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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컬트 영화의 효시 <록키 호러 픽쳐 쇼> [No.164]

글 |안세영 2017-05-30 6,030


1973년 영국 런던에 자리한 60석 규모의 소극장 로열 코트 극장. 이곳에 기상천외한 뮤지컬 한 편이 올라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제 막 약혼한 순진한 커플 브래드와 자넷. 여행길에 폭풍우를 만나 근처의 성으로 피신한 이들은 이상야릇한 차림새의 외계인 과학자 프랭크 N 퍼터와 그의 피조물 록키를 만난다.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한 1930~70년대 SF 호러 영화, 글램 록, 금기시된 성적 판타지를 혼합한 이 해괴한 뮤지컬의 제목은 <록키호러쇼>. 코믹한 B급 감성과 기존 성 담론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마니아층을 양산한 <록키호러쇼>는 규모를 키워 공연을 이어 나갔고, 마침내 ‘20세기 폭스’가 영화화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바로 컬트 영화의 효시로 불리는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다.


‘컬트(Cult)’란 특정 인물이나 대상에 대한 종교적인 숭배 의식을 가리키는 말로, 컬트 영화라 하면 소수의 열광적인 팬을 지닌 영화를 뜻한다. 비주류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를 지금의 신화적 위치에 올려놓은 것 역시 다름 아닌 팬들이었다. 원작자 리처드 오브라이언과 오리지널 캐스트 팀 커리, 패트리샤 퀸, 리틀 넬이 그대로 출연한 영화는 1975년 개봉 당시만 해도 흥행에 참패했다. 대중성이나 건전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만큼 실패는 오히려 당연한 결과로 비쳤다. 그러나 영화는 1976년 심야 상영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뉴욕 웨이벌리 극장에서 시작된 주말 심야 상영은 2년 뒤 50여 개 극장, 3년 뒤 230여 개 극장으로 확산되었다. 극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욱 놀라웠다. 관객들이 가만히 앉아 영화를 관람하는 대신 영화 속 장면을 흉내내고 대사를 맞받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평소 조용한 성격의 교사였던 루이즈 파레즈 주니어는 <록키 호러 픽쳐 쇼> 심야 상영을 보러 왔다가 비를 맞으며 종종거리는 영화 속 자넷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우산을 사란 말이야, 이년아!”하고 소리쳤다. 그의 말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자, 점점 더 많은 관객들이 대사와 대사 사이에 하고 싶은 말을 외치기 시작했다. 프랭크가 “기대감(Antici……pation)”을 뜸들이며 말할 때 “말해!”라고 소리치고, 내레이터가 훈계를 늘어놓을 때 야유를 퍼붓는 식으로. 다음주가 되어도 지난주에 소리쳤던 대사를 정확히 기억하는 관객들이 이를 반복했고, 새로운 장면에 새로운 대사를 덧붙이면서 영화 밖의 대본이 만들어졌다. 후에 ‘콜 백(Call Back)’, ‘대위법적인 대화(Counterpoint Dialogue)’ 등으로 명명된 이 독특한 말걸기는 곧 웨이벌리 극장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았다.



관객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영화 속 인물과 똑같은 복장으로 영화관을 찾기 시작했다. 1976년 할로윈에는 극장 측에서 이러한 관객을 위한 가장 무도회를 열어주었고, 극장에 모인 관객들은 자신들의 우상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화장과 의상, 문신 노하우를 공유했다. 아예 스크린 앞으로 뛰쳐나가 영화 속 인물을 따라하는 관객도 생겼다. 이미 여러 번 영화를 반복 관람한 이들에게 음악에 맞춰 립싱크를 하거나 춤을 추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객석 퍼포먼스도 이어졌다. 결혼식 장면에서 쌀을 뿌리는 하객들처럼 객석에서도 쌀을 뿌리고, 비가 오는 장면에 맞춰 물총과 우산을 꺼내는 등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추가되면서 관객들은 영화 관람 행위를 그들만의 즐거운 의식으로 바꿔놓았다.


이제 웨이벌리 극장은 <록키 호러 픽쳐 쇼> 고정 관객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면 극장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관객들은 입장을 기다리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영화에 담긴 의미를 토론했다. 1977년에는 조직적인 팬클럽이 탄생했다. 팬클럽 회장으로는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신학과 연극을 가르치던 교사이자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콜 백’의 형식을 다지는 데 기여한 살 피로가 선임되었다. 살 피로는 프랭크를 가장 훌륭하게 모방한 것으로 알려진 도리 하틀리와 손잡고 체계적인 쇼를 선보였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머리부터 발끝까지 등장인물과 똑같이 꾸민 ‘섀도 캐스트(Shadow Casts)’가 스크린 앞으로 나와 조명 속에서 립싱크로 영화를 재현하는 ‘플로어 쇼(Floor Show)’를 펼친 것이다. 또 영화 상영 전에는 ‘버진(Virgine)’이라 불리는 초심자를 앞으로 불러내 간단한 통과의례를 치르게 하며 흥을 돋웠다. 「트랜실배니안」이라는 그들만의 소식지도 발간되었다. 이 소식지에는 영화 속 옥의 티에 대한 기사가 연재되었고, 조악한 콘티와 편집 때문에 발생한 수많은 옥의 티 찾기는 팬들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켰다.


<록키 호러 픽쳐 쇼>가 빚어낸 놀라운 컬트 현상은 극장을 벗어나 사회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영화와 추종자들을 학문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호기심 어린 발걸음으로 극장 바깥의 줄은 더욱 길어졌다. 그러나 관심의 크기만큼 반감도 컸다. 인근 상가 주인들은 입구를 봉쇄하는 인파에 불만을 표했고, 극장 주위에 몰려든 불량배들은 남다른 옷차림의 관객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욕설을 퍼부었다. 반복된 소요로 영화는 결국 1978년 1월 극장에서 내려갔지만 팬클럽의 노력으로 같은 해 6월 8번가 극장에서 재개봉되었다. 자경단까지 꾸리며 자신들의 영화를 지키려 한 팬들의 열정 덕분에 <록키 호러 픽쳐 쇼>는 마침내 미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 심야 극장의 인기 상영작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상영되며, 영화사상 가장 오랜 기간 상영 중인 영화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버진을 위한 가이드 BASIC GUIDE FOR VIRGINS


O <록키 호러 픽쳐 쇼> 상영회에 처음 온 ‘버진(Virgin)’은 영화 상영 전,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스크린 앞으로 나와 교성을 지르시오.


O 브래드와 자넷이 영화 속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그들의 애칭인 ‘애스홀(Asshole)’과 ‘슬럿(Slut)’을 외치시오.


O ‘The Time Warp’ 노래가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시오. 춤 동작은 영화 속 내레이터가 친절히 가르쳐줄 테니 걱정하지 말 것.


O 다음의 준비물을 챙겨 행동 지침에 따르시오.


※준비물※


① 쌀
결혼식 장면에서 하객들이 신랑 신부에게 쌀을 던질 때, 함께 쌀을 던진다.
 *미국에는 결혼식 후 신랑 신부에게 쌀을 뿌리는 풍습이 있다.


② 물총 & 신문
브래드와 자넷이 폭풍우를 만날 때, 물총을 쏴서 영화 속 비를 재현한다. 자넷이 비를 피하기 위해 머리 위에 신문을 뒤집어쓰는 것처럼 관객도 신문을 뒤집어쓴다.


③ 라이터
브래드와 자넷이 프랑켄슈타인 성으로 향하며 ‘There's a light’ 노래를 부를 때, “저기 불빛이 있어(There's a light)”라는 가사에 맞춰 불빛을 들어올린다.


④ 고무장갑
프랭크는 록키를 창조하며 연설을 하는 동안 손에 낀 고무장갑을 세 번 튕긴다. 관객도 같은 타이밍에 맞춰 짝 소리가 나게 고무장갑을 튕긴다.


⑤ 파티 나팔
프랭크의 연설에 앞서 트랜실베니안이 삑삑이 나팔을 불고 환호할 때, 똑같이 한다.


⑥ 두루마리 휴지
브래드가 프랑켄슈타인 성에 찾아온 스콧 박사를 보고 “위대한 스콧(Great Scott)!”이라고 외칠 때, 두루마리 휴지를 스크린 앞으로 던진다.
*‘스콧(Scott)’은 최초로 화장실용 두루마리 휴지를 판매한 미국의 휴지 제조사 이름.


⑦ 토스트
프랭크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건배(Toast)”를 제의할 때, 토스트를 공중으로 던진다.
*영어 ‘Toast’는 ‘건배’와 ‘토스트 빵’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⑧ 파티 모자
프랭크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파티 모자를 쓸 때, 함께 쓴다.


⑨ 종
‘Planet Schmanet Janet’ 노래에서 프랭크가 “종소리 들리지 않았어?(Didn't you hear a bell ring?)”라고 물을 때, 종을 울린다.


⑩ 카드
‘I'm Going Home’ 노래에서 프랭크가 “슬픔의 카드, 고통의 카드(Cards for Sorrow, cards for pain)”라고 노래할 때, 카드를 뿌린다.



※예습 자료※



<페임>
1980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페임>에는 예술고등학교 학생인 도리스와 랄프가 <록키 호러 픽쳐 쇼> 심야 상영을 보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짧은 장면이지만 극장에 모인 관객들의 옷차림과 콜 백, 타임워프 댄스, 플로어 쇼가 잘 묘사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도리스는 <록키 호러 픽쳐 쇼>를 본 후, 평범함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록키 호러 픽쳐 쇼: 렛츠 두 더 타임 워프 어게인>
2016년 폭스TV는 <록키 호러 픽쳐 쇼>를 두 시간짜리 텔레비전 영화로 리메이크해 방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와 극장 안 관객의 모습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특정 장면에서 관객들이 취하는 대표적인 행동과 콜 백을 보여준다. 트랜스젠더 배우 라번 콕스가 프랭크를 연기하고, 원작에서 프랭크를 연기한 팀 커리가 내레이터로 출연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4호 2017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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