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해서 아름다운 무대
일본 만화가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이 국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심야식당>은 마스터가 혼자 운영하는 작은 식당을 배경으로, 이곳을 찾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일본 특유의 소소하고 잔잔한 정서가 이 작품이 사랑받았던 이유. 따라서 <심야식당> 제작사는 원작의 정서를 살리기 위해 일본 무대디자이너 이토 마사코를 섭외했다. 따뜻하고 차분한 ‘심야식당’을 보여준 무대디자이너 이토 마사코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십 개의 허름한 술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골목, 신주쿠 골든가이. 골든가이는 도쿄 최고의 유흥가인 가부키초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1950년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낡고 지저분하고, 열 명이 채 못 들어갈 만큼 작지만, 옛 정취가 배어 있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여럿이 몰려가기보단 혼자 조용히 가게를 찾아 주인장과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물론 이는 친해져야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일상의 피곤함을 씻어낼 수 있는 곳이라고 할까. 이 위로의 공간 골든가이가 <심야식당> 원작 만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나는 한국에서 <심야식당> 작업 제의를 받고 나서 원작을 보게 됐는데, 당연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골든가이보다 더 정확하게 <심야식당>의 정서를 잘 표현해낼 공간은 없어 보였다. ‘무대 위에 골든가이를 재현하자.’ 디자인 구상 단계에서 다른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심야식당>의 메인 세트는 영업 시간 때문에 일명 ‘심야 식당’으로 불리는 식당 ‘메시야’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메시야는 밥집의 일본어이자, 히브리어로 구세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다소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구원의 공간인 메시야를 원세트 무대에서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첫 번째 고민이었다. 사실 프로덕션 회의 초반에는 메시야를 중앙에 조금 더 크게 만들면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무대 위의 작은 집처럼 디자인했다. 규모가 커지면 ‘심야 식당’이 가진 느낌을 살릴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메시야는 세트의 핵심이 되어야 했다. 메시야 주위 건물을 회색으로 넣은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다른 곳에는 색깔을 넣지 않음으로써 심야식당이 따뜻한 곳이라는 걸 부각시켜주기 위해서 말이다. 또 한 가지 신경을 썼던 점은 각 건물의 사이즈와 각도다. 건물들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 비스듬히 틀어져있는데, 이 골목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골목과 연결되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내가 본 <심야식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곳에 가면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주는 공간. 내가 바랐던 것은 관객들이 공연을 보면서, 나도 저기에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무대 양옆으로 낮게 달린 간판을 많이 넣은 것은 실제 골든가이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관객을 이끄는 장치라고 할까. 불빛을 보면 빛을 따라 끌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나. 무대에서 객석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넣은 것도 그래서다.
사람들이 <심야식당>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품을 통해서 위로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심야식당>에서 말하는 위로는 특별한 위로가 아니다. 각자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의 속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아픔을 위로받는 것, 이것이 <심야식당>이 정을 잃어가는 시대에서 외로운 현대인에게 건네는 위로법이다. 이번 공연을 보고 나서 내게도 무엇이든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있었나 떠올려 보는 시간이 되길. <심야식당>으로 마음 따뜻해지는 위로를 받고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1호 2012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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