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위대한 성과
지난 8월의 마지막 날,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뮤지컬 쇼케이스가 열렸다. 최근 신인 창작자들의 도전을 시험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종종 열리지만, 이번 워크숍 공연은 조금 특이했다. 열 명의 작사가와 작곡가가 2주라는 단시간 내 완성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치열했던 공동 창작 작업에 함께했던 이은영 작사가와 최대명 작곡가, 그리고 열 명의 선수들을 이끈 이지혜 감독을 만나 뜨거웠던 지난여름에 대해 들어보았다.
철저한 사전 준비
프로젝트박스 시야는 뮤지컬 창작자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대학교 재학 이상의 학력을 지닌 신청자 중 작사가와 작곡가 각각 다섯 명씩 선발했다. 참가자 선발 시 모집 과제가 있었다. 작사가에게는 <지킬 앤 하이드>의 대표곡 ‘지금 이 순간’을 다른 뮤지컬의 캐릭터가 부른다는 가정하에, 그 곡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작곡가는 김혜순 시인의 (난해한) 시 ‘메아리나라’를 가사로 한 곡을 만드는 것이 시험 내용이었다. 작사가와 작곡가 모두 직접 완성한 곡을 불러서 녹음한 음원도 함께 제출해야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극작가 없이 작사가와 작곡가가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는 만큼, 모두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고전을 기본 텍스트로 선택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최근 영화와 소설로 다시 제작되면서 대중적 관심을 얻고 있고, 각각의 캐릭터들이 생동감 있고 명확해서 보는 이마다 논란의 여지가 적어 원작 텍스트로 적격이다. 또한 1920년대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음악적 힌트 역시 강하다. 첫 번째 강의에 참석하기 전, 열 명의 참가자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작사가는 개츠비와 데이지, 탐, 조던, 머틀, 닉 여섯 명의 캐릭터에게서 떠오르는 명사와 형용사, 부사, 동사들을 찾아오고, 각 캐릭터들이 하고 싶은 말(독백)을 100자 이하로 써왔다. 작곡가 역시 캐릭터별 테마 음악을 만들어 왔다. 이렇게 해서 강의 첫날, 각 캐릭터마다 다섯 곡(및 독백), 총 서른 개의 곡(및 독백)이 모였다.
캐릭터에서 발전한 뮤지컬 넘버
강의 첫날, 이지혜 감독을 중심으로 이미 써온 선율들이 어떤 캐릭터에게 적합하며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지 논의한 후, 해당 선율에 맞춰 가사를 써보고 싶은 작사가가 그 곡의 작곡가와 자연스럽게 파트너로 정해졌다. 서른 개의 짧은 멜로디 중 십여 개가 뮤지컬 넘버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 원래는 이 캐릭터를 위한 선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캐릭터의 곡으로 재해석된 것들도 있었다. 가사 역시 과제로 써온 단어 및 독백을 바탕으로 발전시켰다. 한 곡을 담당할 작사가와 작곡가 콤비가 정해지면, 두 사람이 협업해 짧은 선율과 단어들을 하나의 완성된 곡으로 확장했다.
주요 캐릭터를 보여주고 극의 전체 분위기를 결정할 곡들을 중심으로, 과제를 실제 뮤지컬 넘버로 발전시키는 작업에 투자하기를 3일. 4일째에는 이미 만든 곡들을 전체 드라마 전개에 맞춰 나열해 보고, 빠진 부분을 체크했다. 전체 줄거리 중 비어 있는 장면에서 필요한 음악은 어떤 것일지 다함께 논의한 후, 그 곡을 쓰고 싶은 이들은 자청했다. 6일째 강의에서 총 19곡의 뮤지컬 넘버가 정해졌고, 이후에는 완성 및 보완 작업을 이어 나갔다. 열 명의 참가자에게 각각 3~5곡이 주어졌고, 각 곡마다 다른 작사가 및 작곡가와 협업하게 됐다. 2주간 매일 진행된 강의 동안 참가자들은 내 곡 네 곡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의 곡이라 생각하고 가사와 멜로디 수정에 의견을 나누었다. 강의를 마친 후엔 각자 집으로 돌아가 밤새도록 파트너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곡을 완성해 나갔다. 2주 만에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참가자들은 열정적으로 프로젝트에 임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후반부에서 가장 큰 혼란을 빚는 장면은 ‘플라자 호텔’이라는 곡으로 표현했다. 탐과 개츠비, 데이지와 닉, 조던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서로의 관계를 폭로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으로, 두 명의 작곡가와 네 명의 작사가가 총출동해 10여 분의 곡으로 완성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날뛰는 드라마를 한 곡으로 담기엔 힘들었고 완성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곡들과 어울리지 않고 배우들이 연습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그 곡은 쇼케이스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중요한 장면이므로 대사로 대신했고, 일부 멜로디는 언더스코어로 활용됐다. ‘일대일’ 협업이 아닌 ‘다대다’의 협업을 실험했고 실패했으나, 그 또한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곡이 완성되는 대로 음악감독과 배우들에게 악보를 전달했다. 쇼케이스가 열리기 불과 4~5일 전이었다. 무척 짧은 기간에 창작과 연습까지 행하느라 창작자와 음악감독은 물론, 배우들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참가자들 모두 독특한 경험을 즐거워하고 뿌듯해했다.
MINI INTERVIEW
어떻게 2주 만에 창작자들을 가르치고,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나?
이지혜 총감독 뮤지컬 창작 교육에서 작곡가만을 위한 강의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뮤지컬은 특별한 상황에 대한 곡, 드라마를 보여주는 곡을 써야 하기 때문에 가사와 멜로디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작사가와 작곡가를 모아 협업 수업을 하기로 하고,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모두 아는 이야기를 선택해야 했다. 드라마 구조부터 만들어야 했다면 절대로 2주 만에 못 해냈을거다. 그리고 강의 첫날, 쇼케이스에 참여할 배우들을 데려와서 창작자들에게 그들의 음역대를 알려줬다. 음색과 음역대 등을 알면 캐릭터를 좀 더 명확히 설정할 수 있고, 곡을 쓸 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파트너와 작업해야 하는 공동 창작 방식이 독특하고 낯설었을 텐데?
이은영 작사가 제각각 스타일이 다른 작곡가들을 경험하는 게 재밌었다. 작사가의 결정을 전적으로 믿는 이가 있는가 하면, 좀 더 구체적으로 가사의 느낌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작사가와 작곡가 둘 다 만족하는 곡이 나오려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최대명 작곡가 나중에 돌이켜 보니, 개성이 다른 다섯 명의 작곡가를 뽑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아름다운 선율을 무척 잘 써서 러브 테마는 그가 담당하고, 어떤 친구는 분위기 묘사를 잘하고, 또 다른 친구는 극적인 스토리 표현을 잘하는 등 나름대로 역할 분배가 잘된 것 같더라.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해 들은 조언 중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이은영 작사가 가사를 쓸 때 캐릭터의 심정과 상황에 빙의해보란 말씀. 참, 작사가든 작곡가든 노래랑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도 하셨다. 그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 위해선 창작자가 직접 배우처럼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최대명 작곡가 그래서 곡을 완성한 후에, 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의 표현으로 우리가 자청해 우리끼리 OST를 녹음했다. 우리만 소장하고 있는. (웃음) 쇼케이스 공연이 끝난 후 엔딩곡으로 흘렀던 게 우리 목소리였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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