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들> 김서환
욕심 부리지 않을 용기
김서환은 자기 자신을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2019년 <머더러>를 시작으로 뮤지컬배우의 길을 걸은 지 어느덧 4년. 조급함이 불쑥 찾아올 때도 있지만, 흔들리지 않고 묵묵하게 발걸음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그의 가슴속에 성공을 향한 욕심이 아닌 도전을 위한 용기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12년 전 겨울,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던 김서환은 우연히 방문한 연기학원에서 파란 조명 아래에 모여 대사를 읊는 학생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은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조명 밑에 서고 싶다’ 배우 김서환의 시작이었다. “아직도 그때 그 파란 조명 아래서 연습을 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생각나요.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거든요.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고향인 전주를 떠나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며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연기를 향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 그를 뮤지컬 무대로 이끌었다. “제가 뮤지컬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데뷔작인 <머더러> 오디션을 보던 그 순간에도요. 정말 운이 좋게도 작품에 함께하게 됐지만, 그 당시 저는 뮤지컬에 대해서 백지상태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마음만큼 몸이 따라 주질 않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컬 공부를 시작했어요.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자’는 마음이었죠.”
2019년 <머더러>를 마친 이후 수없이 많은 오디션에 탈락하며 좌절감도 맛봤지만, 김서환은 ‘뮤지컬배우로서 꼭 필요했던 경험’이라고 회상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회들이 도리어 성장의 발판이 되어 줬고, 의도치 않았던 2년간의 공백기는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왜 나한테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건가 싶어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였어요.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첫 작품을 만난 거였으니까요. 혼자 연습을 하고, 난관에 부딪히면서 ‘나는 한참 멀었구나’ 깨닫게 됐어요.” 여러 워크숍 공연을 거치며 배우로서의 내공을 다지기도 했다. “2020년에 참여한 <보이즈 인 더 밴드>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리딩부터 쇼케이스 공연까지 함께했거든요. 초기 개발 과정에 함께하게 된 만큼 부담이 컸어요. 잘하고 싶은 욕심때문에 오히려 캐릭터와 거리가 멀어져서 매일 좌절했어요. 하지만 돌아보니 그조차 부족한 저를 알아 가는 과정이었고, 덕분에 더 이 악물고 노력할 수 있었어요. 제게는 선물 같은 작품이에요.”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을 담금질한 덕분일까. 지난해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행운이 찾아왔다.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그는 오만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소년 한센을 소화하며 새롭게 도약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큰 숙제를 잘 풀어냈다는 점과 그 과정을 좋은 동료들과 함께했다는 사실은 제게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무대 위에서 자유로우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앞으로 어떤 뮤지컬 작업을 하더라도 이 작품에서 배웠던 것들을 기준으로 삼게 될 것 같아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그동안 끊임없이 노력했던 제게 주어진 훈장 같은 작품입니다.”
이번에는 <난쟁이들>로 완전히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허세 가득한 왕자에서, 뻔뻔한 신데렐라로 변신해야 하는 1인 2역을 맡게 된 것이다. <난쟁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를 한껏 비틀어 유쾌하게 그려 내며 웃음을 안기는 작품. 특히나 극 전반에 녹아 있는 풍자를 잘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의 활약이 중요한 만큼, 김서환은 기존의 조용한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난쟁이들>은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했어요. 여러 인물을, 특히 공주를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럴수록 더 인물의 본질에 집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신데렐라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 이 사람이 드러내는 욕망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고 있죠. 인물을 희화화하지 않으면서도 저만의 신데렐라를 보여 드릴 수 있게 노력 중입니다.”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뮤지컬배우로서 본격적인 달리기를 시작한 그의 목표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아닌,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욕심이 생기니까 계속 어긋나더라고요. 괜히 더 불안하고, 초조하고. 내가 계속 좌절하는 이유가 욕심 때문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는 욕심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러니까 점점 행복감이 커지더라고요. 궁극적으로는 꿈과 희망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가 공연을 보고 희망을 얻었던 것처럼요. 그렇게 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9호 202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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