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혁신적인 손드하임의 뮤지컬
<스위니 토드>
드디어 <스위니 토드>가 다시 오른다. 2007년 국내 초연 이후 여러 차례 공연 소식이 들려왔지만 실제 공연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무차별 살인을 하는 이발사와 인육 파이를 만드는 파이 가게라는 엽기적인 소재를 다루는 이 작품은 스릴러 뮤지컬의 효시로 꼽힌다. 1979년 브로드웨이 초연부터 혁신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여전히 공연이 올라갈 때마다 이슈가 되는 작품이다. 2007년 아드리안 오스몬드가 연출한 국내 공연 역시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무대와 연극성이 강한 연출로 마니아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올해 공연에는 초연 스위니였던 양준모와 대표적인 뮤지컬 배우 조승우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더욱 관심을 끈다. 소녀 같은 감성을 보이다가도 누구보다도 엽기적인 행동으로 돌변하는 러빗 부인 역도 옥주현, 전미도가 캐스팅되어 기대를 높이고 있다. 9년 만에 국내에서 <스위니 토드>를 만나기 전에 작품의 가치와 매력을 미리 살펴본다.
<스위니 토드> 탄생 배경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스위니 토드>는 이발사 벤자민 바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간 복역하고 돌아와 무자비한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벤자민 바커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스위니 토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다. 원래 이 이야기는 빅토리아 시대에 떠돌던 ‘무자비한 살인마 이발사와 인육으로 만든 파이를 파는 가게’라는 도시 괴담에서 비롯됐다. 160명을 살해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는데, 토마스 패킷 프레스트가 이를 도시 노동자들이 즐겨 읽던 싸구려 가판 신문에 연재했다. 이것이 1848년 나온 소설 『진주 목걸이: 로맨스』이다. 제목인 ‘진주 목걸이’는 이발사가 면도용 칼로 목을 그을 때 피가 흐르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자극적인 소재의 이야기는 많은 아티스트들의 관심을 끌었고 여러 버전의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1973년에는 크리스토퍼 본드가 소설을 각색해 연극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를 올렸다. 이 작품은 자극적인 내용에 초점을 둔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빅토리아 시대의 암울한 사회상이 만들어낸 살인마로서 스위니 토드에 접근했다. 손드하임이 바로 이 크리스토퍼 본드의 연극을 보고 뮤지컬을 만들 결심을 했다. <컴퍼니>, <폴리스>, <소야곡>, <태평양 서곡> 등 1970년대 함께 작품을 만들어온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가 동참했다. 그러나 손드하임과 해롤드 프린스는 이 소재에 끌리는 부분이 달랐다. 손드하임은 멜로드라마적인 구조와 개성 강한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반면, 이때까지만 해도 꽤 사회적인 시각을 유지했던 해롤드 프린스는 스위니 토드를 빅토리아 시대의 폐해가 만들어낸 희생양으로 봤다. 그는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살인마가 되어가는 스위니 토드에 집중하려고 했다.
스위니 토드의 비극을 한 개인의 비극과 복수로 볼 수도 있지만, 작품은 이를 시대적인 문제로 파악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혁명으로 가난한 하층민들이 도시로 모여들던 시기였다. 갑작스럽게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도시는 이들을 받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층민은 하수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좁고 불결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러나 권력을 지닌 위정자들, 신흥 계층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부를 늘렸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며 빈부 격차를 벌려 갔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집필하고 과학주의가 각광받은 이 시기에 도시 괴담이 떠돌았던 것은 산업사회의 불신과 병폐가 왜곡되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지배하던 이 시기는 절제와 엄격한 도덕주의를 강조하는 빅토리아리즘이 시대적인 가치로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런던의 매춘부는 8만 명이나 증가했고, 그와 연관된 숙박업, 포주와 뚜쟁이들이 활기를 폈다. 엄격한 절제는 허울이었을 뿐 귀족들은 어둠의 통로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작품은 스위니 토드를 불운한 피해를 받은 한 개인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괴물로 파악한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시화의 문제, 빈부 격차, 그리고 권력자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이다. 손드하임은 귀를 찢는 듯한 호각소리,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멜로디를 통해 음악에서도 산업혁명으로 인한 어두운 이면을 암시하고 있다.
1979년 문제작의 탄생
1979년 손드하임과 프린스는 뮤지컬로 만들기 쉽지 않은 스릴러 장르에 도전했다. 손드하임은 스릴러의 거장인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의 팬이었는데, 그러한 성향이 <스위니 토드>를 제작하도록 자극했다. 원래는 소극장 규모의 작품으로 구상하였으나 해롤드 프린스는 이 작품을 그리스 비극 형식을 차용해 대극장 규모로 확장시켰다. 인육으로 파이를 만드는 식당과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르는 이발소를 하나의 거대한 세트로 합쳐놓은 세트는 당시만 해도 단일 구조물로는 최대 규모였다. 삶(식사)과 죽음(살인)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묶어놓은 건물은 보는 시각에 따라 삶의 아이러니로, 또는 살인과 식사가 마치 컨베이어벨트처럼 기계적으로 순환하는 산업혁명의 잔혹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는 대중물로서 멜로드라마가 유행하던 시기이다. 손드하임이 주목한 것도 멜로드라마적인 요소였다. 작품에서 너무나도 명확한 절대 악은 터핀 판사와 권력에 기생하는 비들이 등장한다. 스위니 토드는 이들을 제거함으로써 민중의 영웅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드하임과 프린스는 <스위니 토드>를 평범한 멜로드라마에 머물도록 두지 않는다. 살인마 스위니 토드를 영웅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영웅이 될 수도 있었던 스위니가 결국은 무자비한 살인마가 되는 과정을 그리스 비극은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 스위니 토드의 일화를 들어보라며 합창하는 첫 곡 ‘스위니 토드의 발라드’를 부르는 군중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스 비극의 특징은 영웅이 하마르티아(Hamartia, 결함)로 인해 비극적인 상황에 빠진다. 스위니 토드에게 결함은 ‘집착’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파멸을 맞는 것처럼, 스위니 토드는 복수에 ‘집착’한 나머지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살해하고, 자신의 딸마저 죽이려고 한다.
<스위니 토드>는 멜로드라마 형식을 띠지만 비극의 형식을 결합시키고, 스릴러와 희극이 혼재하는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작품이다. 잔인한 살인을 하는 작품이지만 관객들은 보통의 스릴러처럼 긴장감에 빠져 있지는 않는다. 유머 코드가 작품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터핀 판사에게 복수할 기회를 놓치고, 분노가 폭발해 살인마로 변한 후, 작품에서 가장 위트가 빛나는 ‘Little Priest’ 장면이 이어진다. 러빗 부인이 시체로 파이를 만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장면에 등장하는 이 노래는 신부(神父)로 만든 파이는 속죄하는 데 딱이고, 변호사로 만든 파이는 너무 비싸다는 등 너스레를 떠는 가사로 되어 있다. 권력자들의 풍자로 가득한 이 노래는 위트와 유머로 이 노래가 인육 파이를 계획하는 노래라는 것을 잊게 할 정도다.
<스위니 토드>는 멜로드라마와 비극이 혼재된 스토리이면서 연출 방식은 기본적으로 서사극적인 방식을 따른다. 해롤드 프린스는 암전이 없는 상태로 극이 진행되고 코러스들이 무대를 전환하는 등 브레히트의 서사극적인 연출을 한다. 이는 관객들로부터 이 작품이 영웅이 악인을 벌하는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잔인한 살인마이자 불쌍한 희생자인 스위니 토드의 비극을 비판적으로 보게 하면서 동시에, 어느새 인육 파티 이야기를 즐기고 있는 관객들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드라마를 선도하는 음악
손드하임은 뮤지컬 장르를 예술적으로 한 단계 격상시킨 아티스트로 추앙받는다. 그는 뮤지컬 음악에 대한 철학이 분명했다. 손드하임은 “뮤지컬 작곡가는 노래라는 형식을 빌려 극을 만드는 극작가”라고 생각했다. <스위니 토드>는 손드하임의 뮤지컬에 대한 철학과 생각, 그리고 그의 스타일이 가장 잘 담겨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캐릭터의 성격을 반영한 라이트 모티프가 되풀이되는데, 어느 한 순간도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손드하임은 매순간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멜로디가 아름답다고 해서 어떻게 동일한 음악을 반복할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스위니 토드>에서는 많은 곡들이 반복되지만 매번 다르게 변박으로 진행되거나 변주된다. 이것은 단지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그렇게 불러야 드라마적인 이유를 담고 있다. ‘Not While I'm Around’는 거리의 소년 토비아스가 자신을 친절하게 돌봐준 러빗 부인을 지켜주겠다며 부르는 노래다. ‘누구도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이 노래에는 토비아스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노래는 토비아스가 파이집의 비밀을 알게 되고 조리실에 숨어 있을 때 러빗 부인이 그를 찾아다니며 안정시킬 목적으로 부른다. 러빗 부인의 ‘누구도 너를 다치게 하지 않을게’란 말은 진심이 아니며, 그를 꾀어내 제거할 목적으로 부르게 된다. 러빗 부인의 노래는 보컬 멜로디와 반주 멜로디가 불협화음을 이루며 러빗 부인의 음흉한 꿍꿍이를 불편한 음악으로 드러낸다.
스릴러 뮤지컬 스타일을 띠는 <스위니 토드>의 음악은 히치콕의 영화들과 영화 <죠스>의 음악을 작곡한 버나드 허먼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름다운 멜로디이지만 무언가 심각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 음악은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마치 잔잔한 파도가 이는 바닷가에 음악만으로도 언제 식인상어가 나타날지 모를 두려움과 공포를 만들어내듯, 상황과 음악의 부조리를 통해 공포심을 극대화한다. 터핀 판사가 스위니의 이발 의자에 앉아 그에게 목을 맡기고 흥얼거리는 아름다운 발라드 ‘Pretty Women’이 그러한 노래다. 스위니는 복수의 시간을 조금 늦추고 그 순간을 즐기며 터핀 판사와 듀엣으로 ‘Pretty Women’을 부른다.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멜로디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인해 부조리한 상황을 연출한다. 터핀 판사의 복수가 좌절된 후 복수의 불꽃이 일반 다수에게 향할 때 스위니 토드는 무심하게 ‘Johanna’를 부른다. 딸을 생각하며 읊조리듯 ‘Johanna’를 부르는 스위니 토드는 회상에 젖은 듯하고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그가 하는 일은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의 목에 칼을 긋는 것이다. 상황과 부조화를 이루는 음악은 이성을 잃고 살인마로 변한 스위니 토드의 사이코패스적인 면모가 두드러지게 한다.
손드하임은 배우들의 행동까지도 철저히 계산해 음악에 반영하기로 유명하다. <스위니 토드>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2막을 여는 노래 ‘God, That's God’은 러빗 부인의 파이 집에 손님들이 가득 찬 상황에서 손님들이 부르는 노래다. 손드하임은 20명의 손님들이 다섯 테이블에 나눠 앉아 술을 마시고, 맥주잔을 내려놓고 하는 구체적인 동작까지도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향이 잘 드러나는 또 다른 노래가 ‘Worst Pies In London’이다. 스위니가 러빗 부인의 파이가게에 처음 들렸을 때 러빗 부인이 오랜 만에 찾아온 손님을 위해 파이를 만들며 부르는 노래이다. 반죽을 하고, 방망이로 반죽을 내리치고, 지나가는 바퀴벌레를 죽이는 행동을 노래 안에 담아냈다. 그렇게 지저분한 과정을 거쳐 런던에서 가장 맛없는 파이를 스위니에게 건네면서 노래가 끝난다.
다양한 버전의 <스위니 토드>
빅토리아 시대의 흥미로운 괴담은 소설과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었다. 손드하임을 자극한 크리스토퍼 본즈의 연극 이외에도 1936년에는 토드 슬러터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2006년 BBC에서 제작된 드라마 <스위니 토드>는 기본적인 컨셉만 공유할 뿐 더욱 풍성한 설정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BBC 드라마에서 스위니 토드는 아버지의 잘못으로 형은 살해당하고 자신은 수십 년간 복역을 하고 돌아온 후 살인 충동에 시달리는 이발사로 등장한다. 당시 이발사는 의사의 역할도 겸했던 것을 반영해, 살인을 하는 스위니 토드뿐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스위니 토드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러빗 부인과의 로맨스는 강해지면서 사회적인 갈등보다 내면적인 갈등이 부각된다.
1979년 해롤드 프린스 연출의 뮤지컬이 바이블처럼 자리 매김한 후, 2004년 존 도일 연출의 액터-뮤지션 버전의 <스위니 토드>가 색다른 매력을 전해 주었다. 원 세트의 빈 무대에서 10명의 배우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존 도일 버전은 배우들이 음악까지 연주하다 보니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기대할 수 없지만, 단순한 악기 편성으로 음악적으로 정돈된 느낌을 준다. 무대에는 관이 하나 놓여 있을 뿐, 빈 무대로 진행하는데, 피아노와 사다리, 관 등 매우 단순한 소품들을 이용해 미니멀한 연출을 한다. 무대가 비어 있는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연출적인 아이디어와 조명, 그리고 음악이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를 완벽하게 콘트롤하는 손드하임의 음악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악기를 들고 연기를 해야 하는 액터-뮤지션 방식이다 보니 세밀한 연기보다는 드라마가 있는 콘서트처럼 풀어간 방식도 음악에 귀 기울이게 한다. 존 도일은 좀비들의 세계인 듯 이미지 면에서는 전작과는 달리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배우들의 의상과 분장까지도 흑과 백의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데 게다가 극 중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관은 그러한 느낌을 더욱 강하게 준다.
2008년 팀 버튼 감독의 뮤지컬 영화 <스위니 토드>는 그의 다른 영화들처럼 고딕풍이 강한 어두운 작품으로 태어났다. 조니뎁이 스위니 토드로, 헬레나 본햄 카터가 러빗 부인으로 출연한 이 작품은 영화의 사실성이 더해 살해 장면을 끔찍하게 묘사했다. 비극과 코미디가 곁들여진 원작과는 달리 시종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하는 작품이었다.
드디어 한국 관객들과 만나는 2016년 <스위니 토드>는 국내 초연에서 제작을 맡은 박용호 프로듀서와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프로듀서가 각각의 스타일로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에는 신춘수 프로듀서의 주도로 제작되는 버전이 선보인다. 연출은 시그니처 씨어터의 예술감독인 에릭 셰퍼가 맡는다. 그는 이 극장에서 손드하임의 <어쌔신>, <인투 더 우즈>, 그리고 <스위니 토드>를 올린 바 있다.
6월 21일~10월 3일
사롯데씨어터
1588-5212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3호 2016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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