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자라나는 소리
화제의 연극에서 쉽게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이명행은 “배우는 무대에 서야 많은 것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다”가 자신의 신조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무대든 끊임없이 오를 거라고.
이번에 그가 선 무대는 뮤지컬이다. 생애 첫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에 출연하는 이명행을 만났다.
최근 공연계는 배우들이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분위기다. 언젠간 뮤지컬을 할 거라고 생각했나?
맞다. 요즘엔 뮤지컬과 연극 무대 사이를 오가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활동 영역의 경계가 흐려졌달까. 사실 작년에도 뮤지컬 작품을 몇 편 제의 받았는데, 내가 속한 극단 마방진의 해외 공연 일정과 겹쳐서 고사했다. 뮤지컬 계획을 따로 세우진 않았지만, ‘언젠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다. 만약 뮤지컬을 하게 되면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 막연한 생각.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뮤지컬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노래에 대한 부담을 느끼더라. <한밤의 세레나데>는 정통 뮤지컬보다는 음악극에 가까운 작품이라 좀 더 쉽게 출연을 결정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작품을 쓰고 연출한 오미영 누나하고 학교 다닐 때부터 알던 사이다. 한예종을 같이 다녔거든. 누나도 그런 말을 했다. 이 작품은 음악극에 가깝고, 남자 캐릭터가 포크송 가수라 편하게 노래 부르면 되니까 같이 작업하는 데 의의를 두고 해보자고. 엄마와 자식 간의 이야기도 좋았고,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 의식도 생겨서 승낙했는데, 어렵지 않을 거란 누나의 말과 달리 이러니저러니 해도 뮤지컬은 뮤지컬이더라. (웃음) 특히 기타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굉장한 부담이었다.
포크송 가수 박봉팔은 70년대 특유의 과장된 톤을 살려야 하는 캐릭터라 이명행에게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작품은 과장된 상황들이 얼토당토않게 벌어지는 시트콤 같은 면이 있다. 박봉팔은 특히 그런 가벼운 재미를 잘 살리는 캐릭터고. 극화된 연기와 사실적 표현의 접점을 어떻게 찾지? 처음엔 어떻게 캐릭터에 접근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연습 초반에는 과장된 콩트 연기를 하다 연출님께 혼나기도 했다. 마냥 재미있게 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박봉팔이 지닌 진정성이 뭔지 찾으려고 고민했다.
박봉팔의 진정성은 뭐라고 생각하는데?
박봉팔과 박정자는 동성동본이라 결혼을 못 하는데, 둘은 대책 없이 아이까지 갖는다. 어떻게 보면 철부지 젊은 남녀처럼 보일 수 있는 캐릭터다. 그런데 그렇게 철없어 보여도 박봉팔은 둘 사이를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박정자에 대한 사랑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어떤 상황에서든 박정자를 사랑하는 게 박봉팔의 진정성인 것 같다.
공연 중 울컥하게 되는 장면이 있나?
박정자와 둘이 혼성 듀엣으로 데뷔하려고 준비했는데, 정자가 임신을 하게 되는 바람에 봉팔이만 데뷔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그 장면에서 감정이 복받친다. 정자는 봉팔이한테 혼자 데뷔하라고 하는데, 박봉팔은 정자한테도 가수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아니까 혼자서는 안 할 거라고 한다. 자기 때문에 꿈을 놓칠까봐 네가 잘 돼야 우리 가족이 잘 되는 거라고 봉팔을 다독여 주는 모습에서 이 여자는 정말 이 남자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져 울컥한다.
한 작품에서 다른 성격의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배우 이명행의 이미지는 박력 있는 남자 박봉팔보다 소심남 도너츠에 더 가까운데, 실제론 어떤가.
내가 좀 소심해 보이는 얼굴이지. (웃음) 성격은 때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 같다. 대학에서 연극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말 도너츠 같았다.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애. 요즘에도 어디 가서 나서는 타입은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다 보니 박봉팔 같은 성격도 나오는 것 같다.
연극반에 들어가면서 인생이 달라진 건가? 왜 그렇게 연극에 매료됐던 것 같나.
어렸을 때 다들 그런 생각 한번쯤 하지 않나.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공부해서 대학 가면 뭐 하지? 사춘기 때 그런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다. 학생은 공부해야 한다니까 공부를 하긴 하는데, 뭘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 그러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 들어갔는데, 두 달 만에 한 편의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짧은 기간에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인생에서 전력 질주하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껴본 것 같다.
연극에 내 인생을 걸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은 언제 했나.
배우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직업이지 않나. 작품을 할 때마다 내가 맡은 캐릭터의 성향과 기질을 고민하면서 내 자신도 성장하는 게 좋더라.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내 자신이 조금 성장하면 그게 무대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연극을 시작했을 때부터 배우는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가 서른한 살이었는데 부모님께 본격적으로 연극을 해보겠다고 했더니, 연극해서 어떻게 먹고살 거냐고 하셔서 난 돈 없이도 살 수 있다고 그랬다. 어렸으니까. (웃음)
<한밤의 세레나데>가 끝나면 어떤 계획이 있나. 올해도 많은 무대에서 볼 수 있을까?
일단 4월에 개막하는 <푸르른 날에>를 잘 마무리해야겠지. 5년 동안 매해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작품을 한다는 게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지 않나. 내년에도 이 작품이 다시 올라간다면 그땐 아마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하게 될 것 같은데, 내게는 정말 의미가 큰 작품이기 때문에 이번 공연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그 이후에 할 작품은 지금 열심히 찾고 있다. 작년에 연습과 공연이 맞물려 바쁜 한 해를 보냈는데, 아직은 좀 더 바쁘게 보내고 싶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제일 많은 걸 배운다고 생각한다. 쉬지 않고 계속 무대에 서야 배우로서 긴장감을 잃지 않는 것 같고. 그래서 제안받는 작품은 웬만하면 다 하려고 하는 편인데, 올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난 늘 기다리고 있다.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9호 2015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