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으로 전하는 위로
중앙대학교 연극과 연출 전공. 2013년 국회대상 올해의 뮤지컬상,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을 받고 마니아를 양산하며 창작뮤지컬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한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대표작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한국 전쟁 당시 무인도에 표류한 남북한 병사들이 우정을 쌓고 내면의 상처를 보듬는 이야기다. 박소영 연출은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와 함께 작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올해 다섯 번째 공연에 이르기까지 줄곧 연출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등장인물과 배우가 지닌 매력을 섬세하게 끄집어내고, 작품의 동화적이면서 따뜻한 감성을 살리는 데 일조했다. 이밖에도 2014년 <사춘기>, 2016년 <안녕! 유에프오> 등의 중소극장 창작뮤지컬을 연출했으며, 2016년 라이선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보디가드>의 협력 연출을 맡았다.
어떻게 연출가를 꿈꾸게 되었나?
중고등학생 때부터 영화, 드라마, 소설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에 가슴이 설렜다. 그 밖의 다른 것에는 도통 흥미를 못 느끼는 학생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다루는 일을 꿈꿨고, 막연히 뭐라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중앙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연극의 매력에 푹 빠졌다. 무대에서 공연되는 그 순간 단 한 번만 존재하는 연극의 특성, 살아 숨쉬는 배우의 호흡에 매료되었다. 수많은 사람의 인내와 수고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아름다웠다. 긴 노력 끝에 얻는 짧은 순간의 소중함. 그것에 빠져 연출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학생 때부터 열심히 공연을 만들었다.
자신에게 특별히 영향을 준 작품이나 연출이 있나?
누구 한 명을 롤모델로 꼽기는 힘들지만 작품을 꼭 챙겨보는 연출은 있다. 그중 하나가 이보 반 호프다. 아름다운 미장센,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놓지 않는 끈질김, 절제할 때는 절제하고 터트릴 때는 터트릴 줄 아는 결단력이 멋진 연출이다. 최근에는 이보 반 호프의 <파운틴 헤드>, 고선웅 연출님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배삼식 작가님과 류주연 연출님의 <1945>를 감탄하며 봤다. 뮤지컬 중에는 <맨 오브 라만차>를 좋아한다. 꿈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인물의 이야기는 언제나 날 두근거리게 한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안녕! 유에프오>, <키다리 아저씨>, 최근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린 <#CHA_ME>까지 따뜻하고 동화적인 힐링 뮤지컬을 주로 연출해 왔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끌리는 편인가?
일단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이름이 알려졌다 보니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이 많이 들어온다. (웃음) 물론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함께한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와도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소외된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이야기가 좋다, 우리 그런 이야기를 하자.
<여신님을 보고 계셔>를 함께한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와는 어떻게 만났나?
2006년 중앙대 연극과에서 뮤지컬 <라비다>를 공연했을 때 지금의 남편인 김경육 작곡가가 작곡을, 성종완 연출이 극작을, 내가 연출을 맡았다. 당시 경원대 클래식과를 나온 김경육 작곡가의 친한 후배가 이선영 작곡가여서 안면을 텄다. 이후 ‘불과 얼음’ 아카데미에서 이선영 작곡가, 한정석 작가와 함께 뮤지컬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서로 가치관과 취향이 비슷해서 금세 가까워졌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시놉시스 단계부터 참여한 작품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연출하면서 강점을 두고자 한 부분은 무엇인가?
밝은 극이지만 가볍게 그리고 싶진 않았다. 등장인물이 여신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접근했다. 밝은 행동의 근간에는 소중한 사람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네 번의 공연을 올리는 동안 시즌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기본적으로 열린 결말인데, 재연 때는 엔딩을 비극적인 뉘앙스로 연출했다. 해변가에 파괴된 무언가의 파편이 박혀 있는 무대로 전쟁이란 배경을 부각시켰고 연기 톤도 무겁게 갔다. 무대 디자인은 극장 환경에 맞춰 계속 바뀌었다. 삼연 때는 무대디자이너가 바뀌면서 무인도의 자연물을 살려보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파편 대신 나무를 세웠다.
배우들이 퇴장 없이 세트 뒤에서 대기하도록 한 의도는 무엇인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것, 지켜봐 주는 것, 함께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다. 그래서 누군가의 사연이 나올 때마다 ‘여신님만 보고 계신’ 게 아니라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 그 이야기의 진행을 지켜볼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 하지만 배우들이 힘들어해서 몇 번은 퇴장시킨다. (웃음)
모니터링을 자주하는 연출로 유명하던데?
극장에 자주 가는 편이다. 꼭 객석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소대나 분장실에 있을 때가 많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초연 때 배우들이 자주 공연을 보고 피드백을 달라고 해서 일부러 챙겨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배우들이 그만 오라고 말린다. (웃음)
배우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연출이나 배우나 역할이 다를 뿐 작업자로서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배우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같은 역할, 같은 대본이라도 배우마다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 공감하는 게 다르다. 각 배우가 생각하는 것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그에 가장 어울리는 연기 노선을 찾는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경우 정해져 있지 않은 결말에 대해서도 배우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변화의 여지가 적은 레플리카 라이선스 공연 역시 연기 노선에 대해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뮤지컬 관객 사이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목마름이 커지고 있다. <키다리 아저씨>의 인기에는 제루샤가 주체적인 여주인공이라는 점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맞다. 나 역시 제루샤가 시대를 앞서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시대가 바뀌면서 예술 작품에서도 주체적인 여성상이 요구되고 있다. 당연하고 반드시 필요한 흐름이다. 그래야 훨씬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배우도 더 다양한 인물을 창조해 낼 수 있다. 그동안 뮤지컬에는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많았지 않나. 여성 배우들도 늘 비슷한 역할만 맡는 데 불만이 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이후 준비 중인 작품에는 무엇이 있나?
11월쯤 올리고픈 공연이 있는데 제작사 없이 진행하는 작품이라 어찌될지 모르겠다. 한 인물의 잊혀 가는 생각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험난한 길이 예상되지만 꼭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연말에는 창작산실 작품 중 하나의 공동 연출을 맡는다. 이 밖에도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와 길게 보고 개발 중인 뮤지컬이 하나, 신인 창작진과 시놉시스 단계부터 개발 중인 뮤지컬이 하나 있다.
마지막으로 연출가로서 지닌 신념이 궁금하다.
늘 나의 부족함을 기억하고 배움을 멈추지 말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자로서 어떤 캐릭터도 소홀히 말고 그 마음을 잘 들여다보자. 또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허투루 하지 말자. 함께한 스태프와 배우에게 또 함께하고픈 연출로 기억되고 싶다. 물론 관객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