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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M. Butterfly> 장율·오승훈 [No.168]

글 |박보라 사진 |김영기 2017-09-25 5,959

완벽한 나비

장율·오승훈



1986년 프랑스에서 충격적인 일이 펼쳐졌다.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선 前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루시코 사건. 이 사건을 기반으로 서양이 동양, 특히 동양 여성에 대해 지닌 편견을 비판함과 동시에 인간의 욕망까지 폭넓게 다룬 연극 가 돌아온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2년 초연 이후 뜨거운 사랑을 받아 두터운 마니아층을 만든 작품이다. 특히 이번 시즌엔 새로운 스태프들이 모인 것으로 알려져 높은 기대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환상 속에 갇힌 나비를 그려낼 장율과 오승훈을 만나봤다.





사랑을 그린 예술가

                     

연극 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오승훈  사실 지난 시즌의 공연을 못 봤다. 솔직하게 말하면 라는 작품을 미리 알지 못하고 대본을 만났다. 읽을수록 송 릴링이 매혹적이게 다가왔다. 송 릴링의 행동과 모습을 상상하는데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심,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딱 절반씩 자리했다. 그런데 무언가를 가지고 싶단 생각이 들면 더 끌리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덤비게 됐다.

장율  나 또한 비슷하다. 의 대본을 처음 받았는데 어려웠다. 작품도, 송 릴링이라는 인물도 어려웠다. 그런데 송 릴링은 남자와 여자를 연기해야만 하기 때문에, 잘 표현해낼 수 있다면 무대 위에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우로서, 욕심이 많이 난 작품이다.


송 릴링의 첫인상은 어땠나?

오승훈  상당히 매혹적인 인물이다. 남자가 봐도 흥분되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율  파격적이라고 느꼈다. 눈을 마주하고 있어도 누군지 모르겠는,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사람.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누구인지 들여다보고 싶지만, 그럴수록 잘 모르겠더라. 영화 <중경삼림>에서는 금발의 임청하가 트렌치 코트를 입고 캐리어를 끌고 간다.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인상 깊었는데, 송 릴링에게도 이와 비슷한 첫인상을 받았다.




송 릴링은 상당히 복잡한 캐릭터다. 혹시 공감한 부분이 있나.

장율  송 릴링은 공감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이다. 볼수록 더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다. 정체성을 찾는 많은 방법이 있다.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고 또는 사랑을 하기도 한다. 난 송 릴링을 훌륭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이 시대에 사는 예술가이자 배우이지 않나. 배우로서는 무대에 있을 때 정체성이 확립된다. 송 릴링은 자신만의 이야기에 르네라는 사람을 끌어들여 예술을 했던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기 정체성을 이렇게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부분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지금도 이런 점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고민 중인데, 무대에서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승훈  ‘남자는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더 잘 알기 때문’이라는 뉘앙스의 대사가 있다. 송 릴링은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잘 알고, 또 그렇게 행동한다. 송 릴링의 행동을 보면 ‘이러니까 르네가 송을 좋아할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어떤 부분인가?

오승훈  ‘밀당’을 상당히 잘한다. 송 릴링은 르네 앞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연기를 하지만 거짓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송 릴링은 처음에 지시를 받아서 르네에게 접근했겠지만, 송 릴링의 예술이자 작품은 르네를 사랑하지 않으면 완성될 수가 없는 거다. 송 릴링은 자신의 연기가 거짓으로 들통나지 않게 노력했다기보다는 진짜 르네를 사랑하려고 했고, 결국 사랑에 빠져 이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주는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장율  텍스트가 지닌 매력이 있다. 그러니까 굉장히 혼재된 감각이 있는 텍스트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잘 녹여낸 것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장면 구성도 그렇고 이야기의 흐름도 그렇고. 또 송 릴링과 르네의 환상이 충돌하는 지점이 굉장히 흥미롭다.

오승훈  맞다. 텍스트로 봤을 때도 작품엔 여러 가지가 많이 담겼다. 연습하면서 이런 부분을 감정적으로 부딪쳤는데 ‘와, 이거 진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연습을 하면서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각각의 장면이 굳혀지고 있다. 아마 무대에서는 훨씬 더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부분 때문에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거다.


작품이 내세우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장율  작품이 지닌 주제는 나에게도 중요한 부분이다. 를 보면서 생각하는 건, 지금 시대의 관객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다. 작품 속에서는 두 인물뿐 아니라 모든 인물이 그 시대의 환상에 빠져 산다. 물론 각자 다른 환상일 거다. 환상을 좇다 보니 본연의 본성을 보지 못한다는 거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인 본질을 놓친다는 것. 바로 이걸 담고 있지 않을까. 서로 다른 환상을 품은 두 사람이 만나, 본질적인 부분은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격변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주목한다.


송 릴링에게 르네는 어떤 사람일까.

오승훈  우선은 안타깝고 바보 같은 사람. 어떻게 보면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르네는 순수함과 천진함을 굉장히 많이 지녔다. 어쩌면 송 릴링보다도 더! 나는 실제로 송 릴링이 연기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르네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20년을 그렇게 살려면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르네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을 것 같다. 안아주고 싶고, 예쁘고, 아기 같은 사람 말이다.

장율  어렵다. 나 또한 르네가 아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 릴링의 입장에서 본다면 편안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송 릴링이 준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일 거다. 사실 연기하면서 연기로 르네에게 사랑을 건넨 송 릴링이 오히려 르네에게 더 큰 사랑을 되받았을 때, 어땠겠냐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니까 본인이 모든 상황을 쥐고, 연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이 순수한 사랑을 돌려줄 때의 느낌은 어떨까. 그리고 르네가 자고 있을 때 송 릴링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 이런 생각의 끝은 안타까우면서도 사랑스럽고 복잡한 생각이었을 거다. 송 릴링은 르네를 결코 쉬운 상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대로 나한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닐까.




매혹의 이야기

                     

반전이 있다면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오승훈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송 릴링이 남자로 돌아가는 부분. 송 릴링이 여자일 때의 모습을 더 섬세하게 내 안에 담으려고 한다. 그럴수록 여자 송 릴링과 남자 송 릴링의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남자 송 릴링의 모습이 훨씬 더 자신 있다. 아무래도 내 모습을 많이 담을 수 있으니까. 물론 송 릴링의 마음이나 행동의 이유, 선택의 이유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공부해야겠지만, 결국은 송 릴링은 남성이지 않나. 그리고 나는 남성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남성으로서 조금 더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여성 송 릴링을 더 잘 겹겹이 쌓아놔야만 한다. 그래야 변신 이후에 차이가 확 벌어질 수 있으니까.

장율  관객으로 하여금 송 릴링이 여자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내면, 반전 후에 긴장도가 높아질 거다. 내 안에 있는 이면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했을 때, ‘송 릴링이 완벽한 연극 속에 있었다’는 이야기에 타당성이 생긴다. 송 릴링이 르네를 매혹시킬 수만 있다면 관객들의 마음도 끌어당길 수 있다고 본다. 르네가 송 릴링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송 릴링도 르네에게 그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주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지점이 아닐까.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이 어떠한 부분을 봐주었으면 좋겠나.

오승훈  인물마다 시대의 모습이나 고통, 사상, 문제, 이념이 굉장히 잘 표현됐다. 김동연 연출이 “이들이 개인적으로 갈등한다기보다 사상과 사상이 부딪쳐서 이들이 이런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걸 표현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 말에 굉장히 공감했다. 이들이 품은 사상이 너무 다르고 이것 때문에 충돌하는 거다. 이런 부분이 작품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많이 드러난다. 그래서 내가 연기만 잘한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런 부분에서 어떤 충돌이 일어나고 감정들이 보일 거다.

장율  3막에서 송 릴링은 남성으로 비친다. 근데 ‘이 송 릴링이 진짜 송 릴링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난 송 릴링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지성적인 뛰어난 인물이라고 본다. 시대를 꿰뚫어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시대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의 환상을 만들려고 한 엄청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송 릴링이 품은 환상과 르네가 지닌 환상이 충돌할 때 작품이 굉장한 힘을 갖는다. 마지막 3장에서 특히 이런 부분이 힘있게 부딪친다. 송 릴링과 르네가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장면이 주는 힘을 관객이 주도면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하는 부분이 있는가?

오승훈  작품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건 너무 많다. 오페라도 한 곡 불러야 하고, 중간에 인상 깊은 한마디를 던져야 하고, 여자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숙제는 다이어트다. 살을 빼려고 지독하게 노력 중이다.

장율  맞다.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사실 불안한 감도 있다. 소화해 내야 할 분량이 많고, 춤도 춰야 한다. 연기자로서 고민하는 부분은 1960년대 중국의 시대 상황과 그 시대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상상해 보는 것이다. 작품은 1980년대까지 이어진다. 송 릴링은 르네와 그 오랜 시간 동안 어땠는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또 그 시기에는 많은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 문화혁명도 있었고 프랑스 5월 학생운동도 있다. 그 시대에 벌어진 일을 경험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다. 또 두 번째는 승훈의 말처럼 다이어트다. 여자의 몸이 된다는 게, 지금까지 남자로서 평생을 살았으니 쉽지 않더라. 조금씩 너무 급하지 않게 시도하고 있다.


최근 상당히 떠오르는 배우들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오승훈  를 잘하고 나서야 그걸 알 수 있을 것 같다. (커튼콜 때나 공연을 하면서) 눈앞에 바로 팬들이 보이니까 팬들이 생긴 건 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내가 잘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끝내고 나서야 ‘내가 잘 걸어가고 있구나’라든가 ‘내가 아직 한참 모자라니까 정신 차려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더 잘하고 싶다.

장율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정말 더 열심히 하고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많은 관심에 대해 마음 깊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매일매일 충실히 연기하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8호 2017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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