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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베어 더 뮤지컬> 아웃팅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No.215]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쇼플레이 2022-10-13 1,019

<베어 더 뮤지컬>
아웃팅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명예훼손죄의 성립 요건


개인의 성 지향성이나 성 정체성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에 의해 공개되는 것을 의미하는 ‘아웃팅’. 가톨릭계 고등학교에서 비밀리에 교제 중인 두 남학생 피터와 제이슨의 이야기를 그린 <베어 더 뮤지컬>에도 아웃팅 장면이 나온다. 학교의 퀸카 아이비를 짝사랑하는 맷이 아이비가 제이슨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질투심에 제이슨과 피터의 관계를 폭로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 경우 제이슨은 맷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게 할 수 있을까?


아웃팅이 범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핵심이 되는 사안은 외적 명예 침해 여부이다. 우리나라는 허위 사실이 아닌 진짜 사실을 적시해도 그 사실에 의해 타인의 외적 명예가 훼손된다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한다. 실제로 2007년 인터넷 사이트에 ‘아무개는 동성애자’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한 행위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본 판례를 살펴보자.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는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여야 하는 바, 어떤 표현이 명예훼손적인지 여부는 그 표현에 대한 사회 통념에 따른 객관적 평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따라서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사회 통념상 그로 인하여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었다고 판단된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이 판례는 타인의 동성애 사실을 공개한 것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이유로 현재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임을 밝힐 경우 사회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는 점, 피고인이 피해자를 괴롭히기 위하여 글을 게재한 점 등을 들었다. 해당 판례가 나온 지 약 1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 아웃팅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보자. 맷은 제이슨의 성 지향성을 아이비에게 폭로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보수적인 가톨릭계 고등학교라는 점과 사랑하는 피터의 애원에도 제이슨이 커밍아웃을 극구 반대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맷이 제이슨의 허락 없이 그의 성 지향성을 공개한 행위는 명백히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명예를 훼손하는 정보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임을 뜻하는 ‘공연성’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작품 속에서는 여러 학생이 맷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공연성이 인정된다. 맷은 애당초 아이비에게만 얘기할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한 명에게만 말해도 전파 가능성이 인정되면 공연성이 충족된다.


반면 제이슨이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자신과 피터의 관계를 고백한 것은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아 피터에 대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형법상 특정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알게 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면 업무상비밀누설죄로 처벌받는데, 여기에는 신부님처럼 종교직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 만약 신부님이 고해성사로 알게 된 사실을 누설하면 업무상비밀누설죄가 성립하여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받는다.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차이


한편 맷을 짝사랑하는 나디아는 종종 룸메이트 아이비를 ‘걸레’라고 놀린다. 나디아처럼 공연히 타인을 모욕할 경우 명예훼손죄가 아닌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모욕죄는 명예훼손죄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외적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지만, 구체적 사실 적시를 요하는 명예훼손죄와 달리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인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성립한다. 실제 사례에서는 구체적 사실과 의견 표현의 구별이 모호하여 명예훼손과 모욕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욕설은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져 모욕죄로 처벌한다. 모욕으로 인정된 사례에는 ‘일베충, 된장녀, 매국노, **새끼, **년’ 등이 있다. 모욕죄도 명예훼손죄처럼 공연성을 요하는데, 나디아의 경우 다른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나디아에게 ‘걸레’라고 말했기 때문에 공연성이 인정된다.


나디아는 아이비가 기숙사 방을 비웠을 때 아이비의 옷을 허락 없이 가져가서 입어보다가 찢어놓기도 한다. 두 사람은 룸메이트로서 기숙사 방에 있는 물건을 공동점유한다고 볼 수 있다. 공동점유자 상호 간에는 점유의 타인성이 인정되어, 공동점유 재산을 다른 점유자의 동의 없이 단독점유로 옮기면 절도죄가 성립한다. 따라서 나디아가 아이비의 옷을 허락 없이 가져간 것은 절도죄에 해당하고, 아이비의 옷을 찢어놓은 것은 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

 

 

기숙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방실침입죄


제이슨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아이비는 적극적으로 그를 유혹하고, 결국 두 사람은 제이슨과 피터가 함께 사용하는 기숙사 방에서 관계를 맺는다. 제이슨의 룸메이트이자 연인인 피터는 아이비가 제이슨과 자신의 기숙사 방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터는 아이비에게 방실침입죄를 물을 수 있을까?


방실침입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거침입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주거침입죄란 사람이 주거·관리하는 건조물, 선박,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하는 경우 성립하는 범죄다. 아이비처럼 기숙사 전체가 아닌 특정한 방에 들어간 것이 문제시될 경우에는 방실침입죄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과거 판례에서는 간통을 목적으로 상대방 배우자가 없는 집에 들어간 행위를 주거침입죄로 처벌하였다. 그러나 2021년 판례에 따르면 외부인이 주거 내에 현재하는 거주자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 방법에 따라 공동 주거 공간에 들어간 경우,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해도 주거침입죄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비가 제이슨의 허락을 받아 문을 통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방에 들어갔다면 방실침입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5호 2022년 8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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