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한재은 작가·박현숙 작곡가
최근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재은 기본적으로 경성 시대는 현대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상당히 매력적으로 비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 특징 때문에 그 기간이 ‘경성’이라는 지명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독특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또 경성 시대는 한국의 역사적 관계 내에서 기간이 또 달라진다. 3·1 운동 이전과 이후, 문화 통치 기간, 태평양 전쟁 직전, 이후 기간 등으로 나뉠 수도 있어, 관점과 시점에 따라서 다양한 서사가 나올 수 있는 배경인 것 같다. 다만 역사적인 아픔이 큰 시대라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면도 있었고, 시대에 대한 연구 자료도 미흡했다. 시간이 흐르고 경제적, 정신적으로도 성장이 된 지금은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민족적인 자존심이 회복됐다고 본다. 무엇보다 경성 시대와 경성에 대한 연구 자료가 많아진 것도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전봉관 교수의 『경성기담』, 『경성자살클럽』, 『럭키 경성』 등 흥미로운 당시 사건들을 서술한 자료들이 2007년과 2008년에 출간됐고, 1920년부터 1999년대까지의 고신문이 복원되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기록물이 작품 창작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현숙 경성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이 약 40년인데, 이 시간 속에 다양한 것들이 집약되어 있다. 그만큼 극적인 이야기가 많다. 또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더 자살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의미 없이 사는 사람이 많지 않나. 하지만 당시에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하루를 더 열심히 산 거다.
경성 시대만이 나타낼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재은 혼란스런 시대가 주는 드라마틱한 매력이 크다. 각종 시대상에 대해 재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도 있다. 국가를 잃은 상태에서 생기는 무국적인 방황 상태가 현대인의 디아스포라적인 상태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 경성 시대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한재은 전반적으로 경성 시대를 고증하여 녹여내려 했다. <팬레터>의 경우 문학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인 만큼 당시 말씨를 살리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현대 한국어는 된소리와 센소리가 많은데 과거 서울 사투리는 훨씬 발음이 약하고 부드러운 편이다. 내용 전달은 잘 되면서 이런 말투의 부드러운 정서는 포인트를 주어 살리려고 했다. 가사도 현대적인 어투를 배제하고 다소 낯설 수도 있는 어휘를 활용했다. 당시 소설이나 수필 등에서 묘사된 구어체에서 사용된 어휘를 많이 참고했다.
박현숙 경성 시대에는 전 세계 신문물이 정말 빨리 들어왔다. 미국에서 빅밴드 스윙 재즈가 유행이었는데, 경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재즈와 발라드를 작품 속에 녹여냈다.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홍난파가 재즈 악단을 구성해서 경성 방송국에서 연주했다고 한다. 이처럼 경성 시대에 유행했던 현대적인 음악을 주로 채워 넣었다. 반면 경성 시대하면 쉽게 떠올리는 아코디언 같은 악기를 다 빼버렸다.
경성 시대 속 캐릭터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재은 시대적 아픔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팬레터>에서도 세훈이나 해진의 우울한 내면은 암울한 시대적 배경을 체화하여 표현된다. 뮤지컬은 감정의 진폭이 큰 장르다. 그 시대에 사는 인물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다양하다 보니 뮤지컬에서 더 사랑받는 것 같다. 현대의 일상 속에서도 다양한 감정이 있지만 크게 표현을 못할 뿐이지 아픔은 있지 않나. 그런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해 내면서, 같은 공간 다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공감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실제 자료가 장면화된 것이 있는가.
한재은 <팬레터>의 이야기 자체는 가상이지만, 특정 부분 경성 시대를 녹여내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해진과 이윤이 함께 교정을 보면서 “이건 뭐하라는 표시요”라고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이상이 쓴 수필에서 묘사한 한 장면이다. ‘뮤즈’ 장면 역시 춘원의 문학적 가치를 운운하는 술자리가 있었다는 『김유정론』에 상상을 붙여 구성했다. 또 칠인회의 첫 장면은 이상이 <오감도>의 연재를 중단하고 김문집에게 낙제점을 받은 사건, 이태준이 사표를 품고 다니면서 이상의 시를 실어주었던 배경, 이상이 김유정을 구인회 멤버로 적극적으로 추천한 사실 등을 녹여내며 구성하였다. 또 김해진의 모델인 김유정은 죽기 전에 박봉자라는 여인에게 제대로 답도 오지 않는 편지를 서른여 통 계속 보낸 적이 있다. 이런 행동이 정말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죽기 전에 마음을 둘 곳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었고, 이런 심리가 해진의 장면들에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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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마저 함께한 술친구, 김유정과 이상
김유정과 이상은 구인회 동인으로 함께 활동했던 절친한 사이다. 손바닥만 한 도미 한 마리를 들고 이상이 유정의 집으로 찾아가, 함께 중국집에서 찜을 해먹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져온다. 두 사람은 ‘술친구’로도 유명했는데, 얼마 되지 않은 원고료로 당연하게 술을 마셨고 돈이 없을 땐 외투를 맡기고 술을 마실 정도로 애주가였다. 술을 마실 때마다 김유정은 들뜬 감정을 자제하지 못했다고도 전해졌다. 두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는데, 김유정이 안회남에게 ‘이상이 자살할지 모른다’는 엽서를 보낸 것이다. 이상이 김유정의 병문안을 가 “이 세상 더 살면 뭐 그리 신통하고 뾰족한 게 있겠소. 둘이서 같이 죽어 버립시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유정은 이런 이상의 말에 “싫다”고 했고, 무안해진 이상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소식을 들은 이상은 “동경 가서 일곱 가지 외국어를 배워가지고 오리다”라고 응수했다. 안타깝게도 이상을 걱정하던 김유정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석 달 뒤 이상 역시 폐결핵으로 눈을 감았다.
<팬레터>에서는 김유정과 이상이 그러하듯, 폐결핵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칠인회 활동에 열의를 보인 김해진과 이윤의 절친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