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믿음이 만나는 순간
“파격 변신이죠.” 백형훈 스스로가 말하듯 <트레이스 유>의 구본하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물론 그는 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틀을 깨는 변신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를 자유롭게 누비고 다녔다. “본하라는 캐릭터에게 고마워요. 그동안 했던 역할들이 조금 바른 이미지였거든요. 학생이거나 왕자. (웃음) 그런데 본하는 그야말로 에너지 탱크거든요. 그 에너지를 채우려면 무대에서 정말 다 쏟아 부어야 해요. 그런 만큼 무대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있어요.”
<트레이스 유>는 록 뮤지컬이란 점에서도 백형훈에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록 뮤지컬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일까? 그는 어느 때보다 더 무대를 즐기는 듯 보였다. “흔히들 록을 자유라고 하잖아요. 근데 실제로 무대에 올라보니 그게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자유롭고 신 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구나! 정말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요. 사슬을 벗어던지는 느낌이랄까요.(웃음)” 그는 특히 극의 초반 ‘또라이’, ‘미친 밤’, ‘나를 부셔봐’로 이어지는 클럽 장면을 떠올리며,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이 무아지경에 빠지는 순간이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백형훈은 무엇보다 관객의 소중함을 느끼는 배우다. 한 때 가수의 꿈을 키웠던 그는 우연히 들었던 스티브 발사모의 ‘겟세마네’에, 또 우연히 본 뮤지컬 갈라쇼에 이끌려 뮤지컬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처음 선 뮤지컬 무대가 그에게 관객의 소중함을 몸소 깨닫게 해주었다. “가수가 되려고 보낸 시간이 5년여 정도 돼요. 그러다가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섰는데, 관객을 마주한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간혹 어떤 분이들은 재능만 있으면 산에 가서 음악하면 된다고 말하는데, 전 그건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가수나 배우는 무대에 오르고, 그걸 보는 관객이 있어야 완성된다고 봐요. 그런 만큼 첫 무대가 정말 행복했어요.”
백형훈은 2010년 <화랑>으로 데뷔 한 후 2014년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조동현 역을 맡으며 차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쓰릴 미>의 나, <엘리자벳>의 루돌프, <넥스트 투 노멀>의 헨리와 게이브 등 마니아층이 있는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서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나갔다.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하나만 꼽긴 어려워요. 어느 하나 그냥 지나간 작품이 없으니까요. 군대에 있을 때 <프라미스> 앙상블을 했거든요. 그때 김무열 형이 이런 말을 해줬어요. 하찮은 배우는 있어도, 하찮은 배역은 없다고요. 매 배역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지금 배우 생활을 하는 데 큰 거름이 되어 주고 있어요.”
오는 9월 말, <트레이스 유>에 이어 그가 오르게 될 무대는 <씨왓아이워너씨>. 지난해 10월 보름 동안만 짧게 공연해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번에 재연 소식을 알려 반가움을 더한다. 백형훈이 맡은 역은 지난 공연과 같이 강도와 기자 역. 하지만 그 사이 연극 <아들>과 <트레이스 유>에 출연하며 스펙트럼을 넓힌 그이니 한층 깊이 있는 무대를 기대해볼 수 있겠다. “강도의 경우 지난 공연에선 연쇄살인마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더 색깔 있게 표현하고 싶어요. 제게 한정되는 이미지들을 좀 깨고 싶거든요. 치기 어린 강도! 밑바닥 인생이란 날것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요. 기자의 경우는 끔찍한 테러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거든요. 이번 공연에선 거기에 더 깊이를 담아내고 싶어요.”
1,2막과 막간극으로 구성된 독특한 작품 <씨왓아이워너씨>. 이 작품이 펼치는 세 개의 이야기는 보는 시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 점은 무대에 오르는 배우에게도 꽤 매력적일 듯하다. “이 작품은 결말을 확실히 짓지 않거든요. 그래서 관객들이 ‘그래서 진실이 뭐지?’ 하고 고민하게 돼요. 그 자체가 이 작품의 매력이에요. 또한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는다’는 철학이 담겨 있잖아요. 이러한 작품의 교훈적인 메시지가 출연하는 배우에게 프라이드를 느끼게 해요.”
지난 6월 연극 <아들>을 시작으로, <트레이스 유>, <씨왓아이워너씨>로 쉼 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백형훈. 그는 이러한 주행이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올해 초에 좀 힘들었어요. 그런데 주위를 보면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배우들이 많더라고요. 나도 본받아야겠다 싶었어요. 힘든 때일수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도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증명하고 싶거든요.”
백형훈이란 이름이 캐스팅 보드에 올랐을 때, 관객들로 하여금 ‘기대된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 그는 그런 순간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하며, 믿음직한 미래를 꿈꾸었다. “사실 지금 엄청 치열하게 살고 있어요. 누가 봐도 정말 열심히 산다고 느낄 정도로요. (웃음) 배우로서도 잘 살아야 하지만, 저 스스로도 좋은 인생을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제가 꿈꾸는 미래를 이루기 위해 계속 무대에 오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젠가 꿈꾸는 미래에 가까워졌을 때, 치열한 모습도 좋지만 그보단 좀 더 여유가 느껴졌으면 해요. 그때쯤이면 여유가 느껴지면서 좋은 기운을 뿜어내는 배우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6호 2016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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