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으로 물든 아나테브카
2008년 남산의 겨울은 아름다웠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보고 나오는 세상은 그 이전과 달랐다. 광활한 벌판에 잎을 떨군 자작나무가 듬성듬성 놓여 있는 우크라이나의 한 마을에서 우리는 전통을 지키려는 유대인들과 그들이 사랑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석양이 붉게 물든 배경을 뒤로 하고 커다란 수레를 끌고 나오는 한 가장의 굽은 어깨와 상징적으로 놓여 있는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지붕, 무대 위의 그대로 노출된 오케스트라들이 들려주는 음악, 이 모든 것들이 한 폭의 그림 안에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테비에 가족을 중심으로 러시아군이 지배에 있는 유대인 집단 지역 아나테브카에 모여 사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전통을 지키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간다. 일이 안 풀릴 때면 하느님께 푸념을 하면서도 한 번도 자신의 신을 의심하지 않은 귀여운 테비에 아저씨는 다섯 딸을 두었는데 결혼을 앞둔 세 딸이 중매쟁이가 결정해주는 짝을 배필로 받아들이는 전통 결혼 방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한 사람과 결혼한다.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것보다 딸을 더 사랑하는 테비에는 딸들을 위해 귀여운 거짓말로 아내를 설득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이올니스트가 지붕 위에 올라가 연주를 하는 첫 장면이다. 이 장면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안정된 자세로 연주를 하지만 불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쓰러지기 직전의 고요, 파멸을 앞둔 아름다움은 사라짐으로 인해 더욱 안타깝고 깊은 정조를 발산한다. 2008년 <지붕 위의 바이올린> 공연은 황량한 평야에 쓸쓸한 마을 아나테브카를 상징적으로 처리한 무대와 감성을 자극하는 조명이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주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배우들의 노래는 귀를 즐겁게 했고, 제롬 로빈스의 초연 안무에 기초한 러시아의 전통 춤은 흥겨웠다. 테비에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정서로 충만하게 했다. 그러나 대중이나 평간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호평과 혹평이 혼재했다.
진단 및 처방
“중장년이나 가족 관객들이 많았다. 뮤지컬은 신나고 즐겁기를 기대하는데 그런 작품은 아니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공동제작사인 해븐의 박용호 대표는 흥행 실패 원인을 작품 성격에서 찾았다. 무엇보다도 많은 지적을 받은 것이 템포였다. 딸들의 연애, 반대, 결국은 찬성의 패턴이 반복되었고, 러시아 소설처럼 템포 자체가 느렸다. 빠른 템포에 익숙한 요즘 세대는 물론 밝고 신나는 것을 기대한 중년관객층들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어둡지 않다. 단지 마냥 밝지만은 않다. 낙천적인 유머도 있고 흥겨운 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존 뮤지컬이 안겨주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자 극복할 과제이다. 이 작품만의 고유한 매력이 있고 그것에 열광하는 관객층이 분명 존재하지만 특정 관객들을 타깃으로 하기엔 규모가 컸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인 요구를 받아들일 절충이 필요하다. 절충이라는 것만큼 애매하고 모호한 것도 없지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1호 201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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