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라이선스 뮤지컬 가이드
올해 공개된 라인업 가운데 초연을 올리는 라이선스 뮤지컬은 총 여섯 편. 세계 공연계의 트렌드를 뒤집고 있는 이머시브 시어터 형식의 뮤지컬부터 파격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보이는 뮤지컬, 그리고 여성 주연 뮤지컬까지 꼭 기억해야 할 기대작을 엄선해 소개한다.
기다림 끝에 찾아온 신작
지난해 아쉽게 공연이 연기되었던 <아메리칸 사이코>(5월,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가 다시금 공연 일정을 확정 지었다. 19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낮에는 젊고 유능한 월 스트리트맨, 밤에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활동하는 주인공 패트릭을 내세워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꼬집는 작품이다. 원작은 브렛 이스튼 엘리스의 동명 소설이며, 2000년 개봉한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유명하다. 뮤지컬은 2013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했는데, 전자 악기를 사용해 1980년대 뉴욕에서 유행한 일렉 하우스풍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듯 뮤지컬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순 장본인은 바로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작곡가 던컨 쉬크다.
아시아 초연으로 찾아오는 <제이미>(7월 7일~9월 11일, LG아트센터)는 국내 뮤지컬 마니아 사이에서 일찍부터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원제는 <모두가 얘기하는 제이미(Evertbody's Talking About Jamie)>로 열여섯 고등학생 제이미가 편견을 극복하고 드래그퀸이 되는 이야기다. 영국 북부 출신 소년 제이미 뉴를 모델로 만든 작품인데, 연출가 조나단 버터렐이 2011년 BBC3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접하고 뮤지컬화를 결심했다. 팝 스타일의 신나는 음악과 안무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2017년 영국 셰필드에서 매진 사례를 이루며 그해 웨스트엔드에 입성했다. 인기에 힘입어 올해 영화로도 개봉 예정이다. 국내 공연은 연출가 조나단 버터렐과 작곡가 댄 길레피 셀즈 등 오리지널 창작진이 내한하여 레플리카 라이선스 공연으로 선보인다.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이 요구되는 주인공 제이미 역에 누가 캐스팅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2020년 국내에도 이머시브 시어터 열풍이 일어날까? 올해 처음 소개되는 <더 그레이트 코멧>(9월 15일~11월 29일, 유니버설아트센터)은 독특한 공연 형식으로 뉴욕에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톨스토이의 걸작 『전쟁과 평화』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의 원제는 <나타샤, 피에르 그리고 1812년의 대혜성(Natasha, Pierre & the Great Comet of 1812)>. 약혼자가 전쟁터에 나간 사이 바람둥이와 사랑에 빠진 몰락한 귀족가의 딸 나타샤와 그를 지켜보는 내레이터 피에르의 이야기다. 2012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소규모로 시작해 2016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할 때까지 이 작품이 일관되게 유지한 컨셉은, 19세기 러시아 귀족 살롱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이 뒤섞인 채 공연을 펼친다는 것. 한국 공연 역시 객석 일부를 무대 위에 설치하고 이머시브 시어터 형식을 도입할 예정인데, 이러한 공간을 구현할 최적의 극장으로 고풍스런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유니버설아트센터가 선택되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여성 이야기
남성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 아니 기울어진 무대를 바꿔야 한다는 각성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올해는 신작 <리지>와 <펀 홈>이 관객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리지>(4월 2일~6월 21일, 드림아트센터 1관)는 보기 드문 여성 4인조 록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2009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1892년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유명한 사업가와 그의 아내가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 일명 ‘리지 보든 살인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 무죄로 풀려난 둘째 딸 리지, 리지의 언니 엠마, 가족에게 상처받은 리지를 다정하게 대해 주는 이웃 앨리스, 그리고 시니컬한 하녀 브리짓이 등장해 살인 사건의 숨은 전말을 들려준다. 여성 배우들의 가창력과 대담한 퍼포먼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되리라 기대된다.
<펀 홈>(7~10월,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은 미국 만화가 앨리슨 백델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을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주인공 앨리슨이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깨닫는 동시에 아버지가 감춰온 비밀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부녀의 가족사는 여러 시기를 비선형적으로 오가며 펼쳐진다. 앨리슨의 어린 시절, 대학생 시절, 만화가가 된 현재 시점을 세 배우가 나눠서 연기한다. 그동안 국내 무대에 게이 이야기는 많아도 레즈비언 이야기는 드물었다는 점에서 <펀 홈>과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이 작품의 극작가 리사 크론과 작곡가 지닌 테소리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펀 홈>은 2013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뒤 2015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는데, 당시 이 두 사람은 토니어워즈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익숙한 작품의 낯선 귀환
2017년과 2018년 각각 다른 무대와 연출로 공연되었던 <미드나잇>이 올해 두 버전을 연달아 선보이는 이례적인 시도에 나선다. 공포 정치가 이뤄지던 1937년 소련을 배경으로, 12월 31일 자정 직전 한 부부에게 불길한 손님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국 극작가 티모시 납맨과 <투모로우 모닝>, <쓰루 더 도어>의 작곡가 로렌스 마크 위스가 아제르바이잔 작가 엘친의 희곡 『지옥의 시민』을 뮤지컬로 옮겨 인간 내면의 나약함과 악의 근원을 탐구한다. 먼저 공연되는 <미드나잇: 앤틀러스>(2월, 아트원씨어터 2관)는 2017년 국내 초연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으로, 김지호 연출가가 다시 참여한다. <미드나잇: 액터뮤지션>(4월, YES24스테이지 3관)은 2018년에 이어 영국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같은 액터뮤지션 형식으로 찾아온다.
많은 재연작 가운데 유독 반가운 작품은 바로 9년 만에 돌아오는 <렌트>(6월 16일~8월 23일, 디큐브아트센터). <렌트>는 뉴욕 변두리에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을 주인공으로 한 록 뮤지컬이다. 1996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동성애, 에이즈, 약물 중독 등 동시대적 문제를 다루면서 젊은 관객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작가 겸 작곡가 조나단 라슨은 안타깝게도 개막 직전 사망했는데, 이로 인해 ‘오늘을 살라’는 작품의 메시지가 더 큰 울림을 남겼다. 국내에서도 2000년 초연 이후 여러 차례 공연되며 최정원, 남경주, 이건명, 김선영, 정선아, 조승우 등 많은 스타 배우가 거쳐 갔다. 올해 공연은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엔젤 역으로 데뷔한 이후 작품의 협력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앤디 세뇨르 주니어가 연출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제작사인 신시컴퍼니는 그동안 한국 창작진이 연출한 공연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캐릭터 해석과 의외의 캐스팅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투어 공연으로 한국을 찾았던 <썸씽 로튼>(7~9월, 충무아트센터)은 올해 라이선스 공연으로 돌아온다.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코미디 <썸씽 로튼>은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에 맞서 사상 최초의 뮤지컬을 제작하는 바텀 형제의 고군분투기를 그린다. 극작가 캐리 커크패트릭과 작곡가 웨인 커크패트릭 형제가 구상하고, 영국의 희극 작가 존 오파렐, <북 오브 몰몬>, <알라딘>의 연출가 겸 안무가 케이시 니콜로가 합류해 완성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물론 <레 미제라블>, <렌트>, <애비뉴Q> 등 유명 뮤지컬을 깨알같이 패러디해 공연 애호가라면 누구보다 실컷 웃고 즐길 수 있다. 라이선스 공연은 작년 내한 공연의 제작사였던 엠트리뮤직이 제작을 맡아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같은 무대 미술로 선보인다. 이지나 연출가, 김성수 음악감독이 참여하며 내한 공연 자막을 담당했던 황석희가 대본 번역을 맡는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6호 2020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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