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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블랙메리포핀스> 송상은의 안나 [No.159]

글 |박보라 사진제공 | 아시아브릿지컨텐츠 2016-12-13 5,030

진정한 행복 


오래전 발생한 저택 화재 살인 사건의 피해자로 많은 사람의 안쓰러움을 자아냈던 안나. 시간이 흘러 그녀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이젠 안나의 기억 속엔 행복한 시간만이 가득 차길 바라는 바람을 담아, 그녀의 이야기를 글로 옮깁니다.


* 이 글은 안나 역 배우 송상은과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기억을 지우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이후 어떤 일상을 살았나요?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영원히 모른 척할 수 있었던 사실을 알았고, 잊어도 될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니까. 제 결정에 후회는 없어요. 그동안 전 마음 한구석이 비어져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행복해도 마음껏 웃을 수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 진짜로 내가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빈 곳이 비로소 채워지면서 진짜 행복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이젠 더는 무언가를 감추거나 지워내려고 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해요.


네 남매가 헤어졌던 시간은 어떻게 보냈어요?
전 정말 좋은 집으로 다시 입양을 갔어요. 새로운 양부모님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셨지만, 아이가 없으셨죠. 아직도 기억나요. 양부모님과 처음 만나던 날, 절 안아주시던 모습이요.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전 언제나 외로움과 함께였어요. 돌이켜보면 두 번이나 버려졌고, 그 사람(그라첸 박사)의 집을 떠났을 땐 갑자기 환경이 바뀌었으니까요. 종종 한스 오빠와 헤르만의 소식은 들었어요. 신문에서 능력 있는 변호사로 소개된 한스 오빠는 저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헤르만의 전시 소식을 듣고 찾아간 적도 있어요. 헤르만의 그림을 본 순간 움직일 수 없었죠. 나와 너무 닮은 그림에 놀라기도 했고, 그를 만나고 싶었어요. 하지만 헤르만은 절 피했죠.


안나. 당신이 음악 선생이 됐다고 했을 때,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양부모님은 제가 흥미를 보이는 것을 다 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처음에는 양부모님과 말도 잘 안 했어요. 사실 모든 것이 너무 낯설고, 힘들었거든요. 양부모님께서는 절 웃게 하려고 이것저것 많이 신경 써주셨죠. 일주일이 멀다 하고 제가 재미있어 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오셔서 ‘안나, 이거 해볼래? 저건 어떠니?’라고 하셨죠. 그중 가장 마음 편한 게 음악이었어요. 양부모님은 음악에 관심 두는 절 보면서, 정말 기뻐하셨죠.


네 남매와 헤어진 후, 오랜 시간이 지나 한스의 연락을 받고 뮌헨에서 재회했다고 들었어요.
사실 한스 오빠가 메리 아줌마를 찾았고 예전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연락을 했어요. 가야 하나 많이 고민했죠. 밤새도록 생각했는데, 전 그 아픔을 들춰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스 오빠에게 가는 내내, 우리 네 남매가 행복했던 시간이 기억났어요. 짙은 그리움이었죠.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한스 오빠를 만난다는 반가움도 있었어요.


그때, 네 남매가 다시 만났잖아요.
저는 정말 다른 형제들이 올 줄 몰랐어요. 한스 오빠와 함께 있는 헤르만을 본 순간,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어요. 헤르만은 제가 찾아가도 언제나 피했거든요. 그런 헤르만이 어떻게, 여기 있을 수가 있을까. 그래도 헤르만을 만나니까 좋았어요. 그리고 요나스를 보고 정말 슬펐죠. 제 기억 속의 요나스는 매일매일 동화를 썼던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말도 더듬고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니. 아직도 그때의 요나스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메리도 그곳에 있다고 했을 때, 정말 놀랐을 것 같아요.
제게 메리 아줌마는 언제나 보고 싶은 유모였어요. 하지만 늘 궁금했어요. 제 기억 속의 메리는 화재와 어떤 연관도 없던 것 같은데,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한스 오빠가 왜 그런 말을 했지? 혼자가 된 후에도 그런 의문은 있었어요. 가끔은 저를 정말 예뻐해 주던 메리 아줌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죠.


그렇다면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메리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나요?
저택에 화재가 일어나던 날, 전 메리 아줌마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그 사람이… 메리 아줌마가 오면 다 잊을 수 있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메리 아줌마가 와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어요. 메리 아줌마는 주저앉아 우는 절 안아주면서 함께 울었죠. 그리고 제게 약을 먹여주고 불을 질러줬어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메리 아줌마를 원망하지 않아요. 제게 그녀는 제 기억을 지워줄 수 있는 사람이었죠.


그날의 기억을 되찾은 후, 어떤 기분이었나요?
제 마음의 빈구석이 이거였구나, 그래서 내가 진짜 마음껏 웃지 못하고, 나를 사랑해 주지 못하고 내 밖을 겉돌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기억을 지우지 않는 것에) 동의합니다’라고 말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눈을 감고 생각해 봤어요. 너무 아픈 기억이라도 이 기억을 안고 살아가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어렵게 동의했죠.


헤르만의 그림을 보러 갔다고 했죠. 그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땐 어떤 기분이었어요?
혹시, 이 그림 속 여자가 나일까? 헤르만의 눈에는 내가 이렇게 잔인하고 이상하게 보였나? 그림을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혹시나 저 그림 속 여자가 나라면, 헤르만이 왜 나를 그렸을까? 헤르만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싶었죠.


헤르만은 당신을 피했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너무 서운했어요. 사실은 기억을 찾은 후에도 헤르만과 많은 이야기를 할 시간은 없었어요.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는 영원히 없겠죠. 뮌헨에서 헤르만을 만난 순간, 헤르만의 눈빛에서 무서움을 봤어요. 그 순간 헤르만도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나 무언가가 드러나고 깊이 파헤쳐지는 것을 무서워한다고 느꼈죠. 그래서 절 피하는 헤르만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어요.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지금은 행복한가요?
몇 년 동안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그날 이후 형제들은 만나지 못했어요. 여전히 한스 오빠와 헤르만의 소식은 신문을 통해서 가끔 들어요. 기억을 안고 가는 지금, 진짜로 행복한 순간이 가끔 제게 찾아와요. 저를 위해 메리 아줌마도, 한스 오빠도, 헤르만도, 요나스도 희생했잖아요. 절 사랑하는 사람들이, 절 구하기 위해 그런 희생을 했다는 기억이 있으니까 이젠 온전히 행복해서 웃을 수 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9호 2016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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