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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안유진과 함께 한 <사천가> [No.73]

글 |배경희 사진 |이맹호 2009-11-02 5,565

 

나를 다시 잡아준 시간

 

얼마 전 <돈 주앙>을 끝낸 안유진은 쉴 틈도 없이 <싱글즈>의 나난으로 변신했다. <싱글즈>는 이미 한 번 해봤던 작품이지만, 이번에는 좀더 제대로 나난을 보여주기 위해 길었던 머리까지 싹둑 자른 안유진.  한층 가볍고 생기발랄해진 그녀와 함께 <사천가>를 관람하기 위해 두산아트센터를 찾았다.

 


 

지난 8월, 동료 배우 라준과 함께 국악 관현악단 공연에 참여하게 될 기회가 있었다. 국악 오케스트라에 맞춰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공연이었는데, 처음에는 어떤 곡을 불러야 할지 모를 정도로 국악과 뮤지컬 음악은 어색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해보니 어떤 곡은 오히려 국악 오케스트라와 더 잘 어울릴 정도로 좋았다. 그 공연을 계기로 국악, 우리의 것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라, [더뮤지컬]로부터 함께 공연을 보러 가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판소리 공연 <사천가>가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사천가>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각색한 작품이라는 것은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야 알았다. 소리꾼 이자람과 판소리, 이 두 가지만으로 더 확인해 볼 것도 없이 선택했기 때문에, 정작 공연 내용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공연 관람 전 날 공연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고 했다가 오랜만에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나의  시선으로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 접어두고 공연장을 찾았다.


그런데 <사천가>가 『사천의 선인』을 번안한 작품이었을 줄이야. 흔히 ‘판소리’하면 전통 판소리를 떠올리게 되는 탓에, 판소리로 창작이 가능하다는 점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판소리와 브레히트의 만남은 시작부터 흥미로운 설정이었고, 학교 다닐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브레히트의 작품이라 더욱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극의 배경을 “눈 감으면 코 베어가고, 돈 때문에 여배우 팔아먹고, 돈 때문에 지 부모 찌르”는 돈과 악이 판치는 21세기 서울로 옮겨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맞게 각색을 참 잘한 것 같다.


소극장 공연인 <사천가>의 무대와 조명은 간결하고 단순했지만, 곳곳에서 참 정성들여 만들었다는 것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특히 페인트를 칠하고 또 덧칠하면서 수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대 바닥을 덮은 천은 요즘에는 잘 볼 수 없는데, 오랜만에 바닥천을 보니 학생 시절도 생각나고 좋았다. 몸이 살짝 비틀어질 때 쯤 맞춰 등장한 움직임 배우들도 신선했다. 처음에는 ‘좀더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소리꾼에게 충분히 집중하게 한 뒤 등장해 분위기를 환기해주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어느 하나 크게 부족할 것 없는 공연이었지만, <사천가>를 백이십 퍼센트 공연처럼 만들어준 건 누가 뭐래도 소리꾼 이자람의 역량이 아닐까. 배우가 그날의 공연을 잘 이끌어 가려면 첫 등장과 첫 곡이 굉장히 중요한데, 자그마한 체구에서 뜨거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자람은 등장부터 관객을 압도했다. ‘이 곡이 끝나면 정말 힘들겠다’, ‘이 곡이 끝나면 목소리가 쉴 법도 한데’ 싶어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두 시간 동안 혼자서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을 보면서 존경심마저 생겼다. 창은 말할 것도 없고, 소리꾼 이자람은 연기 면에서도 정말 훌륭한 배우인 것 같다. 특히 순덕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뱃속의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분명히 ‘ 울 것 같은 장면이었지만, 속으로 보는 사람을 감상에 젖게 만들까봐 속으로 한편으로는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신파적이지도 않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차고 넘치지 않게 참 잘 표현한 것 같다. 울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조명 밑으로 뚝 떨어지는 눈물을 봤을 때는 정말이지 가슴이 찡했다.


공연을 보러 가면 괜히 마음이 졸여져서 마치 내가 공연을 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이런 저런 이유로 공연장은 잘 안 찾는 편인데, <사천가>는 마음 놓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관객이 공연을 재밌게 관람하게 하기 위해 배우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판소리 경력 20년. 20년 동안 이자람은 지금처럼 무대를 즐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슬럼프를 극복했을까? ‘그래, 저런 사람이 무대에 서는 거야’,  다시금 각오를 다지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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