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라는 이름의 책임감
2006년 <지킬 앤 하이드>의 앙상블로 데뷔해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김승대. 스스로를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칭하는 그는 종종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장르로 폄하되곤 하는 뮤지컬에서 배우의 ‘연기’가 지닐 수 있는 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달려온 10년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뮤지컬이 던져준 질문 <지킬 앤 하이드>
“제가 다닐 당시만 해도 동국대 연극영화과는 오로지 정극만 취급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유독 뮤지컬을 좋아하던 한 동기가 <지킬 앤 하이드> 앙상블 오디션에 지원하면서 제 이름으로 된 지원서를 같이 제출한 거예요. 경험 삼아 보자는 꼬드김에 넘어가 따라나섰는데, 뜻밖에 캐스팅이 되면서 뮤지컬에 데뷔했죠. 정극만 배운 제게 뮤지컬은 완전히 낯선 세계였어요. 라이선스 뮤지컬이기 때문에 배우가 정해진 대로만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충격적이었고, 감정이 격한 장면에서 음정과 박자를 완벽히 지키며 노래한다는 것도 모순적으로 느껴졌죠. 그렇게 1년 가까이 공연하면서 뮤지컬 연기는 왜 다른지, 이 모순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알아보고 싶어졌어요. 그 숙제를 풀려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지났네요.”
가능성과 한계의 시험 <햄릿>
“『햄릿』은 제 졸업논문 주제였기도 할 만큼 애착이 큰 작품이라 뮤지컬도 기쁘게 참여했어요. 제가 맡은 레어티즈 역은 ‘킬러스 네임’이라는 고음의 헤비메탈 넘버를 소화해야 했죠. 부족한 가창력 대신 연기력으로 승부하고 싶었던 저는, 복식 호흡이 아닌 흉부 호흡을 쓰는 색다른 창법을 시도했어요. 음정과 박자는 흔들려도 노래 속에 연기적인 정서를 꽉 채워서, 이렇게도 뮤지컬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게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나 봐요. 아직까지도 최정원, 남경주 선배님은 저를 레어티즈로 기억해주실 정도니까요. 그렇게 해서 2008년 햄릿 역까지 따냈지만, 이때 다시 벽에 부딪혔죠. 공연 내내 목소리 컨디션을 유지하며 노래해야 하는 주인공 햄릿은 같은 창법으로 풀어가기엔 벅찬 역이었거든요. 도대체 뮤지컬 연기는 어떻게 접근해야 맞는 걸까 더 깊이 고민하게 된 작품이에요.”
실패의 경험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쉬카네더는 저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준 역할이에요. 대표 넘버인 ‘나는 쉬카네더’는 가창력, 춤, 연기, 무대 매너를 복합적으로 필요로 해서 당시 입시 곡으로도 무척 인기를 끌었죠. 저한테 MR 좀 구해달라는 문자가 하루에 200통씩 날아오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제가 가장 실패한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쉬카네더 역을 맡았을 때 저는 역사 속 인물을 분석해 타당성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거든요. 하지만 돌아보니 쉬카네더는 그런 드라마적 분석보다 객석 분위기를 환기하는 쇼스타퍼로서의 기능이 중요한 역할이었어요. 이 작품 안에서 쉬카네더가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 제가 그걸 간과한 거죠.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역할이에요.”
나를 닮은 역할 <엘리자벳>
“<엘리자벳>의 루돌프 역시 저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된 역할이죠. 사실 이 역할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는 가정사가 비슷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종갓집 종손인데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떨어져 산 시간이 길었거든요. 어머니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루돌프를 보며 꼭 예전의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연기에도 제 감정이 많이 반영됐는데, 다행히 많은 관객 분들이 그걸 좋아해주셨죠. 이 작품을 하면서 어머니께 루돌프의 넘버인 ‘내가 당신의 거울이라면’을 직접 불러드린 적도 있어요. 원래 부모님께 애정 표현을 안 하는 성격이라, 저로서는 그게 처음으로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표현한 순간이었어요.”
영광과 시련 <영웅>
“안중근은 초연 때 정성화 형님이 다져놓은 이미지 때문에 섣불리 도전하기 힘든 역이었어요. 그런데 실제 안중근 의사는 성화 형님보다 오히려 저와 비슷한 호리호리한 이미지이셨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제가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을 찾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엄청 했어요. 안중근 의사에 대한 픽션을 섭렵하고, 한국에 없는 재판 기록을 러시아에서 공수해와 보기도 했죠. 안중근이라는 대단한 인물이 되어 무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수 있었단 것 자체가 저로서는 큰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선 제가 감히 점수를 매길 수 없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시련을 준 작품이기도 해요. 이 작품을 이토 히로부미를 미화한 친일 작품이라고 생각한 분들이 당시 일본 활동을 겸하고 있던 제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거든요. 제겐 프라이드와 상처를 동시에 남긴 작품이에요.”
인식의 전환 <베어 더 뮤지컬>
“제가 성소수자에 관해서는 까막눈이에요. <거미 여인의 키스>라는 연극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방면으로는 사고가 닫혀있는 사람 중 하나였죠. 그런데 이 작품을 하면서 시선이 바뀌었어요. 이성 간에도 사랑하기 쉽지 않은데, 동성 간의 사랑은 얼마나 조심스러울까, 마음을 숨기고 고민하는 시간이 얼마나 괴로울까 느껴지더라고요. 그 마음을 제가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위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공연을 보러온 동성애자 커플을 본 적이 있는데, 두 남자가 손을 잡고 당당하게 들어오는 모습이 참 용기 있고 멋져 보이더라고요. 저처럼 고지식한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건 작품의 힘 덕분인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5호 2016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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