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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시라노> [No.167]

글 |전영지 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 |프로스랩 2017-08-07 9,086

사랑의 아이러니

<시라노>





사랑에 빠졌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내가 감히 이토록 근사한 사람을 사랑해도 되는 걸까?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1897)의 주인공 시라노는 주저한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 록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버겁다. 커다란 코 때문이다. 아니, 시라노는 자신의 커다란 코 때문에 록산을 사랑할 수 없다고 믿는다. 허나 과연 그러할까? 코만 작았다면 머뭇대지 않고 록산에게 사랑을 고백했을까? 소설가 이승우는 “당신이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 사랑해도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는, 사랑의 초기에 반드시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이승우, 『사랑의 생애』, 예담, 2017, 12쪽) 사랑은 사랑의 자격을 묻고 의심하는 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여 사랑을 시작하는 자는 불안하기 마련이다. 사랑은 축복처럼 찾아오는 듯하나 평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이처럼 사랑은 아이러니하다. 로스탕의 희곡은 그 자체로도 아이러니한 사랑이라는 모호하면서도 격렬한 현상에 다양한 아이러니를 더해 시라노, 록산, 크리스티앙이라는 세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간 연극, 오페라, 영화 등으로 수없이 변주되어 온 이 작품이 이번에는 뮤지컬로 찾아왔다. 그런데 뮤지컬 <시라노>는 로스탕의 희곡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지만,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조리한 사랑


줄거리는 동일하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검술 능력에도 불구하고 추한 외모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그녀가 사랑하는 잘생긴 부하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사내 이야기다. 즉 시라노는 록산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실어 록산과 크리스티앙의 사랑을 이루어주는 부조리한 사랑을 하는 셈이다. 왜 이렇게 처절한 사랑을 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시라노는 다른 모든 여성들은 자신의 흉한 외모를 불편해했지만 록산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었다고 말하는데, 사실 록산은 시라노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그의 편지, 아니 그의 목소리도 알아채지 못하고 크리스티앙으로 착각할 지경이니 말이다. 크리스티앙에 대한 록산의 마음도 부조리하긴 매한가지다. 아름다운 말과 재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눈 한 번 마주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니 말이다. 그들은 서로를 참으로 몰라서 그렇게 쉽게 사랑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알게 되면 이치에 맞는 일이 되어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시라노는 외모는 출중해도 글재주와 언변이 좋지 못해 눈길은 사로잡지만 마음은 사로잡을 수 없다는 크리스티앙에게 자신의 말과 글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하며 둘이 함께라면 ‘완벽한 연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게 독점적인 관계를 욕망하는 일일 터인데, 한 여인을 함께 사랑해 보자니 참으로 기이한 공모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 ‘완벽한 연인’의 사랑 만들기는 ‘성공’하여 록산과 크리스티앙은 결혼한다. 물론 시라노가 토로하듯, 이 ‘성공’은 “패배뿐인 승리”이며 “공허한 축배”일 뿐이지만 말이다. 하여 그는 노래한다. “승리도 패배도 [자신의] 몫”이며 “늘 그랬듯 홀로 기꺼이 맞서겠다”고.




사라진 ‘장식 깃털’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전장(戰場)에 나서는 사람. 시라노는 그런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돈키호테에 비유되기도 한다. 풍차의 날개가 진창에 빠트릴 것이라는 경고에도, 풍차는 자신을 별에게 데려다 줄 것이라고 허세를 떠는 허영심 가득한 인물 말이다. 원작에서 시라노는 죽어가며 죽음의 자리에 유일하게 가져갈 것은 ‘나의 장식 깃털(Mon Panache)’이라고 마지막 독백을 읊조리는데, 이 대사는 종종 ‘허영심’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장식 깃털’에 ‘대담한 태도와 무모한 용기’라는 의미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뮤지컬은 이 대사를 “모든 것을 견디며 지켜온 나의 당당한 영혼”이라고 번역한다. 오역이냐 아니냐를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시라노의 허영, 그리고 사랑에 빠진 자의 허영을 놓친 것은 애석하다. 특히 록산의 허영이 사라진 게 아쉽다.


뮤지컬에서 록산은 일견 ‘민폐 캐릭터’처럼 보인다. 시라노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 물론 그녀의 무심함은 그녀가 시라노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앙과 시라노가 전쟁터로 끌려갈 때 크리스티앙이 위험에 빠지게 되면 방패가 되어달라고 시라노에게 부탁하는 장면은 너무 가혹하다 싶다. 드기슈가 록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넘버 ‘당신이란 여자’의 “당신은 여자, 사악한 여자”라는 가사가 록산의 캐릭터를 정확하게 진술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게다가 록산은 시라노가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매일매일 적군을 뚫고 전한 편지에 감동받아 전쟁터까지 찾아오는데, 이 장면에서 그녀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그저 해맑다. 애인을 만나러 간다고 말하니 무사통과되었다는데, 마치 정말 그러했다는 듯 옷도 깨끗하고 머리도 단정하다. 오는 길 너무도 힘겨웠으나, 자신을 걱정할, 사랑하는 이(들)를 배려하며 애써 쾌활한 척 연기하는 일일 법한데 말이다. 원작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실재하는 것 [또는 발화되는 것] 사이의 명백한 차이”가 빚어내는 아이러니를 다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놓친 결과인 듯하다. (이상해, 「역자 해설」,『시라노』, 열린책들, 2008, 243쪽)


오래전에 쓰인 희곡이라 전근대적인 여성상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희곡의 록산은 사실 시라노를 닮은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자존심 세고, 영리하며, 언변이 뛰어나고, 위험에 굴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는 인물들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겠다고 음식물을 잔뜩 싸들고 전쟁터를 가로질러 “당신을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니. 이 얼마나 부조리하며 무모하고 대담한가. 그녀 또한 돈키호테적인 ‘허영’ 또는 ‘장식 깃털’을 지닌 인물인 것이다. 시라노의 ‘장식 깃털’을 지워낸 뮤지컬은 록산의 ‘장식 깃털’ 또한 이렇게 놓친다.




내 사랑의 아이러니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사랑에 빠진 사람은 무모하고 대담하다고 말한다. 사랑은 허영을 불러온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감히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자신에게 사랑의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로스탕의 희곡은 이처럼 사랑에 빠진 자가 겪어내는 아이러니한 사랑의 한생을 통찰하는데, 뮤지컬은 통찰은 놓치고 줄거리만 따라가는 듯하다.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노>가 뮤지컬로 만들어진 것이 반갑다. 까닭은 간단하다. ‘뮤지컬이 반듯이 갖추어야 할 유일한 조건’이라는 음악 때문이다. (뤼디거 베링, 『뮤지컬』, 예경, 2005, 7쪽) 이 작품의 모든 넘버들이 적극적으로 드라마를 생성시킨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달에 떨어진 나’의 ‘삐리빠라 빠라뽀’는 귀엽고, ‘가스콘 용병대’의 무대는 근사하며, ‘파리의 추억’은 웅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라노의 넘버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록산에게 바치는 세레나데 ‘록산’에 설레고, ‘나 홀로’를 부르는 그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타협 없이 편견과 비겁함에 맞서 싸우며, 아프고 아파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행복할 수 있게 도우려 애쓰다 한생을 마감하는 이 순정(純情)한 영웅이 들려주는 노래들이 참으로 찬연하여 마음을 내어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랑’은 본디 이처럼 아이러니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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