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에 담아낸 인간의 삶
그동안 서울예술단은 <바람의 나라>, <잃어버린 얼굴 1895>, <푸른 눈 박연>, <소서노>, <뿌리 깊은 나무> 등 한국적 소재와 공연 양식을 기반으로 정체성을 다져왔다. 특히 최근 2년간은 어느 프로덕션보다도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서울예술단은 짧은 시간 동안 기존 이미지를 쇄신하며 뮤지컬 관객에게 새로운 브랜드로 다가가는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다. 꾸준한 실험을 통해 가무극 양식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거듭된 보완 작업으로 이를 레퍼토리로 연결하는 장단기 전략이 주효한 셈이다.
그런데 <이른 봄 늦은 겨울>은 이 같은 서울예술단의 행보에서 이어지면서도 일정 부분 벗어난 작품이다. 비슷한 측면은 역시 전통적 소재인 ‘매화’를 기반으로 하는 가무극이라는 점이다. 다른 점은 이번에는 객원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고 서울예술단 단원들로만 구성됐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익숙한 역사적 사건 또는 인물담으로 대중 관객의 흥미를 유도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이번에는 특정 인물이나 이야기를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 봄 늦은 겨울’에 피는 매화가 이 작품의 시작이자 끝이다. 소재이자 전부다. 다양한 향과 색을 가진 매화를 천차만별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과 병치시켜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 생애에 대한 통찰을 무대에서 유려하게 풀어내 온 배삼식 작가는 여기서 역사의 한 시점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며 인간 삶의 여러 모습을 매화에 담아낸다. 주연이 따로 필요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컨셉 때문이다.
결국 <이른 봄 늦은 겨울>에서 중요한 것은 매화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다. 이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다양하게 그려지는 매화의 모습은 각 인물들이 기쁘거나 슬픈, 즐겁거나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매화의 시각적 이미지는 그런 사연들과 어우러져 다양한 심상을 이끌어낸다. 그동안은 뮤지컬과 가무극의 정서적 간극을 영상이 채웠지만, <이른 봄 늦은 겨울>은 무대와 영상이 긴밀하게 상호 연동하며 드라마의 일부로 기능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재진 영상디자이너가 무대 디자인까지 함께 맡아 심플하고 미니멀한 무대와 인상적인 영상 이미지의 운용을 선보인다.
이처럼 이 작품은 언뜻 상업 예술보다는 순수 예술의 결을 따라가기에, 난해하지 않은 대중적인 코드로 완급 조절을 하는 연출의 묘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서울예술단은 드라마의 관성에 끌려가지 않고 몸짓 하나하나에 사연을 담아내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 대표 임도완 연출가에게 중책을 맡겼다. 마임, 이미지극 전문가에게 연출을 맡겼다는 점은 그동안 뮤지컬과 흡사해졌던 가무극을 춤과 움직임에 집중하는 극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시사한다.
서울예술단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른 봄 늦은 겨울>이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작품이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기존의 ‘한국적’ 작품들의 오랜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 보편의 정서를 공략하며 동시에 ‘가무극’이라는 양식을 알리겠다는 생각이다. 스타 캐스팅이나 굴곡진 드라마 없이 오로지 매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이 과감한 승부수가 과연 주효할까.
한줄평 서울예술단의 창작의 여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
3월 21일~29일 /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 02) 523-0986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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