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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풍월주> 정상윤, 바람처럼 달처럼 자연스레 [No.122]

글 |나윤정 사진 |김호근 2013-11-27 5,200

정상윤이 그간 무대 위에서 보여준 행보는
그의 이름에 신뢰감을 더해주는 가장 큰 기원이다.
올해 역시 그러했다. <쓰릴 미>의 네이슨과
리처드를 오가고, <투모로우 모닝>의 존을 거쳐
다시 <풍월주>의 열로 향해 가는 긴 여정에도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안정적인 보폭을
유지하며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걸었다.
그 까닭에 관객들 역시 그를 천천히 따라가며
정상윤이 전하는 여러 캐릭터의 매력을
차례차례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자연스레 그를 따라
<풍월주>의 열을 만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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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을 위해 오감을 열다?
<풍월주>의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유독 눈길을 끈 이름은 정상윤이었다. 2011년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리딩 공연에 참여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불어넣어 준 배우였기 때문이다. 리딩 공연을 보았던 관객들에게 그의 출연은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제게도 특별한 작품이에요. 처음 리딩 공연에 참여했을 때 참 행복했거든요. 그리고 1년 후 바로 초연 돼 관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걸 보니 뿌듯했죠. 당시 공연도 보러 갔었는데 리딩 때 연기했던 것들이 무대화돼 관객들을 만나고 있으니깐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풍월주>는 신라 시대 남자 기생 풍월이 모인 운루를 배경으로 어린 시절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한 두 인물 열과 사담, 그리고 열을 사랑하는 진성여왕의 얽히고설킨 운명을 그린다. 2년 전, 정상윤은 이 작품을 처음 접하고 세 주인공들에게서 쓸쓸한 첫인상을 받았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맡은 열이란 인물은 변칙적인 느낌이 많이 났어요. 무척 쓸쓸해 보였죠.”
2년 만에 열과 재회하게 된 정상윤. 캐릭터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그는 자연스레 많은 생각에 젖어 들었다. “풍월주는 바람과 달의 주인이잖아요. 그렇다면 바람은 뭐고 달은 뭘까? 바람은 느낄 수 있지만 볼 순 없잖아요. 달이란 것도 참 밝지만 그것이 달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거든요. 내가 바람이고 달이라면 어떨까? 이런 상징적인 느낌들을 많이 떠올려 봐요. 그래서 오감을 열어두려고 노력하고 있죠.”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사이에도 문득문득 열이란 인물에 푹 빠져 있는 그가 보인다.
<풍월주>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많은 작품이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지니고 있다.  특히 열과 사담의 관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사랑은 참 광활한 단어잖아요. 그 안에 정말 다양한 사랑이 존재하고요. 이 둘을 동성애다 아니다 정의하는 것은 너무 일차원적이지 않을까요? ‘그래, 저런 사람들도 있지!’라고 관객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내리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정상윤은 관객 하나하나와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이다. 그는 자신의 무대를 통해 관객들이 저마다의 공감을 느낄 수 있길 바랐다. 이런 바람은 이번 무대에도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아픔과 쓸쓸함. 또 거기서 나오는 밝음과 행복함. 사실 모든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다소 생소한 남자 기생과 여왕의 이야기지만, 그들을 통해 관객들이 ‘나도 저런 적이 있어’ 하고 공감하며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즐거운 작업, 새로운 발견
정상윤은 최근 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무대를 연이어 선보이며 변신을 꾀했다.  그는 <쓰릴 미>와 <투모로우 모닝>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자신에게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다 만족해요. 뿌듯하기도 하고요. 네이슨, 리처드, 존 모두 잘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쓰릴 미>의 세 시즌에서 네이슨을 연기했던 그는 얼마 전 리처드로 변신해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네이슨을 오래 연기했던 만큼 리처드를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매 공연마다 느낌을 다르게 했어요. 세상 모든 게 내 아래 있을 때도 있었고, 네이슨을 정말 사랑했을 때도 있었죠. 리처드가 좋아하는 불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어요. 따뜻하게 날 감싸주는 아름다운 불빛이 네이슨이었을 수도 있겠다. 또는 한순간에 활활 타올랐다가 꺼져 버리는 리처드의 인생일 수도 있겠다. 여러 가지 느낌들을 담아보면서 정말 원 없이 연기했어요.”
2009년부터 리처드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해왔던 정상윤. 비로소 두 역할을 섭렵한 지금은 누구에게 더 매력을 느끼고 있을까? “둘 다 정말 재밌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네이슨을 워낙 오래했으니 그에게 애착이 좀 더 가요. 젊었을 때와 늙었을 때를 오가는 매력도 있거든요.” 그는 <쓰릴 미>가 참 생각할 것이 많은 작품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만큼 배우로서 연기하기에 즐거웠다는 것이다.
<투모로우 모닝> 또한 그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무대였다. 영화감독의 꿈을 지닌 젊은 백수 존을 연기한 그는 결혼을 하루 앞둔 젊은 남자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경쾌하게 전해주었다. “그런 사람들 진짜 많아요.(웃음) 지금까지 어둡고 우울한 역할을 많이 맡았거든요. 이 작품은 기존의 역할과 다른 느낌이어서 더 즐겁게 공연할 수 있었죠.”
두 커플의 교차되는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 <투모로우 모닝>. 그가 출연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사랑의 다양한 변주를 담고 있다 보니 문득 그가 생각하는 완벽한 사랑의 형태가 궁금했다. “상대방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거요. 나한테 돈을 얼마나 줄 수 있어? 나를 위해 죽을 수 있어? 이런 개념이 아니고요. 그 사람을 위해 크든 작든 무언가를 희생하고 감싸줄 수 있는 것이요. 어떻게 보면 편안함이랑 비슷할 수 있어요. 누가 뭐라 해도 당연한 거 있잖아요. 하늘을 보면 별이 있듯 그런 당연한 느낌! 그게 더 멋진 거 같아요.” 

 

 

 

 

?무대 안팎에서의 노력?
정상윤의 장점은 어떤 색을 덧입혀도 자연스레 그 색채의 고유한 매력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보고 있으면 흰색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제 인상이 선이 굵지도 않고 그렇다고 꽃미남도 아니고, 어딘지 좀 비어 보이잖아요. 평범하게 생겨서 여러 가지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린 인물도 될 수 있고, 강한 인물도 될 수 있고요.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특정 캐릭터를 계속 파고드는 배우들도 있지만, 저는 이게 좋아요.” 그는 지금까지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본 일을 감사히 여겼다. “그 안에서 제가 했던 노력은 하나로만 치우쳐지지 않는 거였어요.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도 주어진 큰 틀 안에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다양한 느낌들을 찾아보았죠. 그래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졌던 것 같아요.”
그의 노력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창작뮤지컬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냈다. “창작뮤지컬은 일단 연습 과정이 즐거워요. 배우와 스태프들이 같이 만들어가고 쌓아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보람을 느끼죠. 끊임없이 생각하고 표현하고 그리고 노래 연습도 많이 해요. 여러 가지 역할을 하려면 한 가지 색깔의 발성보다는 느낌을 조금씩 달리 하며 다채로운 톤을 낼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는 배우란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두 시간가량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일이잖아요. 결코 쉽게 생각해선 안 되는 작업이죠. 평소에 계속 생각을 해요. 노력이란 게 결국 생각이거든요.”
그는 다양한 생각들을 무대 위에 끌어오기 위해 무엇보다 일상을 깊이 들여다본다. “평소에 사람들 구경하는 걸 좋아해요. 극적인 캐릭터들도 실제 인생이 블록버스터처럼 마냥 휘황찬란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도 평범했을 거예요. 그래서 극적이지 않은 데서 많은 것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죠.” 한마디로 그의 연기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었다.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님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인데, 평소 생활이 연기 공부고 연습이라고 이야기해 주셨거든요.”
더 나은 무대를 만들기 위한 정상윤의 노력은 이렇듯 무대 안팎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 그 노력의 산물이 그의 무대를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가장 큰 힘이란 생각이 든다. “저는 그냥 무대에 있는 게 좋아요. 배우의 길을 선택하고 꽤 오랜 시간 작품을 했는데 어떤 작품이든 어떤 역할이든 하나도 놓치고 싶었던 게 없었어요. 매회 최선을 다했고 즐기려고 노력했어요.” 그 최선의 노력이 있기에 앞으로도 그의 무대는 즐거운 일상처럼 늘 반가울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2호 2013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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