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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INTERVIEW] <프라이드> 오종혁·박은석 [No.131]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4-08-27 6,087
같은 듯 또 다른 

“은석이는 엄청난 친구 같아요. 정말 훌륭한 배우의 젊은 시절을 미리 만나고 있는 느낌이에요.” 오종혁의 극찬에 박은석이 어쩔 줄 몰라 한다. “종혁이 형은 올리버에 무척 가까운 것 같아요. 형을 보면서 올리버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거든요.” 만나자마자 훈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두 배우.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던 오종혁과 박은석이 <프라이드>의 올리버라는 공통분모를 갖게 되었다. 1세대 아이돌에서 배우로 변신, 뮤지컬 무대에서 차곡차곡 이력을 쌓으며 첫 연극에 도전하는 오종혁. 미국에서 자란 뒤 배우의 꿈을 안고 한국으로 건너 와 <트루웨스트>, <히스토리 보이즈> 등을 통해 주목받는 연극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박은석. 지나온 여정부터가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이렇게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아 보인다. 같은 듯 또 다른 두 배우의 올리버. 그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결국은 연결된 하나 
                    
먼저 지금 출연 중인 작품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종혁 씨는 <블러드 브라더스>, 은석 씨는 <수탉들의 싸움>을 한창 공연하고 있는데, 각기 이 무대에서 집중하고 있는 것은 뭐예요? 
종혁   공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블러드 브라더스>는 쌍둥이인 걸 모르는 두 친구가 서로에게 끌리게 되거든요. 단순히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느낌만 주면 둘 사이의 끈끈함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안의 공기에 많이 집중하죠. 
은석  <수탉들의 싸움>은 상대 배우에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요. 무대가 텅 비어 있어서, 서로에 대한 긴장을 한시라도 놓치면 안 되거든요. 계속 무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상대를 인지하고 리액션을 해줘야 하니깐. 

지금 출연하는 작품이 <프라이드>에도 영향을 줄 것 같은데. 
은석  <수탉들의 싸움>에서 존이 이런 독백을 해요. 게이나 스트레이트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만든 말이라고. <프라이드>는 이런 생각들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조금 더 깊숙한 이야기를 해요. 일단 두 작품 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니까 <프라이드>를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연기도 이제 어느 정도 단련이 돼서 연습에 도움이 되죠. (웃음) 
종혁   오히려 전 두 작품이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겠더라고요. 애매하게 섞이면, <블러드 브라더스>에서 일곱 살 아이를 연기하는 모습이 자칫 여자아이 같아 보일 수 있거든요. 서로 피해가 가지 않게 두 작품을 확실히 구분 지어야 할 것 같아요. 

<프라이드>의 어떤 매력에 끌렸나요?
종혁   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든다는 것. 그 안에서 서로가 유기적인 관계로 이어 나가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에요. 배역들이 같은 고민을 공유하면서, 올리버가 했던 대사를 다시 필립이 하고, 또 실비아가 하면서, 하나의 말이 서로 다른 느낌으로 표현되거든요. 
은석  시간이 교차되면서 그 안의 장면뿐 아니라 대사까지 바느질처럼 꿰매 놓은 느낌. 더불어 함께 공연하는 배우들이 다 매력 덩어리들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 다 신기해요. 와! 

1958년과 2014년이란 시간 차 속에 두 명의 올리버가 있어요. 그는 어떤 사람인가요?
종혁   1958년과 2014년의 올리버는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어요. 결국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계속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죠. 그 목소리에 의지하고, 또 그것 때문에 힘겨워하고.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지만, 서로에게 연결된 그 트라우마 때문에 굉장히 유약한 존재에요.  
은석  제가 대형견을 키우는데, 개를 방 안에 혼자 놔두면 잠자코 있어요. 그런데 밖에 풀어놓으면 정말 미친 듯이 날뛰어요. 이런 상황 같아요. 1958년과 2014년의 올리버. 똑같은 사람이지만, 한쪽은 억압되고, 한쪽은 자유로운 사회 속에 있어서 서로 달라 보이는 거죠. 

실제로 올리버를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서로를 올리버라고 생각하고 한마디씩!
종혁   박은석이란 배우를 만난 올리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감사해라. 1958년부터 2014년까지 56년 동안 넌 정말 행복한 거야. 은석이가 표현하는 올리버는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저도 같은 역할이긴 하지만 무척 기대가 돼요. 음… 내가 맡은 올리버 너도 나쁜 건 아니야. 이 자식!
은석  나도 형의 올리버를 보면서 많은 걸 배웠어. 그래, 올리버는 저럴 수 있지. 형의 성향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깐, 그런 것들이 서로에게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을까? 그리고 내 올리버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행복해졌으면. 

올리버가 사랑하는 필립도 다른 개성의 두 배우가 맡았네요. 이명행과 정상윤. 두 필립의 차이를 꼽으라면? 
종혁   명행이 형의 필립은 굉장히 열정적이고 직선적이에요. 반면 상윤이 형은 나른하고 점선 같은 느낌이랄까? 완벽하게 다른 호흡이죠. 
은석  와! 전 대답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 



나를 가득 채우기 위해
                         
작품의 제목을 빌려 물을게요. 지금 내게 프라이드를 갖게 하는 것은?
종혁   스스로를 낮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 현재 내 위치를 잘 알고 그것을 빨리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저의 가장 큰 프라이드에요. 그래서 이런 말도 많이 들어요. 너무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일부러 겸손하려고 하지 마라. 하지만 사실 자신감은 충분히 있어요. 다만 절 컨트롤하는 방법인 거죠. 제가 한 번 크게 꺾였던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엔 아침에 눈 뜰 때마다 난 바닥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생각들이 큰 충격 요법이 되더라고요. 그게 버릇이 된 것 같아요. 지금은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믿음이 저의 가장 큰 무기가 되는 것 같아요.  
은석  세상엔 두 유형의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 차이가 굉장히 크거든요. 나를 사랑할 줄 아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여정이 저의 프라이드에요. 학창 시절에 엄청 싸우고 사고도 치고, 그땐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그걸 잘 극복해서 또래보다 조금 더 성숙해있고, 파이팅해서 현재의 삶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 제 프라이드에요. 

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공감할 수 있는 대사들이 많아요. 특히 마음에 남은 대사가 있어요?
종혁   하나를 꼽기보단, 대본을 보면 올리버의 결론은 하나에요.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1958년과 2014년의 필립에게 그는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죠. 
은석  나는 누구일까? 누구나 이런 고민이 있을 거예요. 더군다나 사회에서 소외되는 성 소수자들이라면 그 고민이 더 크겠죠. 올리버가 필립에게 이런 말을 해요. 당신은 결국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죽을 거다. 당신의 영혼이 텅 비어가는 걸 견딜 수 없다고. 이렇듯 우리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하는 대사들. 그리고 종혁이 형이 말한 사랑. 결국 이 작품이 말하는 건 이거 같아요. 가치 있는 삶은 사랑이다. 그 사랑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있지 않을까? 

저도 영혼이 텅 비어가는 걸 견딜 수 없다는 대사가 맘에 들던데, 최근에 내 영혼이 텅 빈 것 같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종혁   사실 요즘이 좀…. 하하. 머릿속에 대사는 다 들어가 있는데, 연습실에서 “필립” 하고 대사를 뱉는 순간 멍해져요. 온몸이 텅 비어가는 느낌. 아무래도 첫 연극이란 부담감 때문인 것 같아요. 더 잘하고 싶은데, 혼자 방황하고 있죠. 
은석  전 청소년기에 영혼이 비어있는 상태로 살았어요. 미국에서 자랐는데, 그곳에선 저는 소수 인종이잖아요. 한국인이 미국에 살고 있고, 집에서는 한국 이름이 있는데 밖에서는 영어 이름을 써야 하고. 정체성의 혼란이 너무 컸죠. 영혼이 분산된 느낌이었어요. 어렸을 때 너무 텅 빈 삶을 살아서, 지금은 목표를 향해 죽기 살기로 달리고 있어요. 

이 작품이 넓게는 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요. 의미 있는 삶을 위해 각자 추구하고 있는 가치는 뭐예요?
종혁   아쉬워는 하되 후회하지 말자. 모자라서 아쉬운 것은 나중에 어떻게든 메울 수 있지만, 후회한다는 건 잘못된 선택을 했단 거잖아요. 할 수 있을 때 안 했다는 거죠. 제 가치대로 살다보면 진짜 정신없이 시간이 가더라고요. 그래도 더 해볼걸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왜 이렇게 했지 하는 후회는 없어요. 
은석  저는 젊었을 때 고생하자! 그래야 노후가 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걸 원해요. 돈도 많이 벌고 세계 여행도 가고 싶고. 그런데 정작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더라고요. 참 안타까워요. 나중에 돌아보면 후회할 텐데. 지금 내가 그렇게 시간을 버리면 미래가 힘들어지잖아요. 지금 잘 준비해서 나중에 더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 가치를 갖고 결국 도달하고 싶은 곳은 어디죠?
종혁   결국 인생 말미에 가서 내가 더 행복하고 편안해지는 게 목표에요. 또 하나, 제가 어렸을 때 사고를 너무 많이 쳤거든요. 그래서 이젠 부모님께 진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어요. 
은석  전 좋은 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순간에, 누군가가 “박은석 같은 경우는…” 하고 좋은 본보기로 말해줄 수 있게요. 그러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1호 2014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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