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공연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시체를 구할 수 있을까?
<더 픽션>은 1932년 뉴욕을 배경으로 소설 속 살인마가 현실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작가 그레이 헌트에게 소설 연재를 제안한 신문사 기자 와이트 히스만이다. 그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버려진 시신을 이용해 소설 내용과 흡사한 가짜 살인 현장을 꾸며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뮤지컬에서처럼 버려진 시신으로 가짜 살인 현장을 꾸며내는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먼저 버려진 시체를 구할 가능성부터 따져보자.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사망자의 연고자가 장례를 치른다. 문제는 무연고자가 사망한 경우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약칭 장사법)’에 따르면 무연고 시신은 관할구역의 시장 등이 처리하고, 둘 이상의 일간 신문과 장사 정보 시스템 등에 시신의 인적 사항을 공고해야 한다. 장례를 치른 다음에는 사망 신고를 해야 한다. 동거 친족은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사망 신고를 해야 하며, 기간 내에 신고하지 않으면 5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동거하는 친족뿐 아니라 동거하지 않는 친족, 친족이 아닌 동거자, 사망 장소를 관리하는 사람, 사망 장소의 동장·통장·이장도 사망 신고를 할 수 있다. 사망자를 인식할 수 없는 경우에는 경찰이 검시조서를 작성해 사망 장소의 시·읍·면 장에게 사망 통보를 해야 한다. 따라서 범죄 은폐를 위해 일부러 시신을 유기하지 않는 이상 시신이 그냥 버려지는 일은 드물다.
뮤지컬에서 와이트는 버려진 시체를 이용해 소설 속 범죄를 재현한다. 하지만 법령에 따라 시신 처리 절차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는 현실에서 버려진 시체를 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와이트처럼 버려진 시체를 이용하려면, 범인이 유기한 범죄 피해자의 시신이나 자연사한 뒤 아직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시신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
살인하지 않고 시체만 이용하면 무죄일까?
그렇다면 살인을 하지 않고 시체를 이용하여 가짜 살인 현장을 꾸며내기만 한 와이트는 무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설령 어렵게 버려진 시체를 구한다 하더라도 그 시체를 훼손하거나 옮기거나 점유하는 행위 자체가 명백한 범죄에 해당한다. 만약 와이트처럼 소설 속 살인을 재현하기 위해 시체를 훼손한다면 시체손괴죄로 처벌받는다. 유기된 범죄 피해자의 시체를 발견하여 그 시체를 훼손하지 않고 다른 장소로 옮기기만 해도 시체의 발견을 어렵게 했다는 이유로 시체은닉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또한 시체를 불법적으로 취득하면 유상·무상을 불문하고 시체영득죄로 처벌받는다.
와이트가 이용한 시체가 변사체라면 어떨까? 변사체란 사망의 원인이 불분명하거나 범죄로 인한 사망이 의심되는 변사자의 시체 또는 변사로 의심되는 시체를 말한다. 변사체를 은닉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변경을 가하면 변사체검시방해죄가 성립하여 7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앞서 설명한 시체손괴·은닉·영득죄를 저지를 경우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법정형이다. 단, 변사자란 사망의 원인이 불분명한 자를 말하기 때문에 범죄로 인하여 사망한 것이 명백한 자의 시체는 변사체에 해당하지 않는다. 범죄로 사망한 피해자의 시체를 은닉하거나 변경을 가하면 시체은닉·손괴죄로 더 무겁게 처벌받는다.
신문사는 기자 와이트를 고소할 수 있을까?
작가 그레이 헌트가 쓴 소설은 범죄자만 노리는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로, 기자 와이트가 이 소설을 신문에 연재하려고 애쓰는 데에는 숨은 의도가 있다. 그는 소설 연재와 동시에 소설 속 살인을 현실에 재현함으로써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고 공권력에 의한 처벌을 피해간 범죄자를 처단하고자 한다. 이처럼 와이트가 진짜 의도를 숨기고 신문에 소설을 연재한 행위는 단순히 신문사 내규 위반을 넘어 형사 범죄에 해당할까?
와이트가 시체를 이용하여 벌인 일은 범죄에 해당하지만, 이로 인해 연재 소설이 인기를 얻고 신문 판매 부수가 올라가면 신문사가 입는 손해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관객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모방 범죄를 야기한 위험한 소설을 연재한 신문사에 책임을 물어 독자들이 불매 운동을 벌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경우 신문사는 금전적인 피해뿐 아니라 평판이 저하되는 피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신문사는 연재 소설을 통해 범죄를 계획한 기자 와이트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형사 고소할 수 있고, 손해액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고려해 볼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7호 2023년 8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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