에서는 유전자 연구를 하는 대학 연구소의 휴게실을 공간적인 배경으로 했다. 그는 중대한 사건이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유럽의 전쟁터나, 유전자 조작을 하는 연구실을 피해 그 주변 공간에서 사건을 들여다본다. 화랑의 로비나, 연구소 휴게실은 문제의 사건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 된다. <잠 못드는 밤은 없다>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한적한 일본인 리조트이다. 이곳은 전작과 같은 사색의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동시에, 좀 더 문제의 핵심에 깊숙이 관여해 도피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잠 못드는 밤은 없다>에는 은퇴 후 말년을 해외 리조트에서 보내는 사람들, 그들을 방문한 자녀들, 인근에서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온 아내, 은퇴 후 보낼 곳을 찾아온 친구, 이혼여행 중은 젊은 커플, 그들에게 잔심부름을 하는 히키코모리,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매니저들이 등장한다. 잔잔한 파도처럼 뒤이은 파도가 앞선 파도를 잠식하듯, 작품 내내 각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전개된다. 삶이 그렇듯 비록 사변적인 이야기들이 체계 없이 전개되지만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크게, ‘일본, 꿈, 히키코모리’로 집약할 수 있다.
자신의 병을 알리기 위해 딸들을 부른 케이치는 의료 시설이 좋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다. 딸들은 아버지를 걱정하지만 케이치가 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리조트의 다른 투숙객인 아키라에게 ‘그저 일본이 싫어서가 아닐까’라는 추측을 듣을 뿐이다. 말레이시아의 일본인 리조트는 일본이 아니면서 일본인 곳이다. 히라타 오리자는 이 작품에서도 거리를 둔 장소에서 문제를 들여다본다. 작가가 바라본 일본은 아키라의 대사처럼 ‘청결하고 차분하고 살기 편한 좋은 나라’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그런 일본을 만들어왔다. 자신의 젊음과 청춘을 받쳐 만들고 이제는 노년의 안락을 맛보는 그들은 이국의 땅에서 저무는 석양을 돌아보며 자신이 만든 나라가 싫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히라타 오리자는 꿈의 부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 속에는 꿈을 해석하고 통제한다는 세노이 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켄이치는 꿈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해석할 수도 없다. 이 리조트에 머무는 이들은 편안하게 노후를 즐기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간다. 일본의 경제 발전이 만들어준 노후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생명력을 느낄 수 없다. 팽팽하던 풍선이 바람이 빠진 것처럼 그들의 삶에는 더 이상 긴장감이 없다. 그들의 생활은 꿈 없는 잠처럼 헛헛함으로 채워진 일상이다. ‘잠 못드는 밤은 없다’는 제목은 그러므로 역설적이고 상징적이다. 작가 스스로 제목은 ‘잠 못드는 밤은 없다’지만 ‘잠 못드는 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한 것처럼, 더 이상 꿈꿀 것을 상실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꿈을 상실한 리조트 사람들의 삶은 나른하고 편안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히키코모리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일본을 떠나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인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생활하는 히키코모리 하라구치는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로 살아갔던 생활을 이야기한다.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 싫고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잠든 건지 깨어있는 건지 모르게 되어버린 상태’. 일본을 벗어나 조용히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하라구치가 말한 상태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이들이 리조트라는 좀 더 현대적이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더 큰 이불을 덮어 쓰고 있을 뿐.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1호 2010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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