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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S] <빅 피쉬>​, 사실도 거짓도 아닌 진실에 관한 이야기 [No.195]

글 |김주연 공연 칼럼니스트 2019-12-09 4,325

<빅 피쉬> 
사실도 거짓도 아닌 진실에 관한 이야기 

 

팀 버튼 감독의 2003년 작 <빅 피쉬>는 개봉한 지 벌써 15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 따뜻한 판타지 영화의 대표작으로 기억되고 있는 작품이다. 다니엘 월러스의 소설 『큰 물고기』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원작의 기발한 상상력에 팀 버튼 특유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몽환적인 스타일을 더해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이야기에 대한 메타 스토리텔링 

다니엘 월러스의 원작 소설 『큰 물고기』와 팀 버튼의 영화 <빅 피쉬>는 인물 설정과 에피소드, 전체적인 이야기 틀이 거의 비슷하다. 원작 자체가 다채로운 이야기와 사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보니, 책과 영화를 다 보고 나도 어느 것이 같고 어느 것이 다른지 잘 구별이 안 될 정도다. 그리고 사실,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구별이 큰 의미를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나고야에서 만난 머리 둘 달린 일본의 미녀(소설)와 아름다운 중국의 샴쌍둥이 가수(영화)가 그다지 큰 차이가 아닌 것처럼. 
 

이 이야기는 평생 세일즈맨으로 떠돌며 살던 아버지 에드워드가 깊은 병에 걸려 집에 돌아온 뒤, 그의 곁을 지키는 아들 윌리엄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는 아버지는 거인을 정복하고, 인어와 마녀를 사귀었으며 전쟁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다는 등 입만 열면 영웅적인 모험담을 늘어놓지만, 윌리엄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윌리엄은 마지막으로 진짜 아버지의 인생, 허풍이 아닌 실체로서 아버지의 삶을 알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야기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에드워드의 모습에서 윌리엄은 비로소,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진짜 그의 삶과 진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얼핏 보면 단순하고 평범한 이야기지만, <빅 피쉬>에는 사람들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유리 눈알을 지닌 마녀, 화려한 서커스 천막과 유령 마을, 거인과 머리 둘 달린 쌍둥이, 인어와 거대한 물고기 등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캐릭터와 배경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에드워드 블룸의 믿을 수 없는 모험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독자를 매혹시키는 한편, 낭만적인 청혼 에피소드를 비롯해 임종을 앞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애틋한 정서 등 몇몇 장면들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며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또한 <빅 피쉬>는 작품 전체가 하나의 메타 이야기, 즉 이야기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이야기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바로 이 지점이 이 작품을 매번 새롭게 만들고, 여러 층위의 의미망을 만들어내는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빅 피쉬>의 전체 구조는 ‘아버지로부터 들은’ 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아들이 들려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버지 에드워드는 평생 입담꾼으로 살아왔고, 아들 윌리엄은 기자로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 모두 천생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극 중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리는 둘 다 스토리텔러야, 난 말로, 넌 글로”라며 서로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이 실은 같은 종류의 인물임을 확인시킨다. 
 

하지만 평생을 이야기꾼으로 살아온 아버지와 기자로 일하는 아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이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아버지에게 세상은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손에 땀을 쥐는 모험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아들 윌리엄은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실체와 실상을 알아내고자 한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태도는 극 중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이라는 갈등 구조로 형상화되지만, 이는 또한 진실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시선을 은유하는 메타포이기도 하다. 

 

사실과 허구가 합쳐져 진실이 되다 

윌리엄의 눈에 아버지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아버지가 평생 단 한 번도 사실을 말하지 않고, 늘 거짓말만 늘어놓는다면서 마치 매력적이지만 가짜인 산타 같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에드워드는 “난 평생 내가 아닌 적이 없었다”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사기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윌리엄은 그의 임종을 에드워드 풍의 환상적인 이야기로 꾸며내지만, 그럼에도 그 이야기를 스스로 믿지는 않는다. 
 

윌리엄이 아버지의 이야기에 담긴 진실을 깨닫는 것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식장에서이다. 거인 칼과 중국의 샴쌍둥이 가수, 서커스 단장과 유령 마을의 시인 등 아버지의 이야기 속 인물들이 모두 와서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윌리엄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모두 허풍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아버지의 이야기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샴쌍둥이 가수는 그냥 쌍둥이 자매였고, 거인 칼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키가 더 큰 사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약간의 과장이 더해졌을 뿐, 본질적인 특징은 같기에 윌리엄은 그들이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야기에 담긴 진실임을 깨닫는다. 
 

에드워드는 평생 거짓을 꾸며낸 것이 아니라, 사실을 이야기하되 이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곁들여 들려주었던 것이다. 사실과 허구의 상상력이 합쳐져 만들어낸 그것이 바로 에드워드의 ‘진실’이었고, 이는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본성 혹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진짜에 더 가깝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시선과 관점이야말로 에드워드가 평범한 삶 속에서도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었던 남다른 재능이었던 것이다. 

 

빅 피쉬는 과연 무엇인가 

한편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메타포는 바로 ‘큰 물고기’이다. 영화 <빅 피쉬>는 아들이 태어난 날,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시작해 죽기 직전, 물고기가 되어 물속으로 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끝난다. 그리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 자신이 이야기가 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죽어서도 이야기로 남아 불멸이 되었다.” 
 

에드워드에게 커다란 물고기란 곧 싱싱하고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삶, 지루하고 평범한 삶을 생기 넘치는 무언가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평생 큰 물고기를 쫓아다녔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물고기가 되어 떠난다. 그토록 이야기를 찾아 헤매다 결국 그 자신이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모든 인생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모든 인생에는 딱딱한 현실과 함께 그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꿈과 상상이 섞여 있고, 그 모두가 합쳐져서 삶의 진실을 이룬다. 
 

에드워드가 커다란 물고기를 잡은 날은 바로 아들 윌리엄이 태어난 날이었다. 하나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평생 들려준 모든 이야기 중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큰 물고기에 대한 것이었고, 이는 곧 그에게 아들의 삶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고 소중한 이야기였음을 은유한다. 이렇듯 <빅 피쉬>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의 삶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라는 이야기를, 그 스스로 하나의 매력적인 이야기로서 들려주는 흥미로운 메타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5호 2019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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