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흔한 치정극을 탈피하려면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이 창작뮤지컬로 제작됐다. 병약한 사촌 카미유를 돌보며 불같은 기질을 누르고 살아온 테레즈가 거친 남자 로랑을 만나 육체적 욕망에 눈뜨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이야기다. <더뮤지컬>이 리뷰어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한 더뮤지컬 리뷰어 4인이 <테레즈 라캥>을 관람하고 대화를 나눴다.
*익명성을 위해 참여자 이름은 뮤지컬 캐릭터명으로 기재했다.
엇갈린 삼각 로맨스?
롤라_ 따로 원작이 있는 창작뮤지컬의 경우, 원작의 서사가 다 설명되지 않아 관객의 상상력으로 빈틈을 채워야 할 때가 많아. 그런데 이 작품은 원작을 읽지 않은 나도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렵지 않을 만큼 인물의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가 잘 맞물려 이어졌어. 기본적으로 서사가 복잡하지 않고 강렬한 감정 표현이 중요한 작품이라 몰입도가 높더라고. 물론 여기에는 배우의 공도 컸어.
스위니_ 특히 테레즈 역을 맡은 정인지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어. 건조한 표면 밑에서 뜨겁게 꿈틀거리는 욕망이 잘 느껴졌거든. 원작 소설은 기질에 지배당하는 동물적인 인간의 이야기를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그렸는데, 뮤지컬은 이와 달리 인물의 감정에 이입해 보게 되어서 색다른 느낌이야.
나타샤_ 작가 겸 연출의 말에 따르면 뮤지컬은 ‘종착지에서 무엇을 만나는지도 모른 채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욕망’에 초점을 맞췄대.
마틸다_ 그런 것치고는 욕망에 대한 묘사가 별로 격정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나타샤_ 테레즈가 먼저 카미유에게 적극적으로 키스하는 장면으로 억압된 성적 욕망을 표현하긴 하잖아. 하지만 다른 인물들의 욕망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면 좋았을 것 같아.
스위니_ 나는 로랑의 욕망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게 아쉬워. 원작에서 로랑은 병약한 카미유와 달리 정력이 넘치는 호색가야. 테레즈를 만나는 것도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일 뿐 결코 사랑에 빠진 게 아니거든. 그런데 뮤지컬 속 로랑은 로맨티스트 같아. 사랑하는 테레즈를 지옥에서 꺼내주려고 희생을 감수했는데 불쌍하게 버림받는 느낌마저 들더라고. 그렇게 순정파처럼 굴다가 나중에 카미유의 집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듯 말하는 게 오히려 뜬금없게 느껴져.
마틸다_ 원작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카미유의 비중을 확 키운 점도 의아해. 카미유가 테레즈를 의지하는 장면, 불륜 사실을 눈치 챈 후 로랑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장면을 새롭게 집어넣었잖아. 하지만 이 작품에서 관객이 배신당해 죽는 남편의 심정을 왜 알아야 하는 거지? 로랑과 카미유가 테레즈를 두고 싸우는 삼각관계를 강조하면서 정작 테레즈의 욕망은 희석된 것 같아 아쉬워.
나타샤_ 뮤지컬에서 카미유가 꼭 연민을 자아내게 그려진 것 같지는 않아. 오히려 그가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 나는 인물인가를 보여줌으로써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테레즈의 심정을 이해시켜 주는 면이 있던데.
롤라_ 카미유의 캐릭터를 강화한 건 후반부에 인물들이 느끼는 죄책감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어.
나타샤_ 난 공연을 재미있게 보다가 후반부에 테레즈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진 라캥 부인을 극진히 보살피는 시점부터 이해가 안 됐어.
롤라_ 나도. 자신을 억압해 온 라캥 부인에게 왜 갑자기 친절하게 구는 거야?
스위니_ 원작에서는 그 이유가 분명히 나와. 살인 이후 테레즈는 로랑과 둘만 있으면 죽은 카미유가 떠올라서 강박적으로 라캥 부인 곁에 있으려고 해. 나중에는 아예 마비된 라캥 부인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았다고 멋대로 믿어버리지. 단지 죄책감을 덜고 카미유의 유령에서 벗어나고픈 이기적인 마음에서 라캥 부인을 보살피는 거야. 그런 행동이 라캥 부인에게는 더 큰 분노를 유발하는 거고. 뮤지컬은 이런 면을 잘 살리지 못했어.
마틸다_ 살인 이후 테레즈와 로랑이 죄책감으로 불안해하다 서로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결국 동반 자살하기까지 요동치는 감정의 흐름을 잘 보여줘야 하는데 뮤지컬은 후반부에 이 모든 걸 너무 빠르게 몰아쳐서 끝내 버려. 원작 소설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인간의 심리를 깊이 탐구해 세밀하게 묘사했기 때문이야. 그걸 놓치면 흔한 치정극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어.
몰입도 높은 음악, 모호한 연출
롤라_ 이 작품의 몰입력에는 음악도 한몫했다고 생각해. 뮤지컬은 송모먼트를 잘 잡는 게 중요한데, 이 작품은 음악이 시작되는 흐름이 자연스러워서 어색하지 않았어.
나타샤_ 음악이 홀로 튀지 않고 전반적으로 인물의 감정을 잘 받쳐주는 느낌이야.
마틸다_ 이 작품만의 음침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음악이 큰 역할을 했어. 다만 가사가 잘 안 들린다는 점이 아쉬워.
스위니_ 각각의 곡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라 비슷한 분위기의 곡이 연달아 이어지잖아. 집 안의 정체되고 답답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기승전결이 느껴지지 않아 심심했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음악은 없지만, 테레즈와 로랑이 카미유를 죽일 계획을 세우면서 부른 노래를 나중에 서로를 죽이려 하며 다시 부른 건 효과적인 리프라이즈였다고 생각해.
롤라_ 중간중간 리프라이즈를 적절히 활용했어. 같은 곡을 다른 캐릭터가 돌아가며 부르면서 이들이 욕망으로 하나로 엮이는 걸 음악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봐.
마틸다_ 반면 연출은 시공간의 변화와 스토리의 흐름을 전달하는 데 미숙했어. 예컨대 테레즈가 카미유와 함께 자는 방과 로랑이 그림을 그리는 방을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은 마치 두 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 일처럼 보여서 이상하지 않아?
나타샤_ 이상하긴 하지만 테레즈가 카미유한테서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로랑한테서 발견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라고 납득했어. 하지만 연출이 어색한 장면이 많다는 데는 동의해. 특히 꿈속 장면은 현실 장면과 구별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 후반부에 테레즈가 라캥 부인을 기절시킨 다음 벽을 바라보게 휠체어를 돌려놓는데, 그때 나는 라캥 부인이 죽은 걸로 착각했지 뭐야. 굳이 그렇게 연출한 이유를 모르겠어.
스위니_ 나는 2층 구조 세트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배우들 동선을 보면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더라고.
롤라_ 2층 우측 공간은 집과 분리된 밀회의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마틸다_ 아마도 테레즈가 카미유의 방으로 옮기면서 빈 다락방인 것 같아. 하지만 동떨어진 공간으로 오해할 수 있을 만큼 동선과 연출이 모호했어.
스위니_ 2층으로 통하는 뒷문은 왜 활용을 안 했을까? 원작에서는 로랑이 라캥 부부의 침실과 연결된 뒷문으로 들락거리거든. 아래층에 있는 라캥 부인 몰래 이 뒷문으로 들락거리면서 생기는 긴장감이 있었지. 그런데 뮤지컬에서는 로랑이 정문으로 들어와서 뒷문으로 나가잖아. 둘이 몰래 만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어 보여서 카미유를 굳이 죽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야.
마틸다_ 그래서 카미유가 테레즈에게 지옥 같은 베르농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장면을 넣은 건지도 모르겠네. 카미유를 죽여야 할 이유가 필요하니까.
스위니_ 무대 위의 오브제가 상징하는 바도 모호했어. 특히 꽃이 의미하는 바가 궁금해. 로랑이 자꾸 꽃을 가져오잖아. 무덤 같은 이 집에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라는 걸 표현한 걸까? 포스터에도 꽃을 넣고, 커튼콜 때도 모두 꽃을 드는 걸 보면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나타샤_ 욕망의 상징으로 설정한 게 아닐까?
롤라_ 그럼 세 사람이 드는 꽃은 푸른색인데, 카미유가 드는 꽃만 붉은색인 이유는 뭘까?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빈 액자와 깜빡이는 조명이 의미하는 바는? 주의 깊게 들여다봤는데도 잘 모르겠어.
마틸다_ 무대 위의 기호와 상징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려면 연출이 더 분명해질 필요가 있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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