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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달콤한 나의 도시>의 김우형 - 지금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안다 [No.75]

글 |김영주 사진 |박인철 2009-12-14 6,114


인터뷰에 있어서 만나는 대상이 누구냐는 것 다음으로 결정적인 요소는 아무래도 만남의 시기가 언제냐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창작뮤지컬, 게다가 초연의 6회째 공연을 끝낸 배우와 인터뷰를 하다보면 좀더 확신을 갖게 되는 생각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김우형은 인류애를 실천하려는 의학자 지킬이자 잔혹한 살인자 하이드였으며, 사랑과 지배욕이 뒤엉킨 치열한 심리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게이 청년이었다. 그 즈음 언젠가에 만났다면 김우형에게서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인물의 감정과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캐릭터 ‘위치’를 연기하고 있는 김우형은 마치 스태프처럼 창작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의 의미와 어려움, 사명감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첫 공연 이후계속 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 정신이 없어요. (창작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이) 어렵잖아요, 사실. 제가 하고 있는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이 다 잘됐으면 하거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많은 문제들이 있죠. 당장 대관 문제부터가 그렇고요. <명성황후>처럼 10년 넘게 롱런하면서 작품을 보완해나갈 수 있으면 정말 좋은데 초연이 마지막 공연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참 아깝죠.”

무(無)의 상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만들어 가다보니 배우의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 전체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창작뮤지컬의 현실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이번 작품을 진두지휘한 황재헌 연출과는 <나쁜 녀석들> 때 처음 만나 좋은 인연이 되었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그의 이름 석자에 대한 믿음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 주었다. “원작 소설과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요. 하지만 무대에서 완전히 같은 걸 보여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원작 소설의 핵심을 가지고 오면서 무대 공연에 맞게 재창조되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신선하고 파격적인 시도를 했어요.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죠. 이번 작품을 하면서 다같이 여러 가지로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는데 이 경험이 배우로서 제가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평생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밝게 탈색한 머리와 무대의상이 시선을 끄는 김우형은 <나쁜 녀석들> 이후 오랜만에 무대 위에서 신나게 놀아야 한다는 것이 약간은 쑥스러운 듯했다. “위치는 극 속에 포함된 인물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주제를 보여주는 사회자 캐릭터에요. 그래서 제가 하는 연기에 대한 다른 배우들의 리액션 없이 계속 혼자 놀아야 해요.” 대표작으로 <지킬 앤 하이드>와 <쓰릴 미>가 얼른 떠오르고, 평소에도 과묵하고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김우형이지만 그는 <그리스>와 <올 슉 업>, <나쁜 녀석들>을 거쳐 온 배우다. 헨리 지킬과 대니 주코를 함께 연기할 수 있는 뮤지컬 배우가 또 누가 있을까.


“<지킬 앤 하이드>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 학교를 졸업한 후 6개월 정도 아무 오디션도 보지 않았어요. 만일 <지킬 앤 하이드> 오디션 공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1년이 됐든, 2년이 됐든 저는 뮤지컬 오디션을 안 봤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졸업을 하면서 했던 생각이 나 스스로를 제대로 만들어서 나가자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노래든 춤이든 연기든 트레이닝만 하고 있었는데 그 오디션 공고가 난거예요. 다른 건 다 참았는데, 그건 못 참겠더라고요.” 그렇게 참가한 오디션에서 덜컥 캐스팅이 되었고, 2006년에는 ‘다크호스’ 지킬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남자배우라면, 특히 한국에서 뮤지컬을 하는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꾼다는 그 역할을 쥐었을 때의 환희는 아마도 그의 배우 인생 마지막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조승우, 류정한이라는 배우들을 보면서 뮤지컬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들과 같은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거의 꿈같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쟨 대체 누구야?’라는 시선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뭘 잘 몰랐기 때문에 ‘조승우보다, 류정한보다 내가 어떻게 잘해? 아, 그냥 해, 그냥 다 쏟아내 보자.’ 이런 마음이었어요.” 쏟아낸 후에 갈무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그 후에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공연에 후회가 있을 수는 없다. 그저 다음을 기약할 뿐이었고, 그 기회가 올해 초에 왔던 것이다. 두 번째로 도전한 <지킬 앤 하이드>에서 그는 자신이 무대에서 얼마만큼 성장하고 내실을 다져왔는지 증명하면서, 이 작품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주인공으로 좀 더 깊이 이름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헨리 지킬과 달리 김우형의 목표는 좀더 섬세하고, 개인적이며, 소박하다. “남자로서 야심이 부족한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배우로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원하는 건 대단한 명성 같은 게 아니에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같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과하게 힘들어가지 않은 진솔한 연기를 하고, 끝난 후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한 잔 하는 거면 충분해요. 그런데 재능이나 노력으로 어떻게 안되는 게 무대 위에서의 연륜인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무대에서 여유를 못 부리고 있어요. 선배들 말로는 무대에서 힘 빼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려면 10년은 걸린다고 그러던데… 어쨌든 경험이 쌓여갈수록 조금은 편해지는 게 느껴져요. 나이를 먹으면 채워지는 것들이 많아지잖아요. 그때는 무대 위에서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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