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람·이진욱의 작곡가의 <라흐마니노프>
저도 라흐마니노프가 좋아했던 쇼팽과 차이콥스키를 정말 좋아해요. 반대로 그가 지금 시대를 살았다면 왠지 제가 좋아하는 밴드를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은 저와 음악 취향이 비슷하더라고요. 이런 상상을 하면서 100여 년 전 살았던 작곡가와 일방적인 음악적 교감을 시도했어요. 정말 삶이 온통 라흐마니노프로 뒤덮일 정도로 열렬히 그의 모든 걸 찾아보았죠. - 김보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매우 아름다워요. 선율이 호모포닉하지만 그 선율을 받쳐주는 반주와 스코어링은 정말 악보를 볼 때마다 경이로웠어요. 이렇듯 아름다운 음악이지만 뮤지컬을 염두에 두고 작곡하지는 않았잖아요. 그런데 음악을 많이 듣다 보니 피아노 선율이 노래처럼 들리더라고요. 고민한 끝에 ‘라흐마니노프가 뮤지컬을 쓴다’라고 가정해 보았어요. 그 순간 참 황홀해졌어요. - 이진욱
‘열등감’
이 곡을 완성하기 전에 여러 개의 완곡을 만들어봤어요. 라흐마니노프의 에뛰드나 프렐류드를 차용한 것도 있고, 온전히 제가 쓴 곡도 있어요. 그런데 자신이 없어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했죠. 시간이 흘러가는데도, 감이 잘 안 잡히더라고요. 그때 이진욱 음악감독님이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열등감’과 잘 맞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었어요. 그래서 차용하게 되었죠.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작곡한 뒤 친구에게 ‘작곡하기란 정말 고통스럽다’라는 편지를 보냈대요. 그런 만큼 이 곡이 라흐마니노프와 즈베레프의 분노와 열등감을 솔직하게 표현해 주는 것 같아요. - 김보람
‘기억 저편으로’
최면 곡을 쓰기 전에 최면을 받아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의심도 많고 겁이 많아 이와 관련된 동영상을 찾아보는 걸로 대신했죠. 처음엔 좀 강한 스타일의 곡을 완성했는데, 달 박사 역을 맡은 배우들이 조금 무섭고 주술사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최면에 대한 제 공포가 무의식 중에 드러난 것 같아요. 달은 라흐마니노프를 뒤에서 지켜봐 주고 안타까워하는 역할이니 이런 느낌을 반영하면 좋겠다고 배우들이 의견을 줬어요. 그걸 참고해 지금의 곡으로 수정을 했죠. - 김보람
‘나는 왜’
라흐마니노프의 심경을 대변하는 뮤지컬 넘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연을 코앞에 두고, 연습을 끝낸 후 정신이 몽롱한 새벽 4시 즈음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내가 라흐마니노프라면’ 어떨까 가정을 하고, 그가 잘 쓰는 음악적 기법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뮤지컬 넘버로 풀어보자는 생각을 하며 곡을 만들었어요. 실제로 라흐마니노프에게 영향을 받아 만든 팝송 ‘All By My Self’를 듣는 것도 도움이 되었어요. 힘들었던 시간, 단숨에 쓰고 싶었던 곡이라 애정이 많이 가요. - 이진욱
‘내 마음 울리네’
실제로 니콜라이 달 박사의 치료 이후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만들었고, 이곡을 박사에게 헌정했대요. 그런 만큼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다각도로 보려고 노력했어요. 이 곡의 구조는 전형적인 낭만주의 시대의 협주곡 형식을 따라 작곡되었지만, 라흐마니노프 본연의 음악적인 특징 즉 선율과 화성이 정말 아름답게 잘 짜여 있어요. 오랜 시간 듣다 보니 선율이 노래처럼 들리기도 했고요. 그런 만큼 피아노 협주곡 2번 3악장의 클라이맥스를 노래에 맞게 편곡해 보았어요. 그리고 노래의 시작 부분을 새롭게 만들어 붙여보았죠. - 이진욱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6호 2016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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