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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캣츠> [NO.98]

글 |김영주 2011-12-12 5,602

이 구역 노는 고양이들을 불러낸 몇 가지 상상 <캣츠>
 

 

 

 


뮤지컬 <캣츠>를 설명할 때 고양이를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우화’라고 하면 틀린 것이다.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이 우화인데, 사실 이 표현은 <캣츠>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캣츠>의 원작인 T.S 엘리어트의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지침서〉는 확실히 우화시집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을 ‘우화’라고 지칭한다면 무대에서 한 단계의 위장이 덧씌워진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된다. 우리가 객석에 앉아서 보는 것은 고양이들에게 다양한 인간의 직업과 성격을 부여한 연작시를 무대화하기 위해서 고양이처럼 털옷을 입고 본래 얼굴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짙은 분장을 한 배우들이 ‘고양이인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뮤지컬 <캣츠>는 사람의 모습과 성격을 본 딴 고양이들을 연기하기 위해 사람이 고양이인 척 하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사람처럼, 사람이 고양이처럼 이 두 번의 변환과정을 칼로 자르듯 명확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캣츠>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숫코양이 럼텀터거의 예를 들어보자. 럼텀터거는 자신의 성적 매력을 과시하며 자시만만하게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마라, 누군가 나에게 생쥐를 잡으라고 하면 시궁쥐를 잡을 것이며, 시궁쥐를 잡으라고 하면 생쥐를 잡을 거다, 집안에 두려고 하면 마당으로 나갈 거고 마당에 있으라고 하면 집안으로 들어가겠노라 으스대며 말하는 저 말 안 듣는 고양이를 보고 ‘아이고, 고 놈 참 우리 누구 같네!’라고 한탄할 사람들은 청개구리 띠 아이를 둔 엄마 못지않게 고양이 주인들 중에서도 상당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재미있는 우화의 기본은 다른 두 존재 사이에서 그럴듯한 이형동질성을 찾아내는 데 있다.

 

 

 


T.S 엘리어트는 종잡을 수 없는 고양이 럼텀터거에 대해 시를 쓰면서 좀체 사람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고양이들의 습속을 끌어왔다. 충직하고 순종적인 개와 대비되는 고양이의 이런 기질은 사실 종적인 특성으로 여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인 언급한 것만 가지고는 무대 위에서 ‘럼텀터거’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고양이의 개성과 매력을 충분히 살릴 수가 없다. 텍스트로 된 시는 읽는 이가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울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지만 3차원의 무대에서 보게 될 극중 캐릭터는 좀 더 확실한 설정이 있어야만 그럴듯한 부피감을 가지고 관객들의 눈앞에 존재할 수 있다. 뮤지컬 <캣츠>의 크리에이터들은 럼텀터거에게 상당히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인 설정을 선사했다. 로큰롤의 나라 영국에서 태어난 고양이답게, 럼텀터거는 록스타의 애티튜드와 스테이지 액션으로 무대를 사로잡는데, 비유하자면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중 단연 롤링 스톤즈의 후예라고 할 만한 섹스어필을 보여준다. 럼텀터거가 화려한 갈기와 몸의 라인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의상을 입고 자신만만하게 자아도취적인 가사의 노래를 부를 때면 그대로 글램록 스타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러블 메이커지만 바로 그 점이 치명적인 매력이 되는 고양이에게 록스타의 캐리커처를 덧입힌 것은 더할 수 없이 적절한 설정이다.


아스파라거스, 줄여서 거스라고 불리는 늙은 배우 고양이는 연극에 대한 영국인들의 깊은 애정과 존경심이 함께 느껴지는 캐릭터다. 거스는 영국인들만 알 법한 전설적인 옛 배우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섰음을 자랑스러워하고, ‘요즘 젊은 것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옛 시절 연극의 품위를 간절한 그리움으로 추억한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원작의 연작 시 중 하나를 거스의 옛 추억으로 설정하여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줄 수 있는 극중극을 <캣츠>안에 삽입하는 기회로 삼는다.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는 <캣츠>의 모든 고양이 중 가장 ‘고양이’에 가까운 캐릭터로 가장 환상적인 존재다. 그는 럼텀터거의 소개를 받으며 등장해서 입 밖으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캐릭터 중 가장 화려한 고난도의 안무를 소화한다. 미스터 미스토펠리스가 선보이는 마법이 그 자체로 대단한 수준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아하면서도 탄력있는 32회전 푸에테를 ‘고양이 같은’ 균형감각으로 해내는 이 캐릭터가 무대 위에서 만들어내는 환상성은 충분히 마법 같다.

 

 

 


<캣츠>에 등장하는 다양한 고양이들을 직업을 가진 쪽과 무직자로 나눠보자면 극장 고양이 아스파라거스와 기차고양이 스킴블샹크스,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 교사 고양이 재니애니도츠, 부자 고양이 버스토퍼 존스, 도둑고양이 몽고제리와 럼플티저 등이 있다. 그리자벨라나 럼텀터거는 직업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예능계’ 종사자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경우다. 반면 직업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고양이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가 자신의 캐릭터가 된다. 다시 태어나는 특권을 누릴 고양이를 결정하는 존경받는 선지자 올드 듀터러노미, 무리를 이끄는 멍커스트랩과 모두를 돕는 젤리로럼, 그리고 순백의 어린 고양이 빅토리아가 이 그룹에 해당한다.


첫 그룹에 해당하는 고양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캐릭터를 설며하는 솔로곡을 부른다. 사실 <캣츠>는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탄탄하게 기승전결이 진행되는 작품이 아니라 다수의 고양이들이 병렬식으로 ‘자기소개’를 하다가 선지자 고양이가 납치되는 위기 상황이 닥치고, 이 위기가 마법사 고양이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헐거운 이야기 구조를 가진 뮤지컬이다. 이 작품에서 전문직업인 고양이들의 ‘인간적인’ 사연들은 우화적인 즐거움과 함께 관객들에게 다양한 인생의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이에 비해 비직업인 그룹은 젤리클 고양이들의 관계성은 작품에 디테일을 더해주어 서사적인 빈틈을 채우면서 이런 소소한 요소까지 알아볼 만큼 <캣츠>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마니아들에게 자잘한 재미와 뿌듯함을 준다.

 

무대에 선 사람은 모두 누군가를 흉내 낸다. 온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과 사연으로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자전적인 작품일 경우에도 그것은 자기 자신의 한 때에 대한 흉내다. <캣츠>는 이 흉내 내기가 가지고 있는 환상적인 면을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배우의 얼굴 위에 그려진 고양이의 얼굴은 가면이나 인형탈보다 훨씬 맨 살 가까이 달라붙어있다. <캣츠>의 배우들은 신비로운 네 발 짐승처럼 보일 수 있도록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기 몸을 완벽하게 통제해야하고, 우리는 그 위장을 통해서 전혀 다른 두 존재 사이의 닮음과 다름을 본다. 애초에 다르기 때문에 존재하는 틈과 그 틈을 지워버릴 수 있다는 듯이  자신이 아닌 무엇에 가까이 다가가는 배우들은 무대 위에 현실을 뛰어넘어 다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 요소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8호 2011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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