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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 <팬레터> 김종구 [No.158]

글 |배경희 사진제공 |벨라뮤즈 2016-11-21 8,654

찬란한
핏빛 사랑



경성시대의 외로웠던 천재 작가, 김해진. 세상이 그에게 열렬히 꿈꿔 왔던 뮤즈를 보내준 올 한 해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비록 우리 모두 그 모든 것이 그를 동경했던 또 다른 외로운 소년의 환상이 빚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해도 말이죠. 김해진 작가에게 부디 하루라도 더 긴 생이 허락되길 바라며,  그와 마지막 대화를 글로 옮깁니다.


* 이 글은 김해진 역을 맡은 김종구와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진 씨, 당신은 언제부터 글을 썼어요?
나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고, 우리 가족은 내가 어려서부터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오. 내성적에다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사람들하고도 두루두루 지내질 못했고. 불운했지요, 내 어린 시절은. 그런데 글을 쓰면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다오. 글 쓰는 게 사랑받는 법이라는 걸 일찍이 알았지요. 헌데 기자 양반, 질문이 뭐였지요? 아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썼다오.


외로워서 슬픈 소설을 썼어요? 누군가 나의 슬픔을 알아주길 기대하면서?
나는 글에서조차 슬픔을 도드라지게 표하지 못했다오. 그런데 히카루가 제 슬픔을 알아봐 준 거지요. 깜짝 놀랐죠. 가슴 벅찬 놀라움이었소.


독자 팬레터에 답장해 준 건 히카루가 처음이었어요?
그렇지요, 네. 콜록콜록. 처음엔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소. 히카루는 “오늘은 날씨가 좋습니다”라는 문장이 그저 날씨 얘기를 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히카루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예뻤으면 좋겠다, 키가 컸으면 좋겠다 생각하겠지요.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까진 말이오. 하지만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데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오.


그래도 한 번쯤은…. 아, 질문을 이렇게 바꿀게요. 당신은 어떤 얼굴을 좋아하죠?
자네도 참, 실없기는.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뭔지 아직 모르는구먼. 나와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누군가에게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완벽히 이해받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당신은 모르는 것 같구료.


당신은 언제부터 히카루를 사랑하게 됐는데요?
히카루에게 편지가 오지 않았을 때 비로소 내 마음의 크기를 가늠하게 됐지요. 그 전까지 막연하게 좋다고만 생각했지 그 마음이 얼마큼 큰지 몰랐거든. 근데 답장이 올 때가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니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콜록. 히카루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나서 같이 소설을 쓰자는 편지를 받았을 때는 이젠 이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대체 혈서는 왜 보낸 거예요, 무섭게?
그게 그렇게 무섭소? 나쁜 마음은 아니었는데…. 그저 그리운 마음이 너무 커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절실함의 표현이었을 뿐이오. 편지의 내용을 아직 기억하는데, 정확히 이렇게 썼소. 부디 노여워하지 말고 짧게라도 좋으니 안녕의 여부라도 알려주시구려.
당신은 소심하다면서 은근히 막무가내 기질이 있단 말이지요. 히카루가 당신에게 보낸 소설도 맘대로 동인지에 공개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글을 썼단 말이오. 당신이라면 자랑하고 싶지 않겠소?


어쨌든 히카루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당신이 자기 편지마저 동료들에게 보여준 것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났잖아요. 당신은 히카루에게 실망했다는 편지를 받고 부랴부랴 그녀가 입원 중인 병원에 찾아갔다 헛걸음질만 쳤고요. 그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어요?
아니요, 그런 생각은 못 했지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이 사람이 지금 여기 없으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런 생각밖에 안 했다오. 나는 사랑에 취해 있었으니까. 미쳐있었으니까.


세훈이가 히카루의 정체를 고백했을 때, 많이 원망스러웠죠?
그 녀석이 차라리 끝까지 거짓말을 해줬다면 더 좋았겠지요. 가슴 아프지만 나만 모르는 척하면 계속 히카루를 사랑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함께 마지막 소설을 쓰잔 얘기를 듣고 히카루의 작업실을 찾아가던 길에 내가 얼마나 설렌 줄 아시오? 내가 글을 쓴 건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었소. 돈을 벌고 싶어서도 아니었고. 그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의미였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지막 글을 완성한다면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뭐가 있겠소? 나는, 비록 이렇게 날로 몸이 꺼져가지만, 그 좁은 방에서 작지만 밝게 빛나려는 촛불처럼 타오르고 싶었소.


해진 씨, 이제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건 당신도 잘 알잖아요. 마지막으로 세훈이를 한번 만나 보는 게 어때요?
나라고 그런 생각을 왜 안 했겠소. 사실은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혹시라도 세훈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편집실에 간 적이 있다오. 허탕이었지요.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갔지만 끝끝내 그 녀석을 보지 못했지요. 물론 행방을 수소문해 얼굴을 마주하고 작별 인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편지를 남기고 왔다오. 난 그 애와 말보다는 글로 나눴던 소통이 더 좋았으니까. (혼잣말) 히카루에게 남기고 온 꽃도 이젠 다 말라버렸겠네.


당신의 마지막 편지를 세훈이가 언제 볼지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사실은 그 역시 아직 당신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거예요.
나중에 세훈이를 만나거든 대신 인사를 좀 전해 주겠소?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내게 사랑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고. 이젠 원망도 없고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사이) 세훈아, 고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8호 2016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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