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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ketch] <심야식당> 리딩 현장 [NO.102]

글 |이민선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2012-03-13 4,634

따뜻한 이야기 위에 음악 한 조각

 

지난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 111에서,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두산아트랩의 일환으로 뮤지컬 <심야식당>이 관객 앞에 첫선을 보였다. 아베 야로의 원작 만화를 토대로 만든 작품으로, 정식으로 무대에 오르기 전에 현재까지 준비된 대본과 음악에 간소한 무대 세트와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진 리딩 공연 형식으로 진행됐다. 뮤지컬 <심야식당>은 <라디오 스타>와 <남한산성> 등에서 작사가로 활약한 정영이 극본과 작사를 맡고, <김종욱 찾기>와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 대학로 대표 스테디셀러 뮤지컬을 만든 김혜성 작곡가가 곡을 썼다. 이에 김동연 연출가가 합세하여 공연으로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세 젊은 창작자들은 지난 3일간의 워크숍을 통해 관객들과 제작자들로부터 가능성과 동시에 보완해야 할 점을 확인받는 기회를 가졌다.

 

 

 

 

 

현재 단행본으로 8권까지 출시된 『심야식당』은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됐으며, 현해탄 너머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하는, 말 그대로 심야식당이 배경이다. 이곳의 공식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뿐이지만, 손님이 뭐든 주문하면 가능한 재료 내에서 만들어준다는 게 특징이다. 늦은 밤에 식당을 찾은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요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마스터(주인)는 손님의 뱃속을 채워주고 그들의 마음에도 고소함과 달콤함을 더한다. 자정 이후에 신주쿠 뒷골목에 위치한 밥집을 찾는 손님이란 대체 누구인가. 밤일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간혹 아침형 인간도 등장한다. 신주쿠의 유흥업 종사자와 그곳의 고객이 심야식당의 단골손님이며, 특이한 밥집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도 있다. 만화는 열 페이지 남짓한 각 장에 손님이 주문한 요리 이름이 제목으로 붙어있다. 이곳을 찾은 이들이 주문하는 것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달걀말이나 우동 등으로, 그들은 습관처럼 즐겨 먹는 음식으로 일상의 고단함을 덜어낸다. 식당에 손님이 들고 나듯, 만화는 음식에 담긴 다양한 이들의 사연을 짧은 호흡으로 나열한 옴니버스 형식을 띠고 있다.


기존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어 뮤지컬을 만드는 경우, 원작에서 무엇을 취사선택할 것인지가 첫 번째 과제다. 장편의 소설이나 드라마를 두 시간여로 축소하는 것이 일반적인 뮤지컬의 미션이라면, <심야식당>은 백 편이 넘는 에피소드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며 각각의 에피소드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했을 터다. 결과적으로 뮤지컬 <심야식당>은 단골손님의 에피소드 위주로 선별하되, 한국 문화와 이질감이 적어서 한국 관객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본어 요리명과 이야기 사이에 언어유희가 삽입된 에피소드나 일본에서만 봄직한 요리와 사연은 제외됐다.

 

 

 


이번 워크숍 공연에는 심야식당의 마스터로 송영창이 출연했다. 그는 가게의 문을 열고 닫으며, 그곳에서 밥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곳을 찾은 또 다른 손님인 관객들에게 들려주었다. 마스터뿐만 아니라 그 동네의 터줏대감인 타다시(이상은)와 늙은 게이바 주인 코스즈(임기홍)의 입을 통해 골목 안 갖가지 사연의 문이 열렸다. 우선 각각의 등장인물이 소개된다. 나이는 많지만 가슴이 커서 여전히 인기가 많은 스트립 댄서 마릴린(박혜나), 험악한 외모와는 달리 아이처럼 비엔나소시지를 즐겨 먹는 깡패 켄자키 류(원종환)와 그의 부하 겐(윤석현)을 통해,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직업 종사자들도 똑같이 밥 한 술에 정을 나누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오차즈케(녹차에 말아먹는 밥) 시스터즈는 그들보다 좀 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젊은 여성들이다. 외모도 원하는 남성상도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항상 식당에 함께 와서 각자가 좋아하는 연어(하재숙), 명란젓(백주희), 매실(이봉련)이 들어간 오차즈케를 주문해 먹는다. 늘 취한 채 식당을 찾는, 타다시의 노모와 한물간 아이돌 스타, 그 스타를 잊지 않고 있는 팬들도 등장한다. 배우들의 일인다역 연기는 필수다.


만화는 요리 하나에 얽힌 하나의 에피소드가 마무리되면, 다음 장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뮤지컬은 만화와는 달리, 각각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들을 나누고 섞고 이어 붙여서 느슨하게나마 스토리텔링 형식을 띠었다. 드라마는 켄자키 류와 코스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거친 외모의 남자와 다정한 게이 남자가 처음 식당에서 만나고 가까워지는 사이,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속을 채운다. 같은 식당을 찾는 이들이 우연히 엇갈리고 또 마주치듯이, 누군가가 밥을 먹고 이야기하는 동안 다른 이가 들어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되받곤 한다. 이런 전개가 가능하도록 창작자들은 원작의 캐릭터에 약간의 변화를 주고 비슷한 내용의 에피소드를 앞뒤로 배치해 연결을 매끄럽게 했다. 단골손님들이 반복적으로 식당에 등장함으로써 그들 각자의 고민이 어떻게 해결됐고 함께 식당을 찾은 일행과의 관계는 어떻게 진전됐는지 알 수 있다. 등장인물이 많은 탓에 각자의 사연들은 짧지만, 결국 그들은 허전했던 마음에 온기를 더하고 서로의 우애를 확인하며 따뜻한 결말을 맞는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열됐던 에피소드들을 섞고 이음으로써 생길 수 있는 공백은 음악이 메웠다. 대본만으로는 긴밀하게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음악의 정서로 연결이 가능했다. 게다가 <심야식당>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음식과 사람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는 내용이어서, 감성에 호소하는 멜로디가 작품의 정서 전달에 기여하는 부분이 컸다. 심야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요리만큼 소박하지만 따뜻한 음악이 뮤지컬 <심야식당>을 채웠다.


리딩 공연은 준비 단계에 있는 뮤지컬의 대본과 음악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서 무대 미술이나 연출은 드라마의 이해를 돕는 간소한 수준으로 진행됐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 안쪽의 조명 갓 위로 ‘메시(めし, 밥)’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공연이 끝나면 밥집임을 알리는 등도 꺼진다. 만화 속 식당에는 마스터의 주방을 바라보는 ㄷ자형의 바가 손님들의 식탁으로 마련되어 있다. 뮤지컬 무대 가운데에는 넓은 테이블이 놓여 있고 손님들은 관객들을 바라보고 각자의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한다. 이 테이블은 밥상인 동시에 손님들의 사연이 재현되는 무대가 된다. 음식을 주문한 손님이 갑자기 상 위로 올라가 한바탕 속내를 털어놓는 쇼를 선보이곤 한다. 클로즈업이 어려운 무대의 특성상 사연의 핵심이 되는 음식을 요리하고 소개하는 장면을 보여주기 어렵다. 워크숍 공연에서는 마스터가 내놓은 요리 접시를 조명으로 대신했으나, 제작진은 본 공연에서는 간단한 요리 정도는 직접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진정 오감을 자극하는 공연을 기대해볼 수 있을 듯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2호 201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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