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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빅 피쉬>, 월척은 아닌데 물고기는 크다 [No.196]

글 |정수연 공연 평론가 사진제공 |CJ ENM 2020-01-10 3,615

<빅 피쉬>
월척은 아닌데 물고기는 크다 

 

 

아버지와 아들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특히 가족일 때 말이다. 가족은 참 묘한 관계다. 가장 가깝지만 정작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애매한 밀착의 공동체다. 서로를 안다고 착각하거나 서로를 알려고 밀어붙이다가 관계에 금이 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 금이 깨지지 않도록 서로 조심조심 별 탈 없이 살아가는 게 소위 가족 간의 사랑일 터. 데면데면한 관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일종의 상징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아니면 자기 이야기만 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으며 상대와 대화하지도 않는 단절의 아이콘. 이런 아버지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나이를 지날 때에야 비로소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인생에 눈길을 줄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는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십 년이 필요하다.   

오래전 서사시에서부터 그랬다. ‘오디세이’는 자식과 아비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는 사이임을 잘 보여준다.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던 오디세이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그가 겪은 온갖 모험으로 이야기는 빼곡하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는 인물은 오디세이가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무력함에 빠져버린 텔레마코스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테나의 조언과 멘토의 격려에 힘입어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와 전쟁에 함께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난다. 아버지가 모험을 통해 세상을 배웠던 것처럼 아들도 여행을 통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는 거다. 오디세이의 이야기는 아들의 이야기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펼쳐지니, ‘오디세이’는 영웅 오디세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알아가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뮤지컬 <빅 피쉬>에는 ‘오디세이’의 구조가 심겨져 있다. 아버지의 일생은 모험이었다지만 아들에게 아버지는 소문이요 이야기일 뿐, 이런 아버지의 실체를 찾아가는 아들의 여정이라는 점에서 <빅 피쉬>와 ‘오디세이’는 닮았다. 모험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오디세이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수많은 장소를 거치며 많은 사람을 만났듯, 이 작품의 아버지 역시 한곳에 정착하지 않은 채(그는 세일즈맨이다!) 많은 이야기를 품으며 인생을 살아낸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언제나 판타지요 모험담인 것은 자기의 삶으로 온전히 귀환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모든 경험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그만큼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오디세이’의 아버지가 모험을 마치고 아들을 마주하듯이 <빅 피쉬>의 아버지와 아들도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볼 것이다. ‘오디세이’의 길을 잘 따라가면 말이다. 



 

동화일까 판타지일까 

하지만 텔레마코스의 여정으로 보기에 이 작품의 아들 윌이 아버지 에드워드를 알아가는 과정은 꽤나 듬성듬성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정이랄 것도 없다. 아버지의 옛 여자친구를 만나서 몇 가지 사실(바람을 피우지 않았고 마을도 구했고!)을 알게 되는 한 번의 계기로 아버지와의 모든 갈등이 풀리니 말이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담긴 ‘진짜’가 무엇인지를 점차 깨닫는 아들의 심리적 여정이 극 전체를 아울러야 하건만 이 작품에서는 극 후반에 자연스럽지 않게 몰려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아들이 발견하게 되는 아버지의 진짜 이야기, 그러니까 작품이 담아내야 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두루뭉술해지고 만다. 아무래도 뮤지컬은 아들보다는 아버지에게 포커스를 맞춘 듯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판타지’ 자체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들의 여정보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이 작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황당하고 비현실적이다. 일단 등장인물부터가 마녀, 인어, 거인, 늑대인간 등이다. 이런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동화이거나 판타지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야기가 동화가 아닌 것은 이것을 자기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 끼어든 비현실적인 세계는 판타지의 면모이다. 환상이란 현실의 반대편에서 현실이 가려놓은 것을 되비춰주는 거울인바, 놀라운 모험과 낭만적인 사랑을 담은 아버지의 이야기는 현실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야 하는 거다. 어쩌면 이 세계에 ‘진짜’가 있지 않을까, 점점 빠져들게 하는 판타지의 매혹은 비현실적인 세계 안에 존재하는 의외의 진지함과 허를 찌르는 상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래야 판타지는 현실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다듬어 놓은 아버지의 모험담은 판타지보다는 동화에 가까워 보인다. 판타지 특유의 긴장감이나 신비로움이 생겨나기에는 이야기가 단순하고 그저 해맑기 때문이다. 판타지의 마술적인 세계와 순진하고 예쁜 동화의 세계 사이의 경계에 놓인 이야기에 명확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은 전적으로 시각적 상상력의 몫으로 넘어가 버린다. 이 작품에서 무대 연출은 주연 배우 못지않은 캐릭터 창조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거다. 그 임무에 무대는 성실하게 답변한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 위해 무대의 깊이를 이용한 것이나, 뮤지컬에서는 보기 힘든 대형 퍼펫을 활용한 것도 그렇고, 놀랍게 아름다운 장면(수선화!)을 구현해 낸 솜씨는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적 어휘가 판타지라는 개념에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판타지라고 보기에는 이 작품의 상상력이 너무나도 정직하기 때문이다. 재미있지만 기이하지는 않고(마녀의 눈알!), 기발하지만 경이롭지는 않으며(거인의 퍼펫!), 거듭 확인하는 부연 설명 같다(마지막의 물고기!). 단정하고 예쁜 무대는 동화의 편에 서 있다. 



 

이야기라는 판타지

판타지가 동화가 되면서 사라지는 것은 이야기의 긴장이다. 판타지는 아버지가 살아가는 ‘또 다른 세계’인바, 이 가짜의 세계에 영원히 눌러앉아 끝내 사라질 것 같은 아버지는 현실적인 아들에게 일종의 위기감으로 다가와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의 진실을 알기 위한 아들의 탐색은 아버지를 ‘진짜 세계’로 끌어오기 위한 노력이요 싸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긴장은 이 작품 어디에도 없다. 아버지는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그저 수다쟁이에 가까워 보인다. 극에 긴장이 없으니 인물들이 느슨해지는 건 당연하다. 예를 들어 모험담에 등장하는 아가씨 산드라는 굉장하지만 현실의 어머니 산드라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며느리 조세핀은 아버지 에드워드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지만 극에서의 역할은 미미하다. 에드워드의 옛 여자친구 제니 힐이 쥐고 있는 비밀도 알고 보면 별거 아니다. 아버지를 찾아가는 아들의 여정이 분명하지 않고, 판타지가 되어야 할 아버지의 모험담이 동화가 되어버렸을 때, 아버지와 아들의 마지막 화해는 모험의 결과라기보다는 갑작스런 결론에 그쳐버린다. 현실과 판타지가 서로 다른 세계로서 대립하다가 그것이 결국 하나의 세계로 연결될 때 감동이 쏟아지게 마련이거늘, 이 작품의 결론에는 이런 과정이 없다. 

그런데 말이다. 분명 허술하고 허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마지막에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질문이 숨어 있다. 그것은 ‘진짜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아마 아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꾸며낸 거짓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 이것이 진짜 이야기다. 하지만 아버지의 답은 다르다. 이야기란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 자기가 만난 사람들이니, 사람을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하는 것만큼 환상적인 모험이요 마술 같은 기적은 세상에 없다. 지금껏 그는 아들에게 수많은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던 거다. 막판에 묵직한 여운이 남는 대목이다. 삶의 모든 순간을 이야기로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인생은 평범한 시간이 아니다. 삶의 결핍은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일 것이고, 삶의 두려움은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자의 설렘일 것이다. 지구의 한구석에서 먼지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인해 아름다워지리니,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품은 진짜 판타지가 아닐까. 큰 물고기는 오디세이의 바닷길을 따라 헤엄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6호 2020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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