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디자인에 눈을 뜨다 <레 미제라블>
처음으로 음향 디자인에 가깝게 시도했던 작품이 <레 미제라블>이었다. 1993년 리틀엔젤스 예술극장(현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공연할 때였다. 애초부터 이 작품의 음향디자이너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공연을 보러 갔는데, 그것도 늦어서 ‘I Dreamed a Dream’ 장면부터 볼 수 있었다. 작품은 너무 좋고 감동적이었는데 음향이 기본적인 것도 맞추지 못했다. 듀엣을 부를 때 밸런스가 안 맞으니까 듣기가 영 불편했다.
나 역시 음향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연주 파트에 있다가 음향을 담당하게 됐는데,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장면 이해가 부족했다. 스카이와 네이슨이 지하에 내려가서 도박하는 곳이 하수구인 줄도 몰랐다. 커다랗고 둥그런 무대 세트가 하수구를 표현한 것인지는 나중에야 알았다. 여러 번 본 나도 모르는데 관객들이 알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 장면에 물방울 떨어지는 효과음을 한번 깔아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감독 형이 와서 아까 그거 무슨 소리냐고 해서 “미안해요. 한번 해본 건데 다음부터 뺄게요” 했더니 “아니, 너무 좋았다”며 계속하라고 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음향에 이런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이때 비로소 음향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다시 <레 미제라블>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1막이 끝나고 콘솔에 가보니 이 작품의 조연출이 음향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2막부터는 공연 보는 것을 포기하고 내가 음향을 맡았다. 밸런스만 맞추어줘도 훨씬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무런 협의도 없이 리틀엔젤스로 출근했다. 이상하게도 연출자나 제작자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더라.
<레 미제라블> 음향은 이전과 다른 재미가 있었다. 쇼 뮤지컬을 해오다가 드라마가 강한 작품을 하니까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장 발장이 다친 마리우스를 앞에 두고 부르는 ‘Bring Him Home’은 속마음을 노래하는 곡이다. 그럼 나직하면서도 기도하듯이 경건하게 들리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베르가 자살하기 전에 부르는 곡에서는 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는 장면이니까 마지막 부분에 마치 물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효과음을 넣었다. 또 마지막 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은 혁명 이후 죽은 자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죽은 자가 부르는 노래니, 공간도 죽은 사람들의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처럼 음향을 만들었다. 이 음향 효과는 <명성황후> 할 때 ‘백성이여 일어나라’에 대입시키기도 했다. <레 미제라블>을 하면서 드라마를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음향을 찾아 실험해볼 수 있었다. <레 미제라블>은 내게 음향 디자인에 눈을 뜨게 해준 작품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2호 201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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