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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INI SPECIAL]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스릴러 뮤지컬 [No.130]

글 |박병성 2014-08-17 4,903
한 해 중 가장 수은주가 높게 올라가는 7월과 8월, 더위를 식혀줄 뮤지컬이 없을까. 작품만 떠올려도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한여름 피서용 뮤지컬! 그러나 곰곰 생각해봐도 공포 뮤지컬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쓰릴 미>의 사건이 경악스럽긴 하지만 끔직한 사건보다도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지킬 앤 하이드>에서 하이드가 루시를 죽이기 직전 큰 천둥소리와 함께 갑작스럽게 나타나 화들짝 놀라긴 하지만, 두 작품을 공포 뮤지컬이라고 하긴 힘들 것 같다. 공포물이라고 하면 사지가 뒤틀린 귀신이 TV 브라운관에서 걸어 나오거나, 한니발 렉터 같은 사이코패스가 뇌 정도는 먹어줘야 소름 좀 돋고, 식은땀 좀 흘리지 않을까. 



공포 뮤지컬은 왜 없을까

공포영화가 영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있는 데 비해 공연에서 공포물은 명확한 영역을 구축하지 못했다.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가는 영화는 상대적으로 끔찍한 장면을 영상 기술로 적당히 커버해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생생하게 진행되는 공연 예술은 공포물을 표현하기에 기술적으로나 상황적으로 적합한 매체는 아니다. 같은 무대 예술이라고 해도 연극은 공포 연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올라가는 작품을 종종 본다. <우먼 인 블랙>만 해도 음습한 이야기와 잦은 암전과 신경을 곤두세우는 음향효과로 스릴과 공포를 주며 상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한여름에는 유령이나 귀신이 등장하는 심야 공포 연극을 기획 상품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이런 작품들은 내용보다도 실제 소복을 입은 배우들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유령의 집’ 수준의 공포를 준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그럴듯한 공포 뮤지컬을 찾아보기 힘들다. 공포영화 <아메리칸 싸이코>를 토대로 만든 뮤지컬에서도 세련된 무대 연출로 오히려 잔혹한 느낌을 덜어냈다. 대중예술이면서 상대적으로 관객 시장이 좁은 뮤지컬 장르에서 공포심을 극대화해 19금 뮤지컬로 만든다면, 청소년층은 물론 심약한 이들은 애초부터 관객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저예산 컬트 뮤지컬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작정하고 공포를 중심으로 내세우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시장의 요건 이외에 장르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뮤지컬에서는 음악이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는데 공포 감정을 노래로 표현한다면 실제 공포감을 상당히 약화시킬 것이다. 

<스위니 토드>에서 스위니 토드가 부르는 ‘조안나’는 뮤지컬 음악 중 아마 가장 무시무시한 노래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 ‘조안나’라는 곡은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중 스위니가 부르는 ‘조안나’는 복수의 화신이 된 스위니가 이발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살해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4중창으로 이루어지는 이 노래는 스위니와 안소니, 조안나, 그리고 거지여인이 각자 파트를 나누어 부르는데, 스위니의 노래는 딸을 그리워하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발라드다. 사랑스런 발라드를 부르면서 아무런 동요 없이 사람들의 목에 면도칼을 긋는 장면은, 사이코패스적인 살인마가 된 스위니를 보여준다.  



스릴러 뮤지컬 장르

공포 뮤지컬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스릴러 뮤지컬은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스펙터클하고 볼거리가 많은 작품들이나, <헤어스프레이>처럼 긍정적이고 유쾌한 뮤지컬이 주로 인기를 끈 반면, 국내에서는 유독 어두운 스릴러 뮤지컬들이 인기가 좋다. <지킬 앤 하이드>나 <레베카>, <잭 더 리퍼> 등의 스릴러 작품들이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창작뮤지컬 중에서도 <프랑켄슈타인>, <블랙메리포핀스>, <아가사>, <셜록홈즈> 등 스릴러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유독 많이 만들어졌고 흥행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국내에서 스릴러 뮤지컬이 유행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스릴러 장르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대중 서사 중 하나다. 추리를 통해 사건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한다. 국내 관객들은 감정적으로 진폭이 큰 작품을 좋아한다. 막장 드라마가 인기인 것도 논리의 비약을 통해 감정의 진폭을 크게 하기 때문이다. 음식도 심심한 맛보다는 맵고 짠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우리 관객들은 화끈한 작품을 좋아한다. 또한 희극보다는 비극을 선호하는 측면이 크다. 특히 대형 뮤지컬에서는 웃음을 주는 작품보다 스펙터클한 드라마가 있고 격렬한 감정을 노래에 담아내는 작품이 호응도가 높다. 이러한 요소들이 스릴러라는 장르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스릴러는 넓은 의미에서 서스펜스 드라마에 속한다. 재능 있는 영웅이나 그에 준하는 인물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해간다. 탐정 추리물, 모험물, 괴기물 등이 스릴러에 포함된다. 어떤 이는 큰 틀에서 스릴러를 추리 서사의 하위 장르 중 하나로 두기도 한다. 그러나 스릴러 장르에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모험물, 좀비 등이 출연하는 공포물 역시 포함된다. 모험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는 괴기물 역시 새로운 세계나 존재를 밝혀내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추리 서사로 보기도 한다. 스릴러와 추리 서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든,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스릴러에는 추리 서사의 성격이 짙은 범죄 수사물과, 그와는 거리를 두는 괴기·모험물로 나뉜다는 점이다. <셜록홈즈>, <블랙메리포핀스>, <쓰릴 미>, <아가사>, <레베카> 등이 범죄 수사물에 속한다면, <지킬 앤 하이드>, <스위니 토드>, <이블데드> 등이 괴기·모험물에 포함될 것이다. 



스릴러1 - 범죄 수사물

파편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실체를 규명해가는 지적 게임인 추리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작업이다. 대중 서사에서 추리물은 일찍부터 인기를 끌어왔고,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 같은 불세출의 영웅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수많은 작품들이 추리물의 구조로 재편되면서 흥미를 주었다. 범죄 수사물에는 세 가지 입장이 존재하다.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탐정이다. 가해자는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 피해자는 그로 인해 피해를 받는 인물, 그리고 탐정은 범죄 사건을 파헤치고 알려주는 인물이다. 탐정은 셜록 홈즈처럼 진짜 탐정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나 검사, 형사 등이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들 중 누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기록하느냐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또한 이야기 중심이 어디에 놓였느냐에 따라 사건의 과정에 집중하는 범죄 서사와, 사건이 발생한 이유에 집중하는 조사 서사로 나뉜다. 흔히 셜록 홈즈 같은 탐정이 주인공일 경우에는 범죄 과정에 집중하는 범죄 서사 형식으로 전개된다. <셜록홈즈1-앤더슨 가의 비밀>은 탐정 중심의 범죄 서사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셜록홈즈2-블러디 게임>에서는 중반부에서 잭 더 리퍼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범죄 이유에 집중한다. 이처럼 <셜록홈즈2>는 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1막에서는 범죄 서사의 형식을 띠는 듯하지만, 2막에서는 잭 더 리퍼의 살인 이유로 이야기 중심이 옮겨지면서 조사 서사의 형태를 띤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셜록 홈즈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범죄 서사와 조사 서사가 섞여 있는 구조 때문이다. 조사 서사일 경우에는 탐정은 전달자로 빠지고 피해자나 가해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앞서 말한 대로 범죄물에는 탐정과 가해자, 피해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반드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블랙메리포핀스>에서 사건을 조사해나가는 인물은 한스를 비롯한 아이들이다. 가해자 역시 그들이고, 피해자는 그들이 살해한 그라첸 박사가 된다. 한스를 비롯한 아이들은 자신들을 실험 도구로 사용한 그라첸 박사를 살해하고 메리가 저택에 불을 지르는 것을 방관한다. 한스를 비롯한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발생한 화재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은 한스가 범죄 과정을 밝혀가는 범죄 서사의 형식이면서, 또한 범죄의 원인이 드러나는 조사 서사의 형식을 띠게 된다. 이는 아이들이 최면으로 과거의 기억을 잊고 있다는 설정 때문에 가능하다. <잭 더 리퍼>는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서술자인 앤더슨 경감은 이야기의 뒤편으로 빠지고 잭 더 리퍼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를 천착해 들어간다. 잭 더 리퍼와 다니엘이 이중인격인 동일 인물로 설정해 범인을 잡아가는 범죄 서사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찾아가는 조사 서사 형식을 모두 취한다. 그런 면에서 <블랙메리포핀스>와 비슷한 형식으로 볼 수 있다. 

<글루미데이>에서는 가해자인 사내가 탐정(서술자)이 되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해자와 탐정(서술자)은 동일 인물이다. <아가사>에서는 작가(서술자)인 레이몬드가 아가사 실종 사건에 대해 들려준다. 남편의 외도, 믿었던 유모의 배신, 기자들의 공격적인 기사로 그녀는 현실에서 도망쳐야 했다. 아가사의 소설을 미리 언론에 알린 레이몬드 역시 아가사의 실종에 일부 책임이 있다. 레이몬드는 사건을 조사해가는 탐정이자 가해자였던 셈이다. <쓰릴 미>에서는 네이슨이 서술자가 되어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가해자는 리처드와 네이슨이고 서술자는 네이슨이며, 피해자는 살해당한 아이지만, 이 작품은 범죄를 저지른 이유나 과정이 아니라 네이슨과 리처드 간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냈다. 



스릴러2 - 모험·괴기물

<인디아나 존스>처럼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스릴 넘치는 모험물이나,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괴기물 역시 넓은 범주에서 스릴러에 포함된다. 뮤지컬에서는 스펙터클한 모험이 펼쳐지는 모험물보다는, 기괴한 존재가 등장하는 괴기물이 많다. 약혼녀와 은사님을 찾아뵈러 가는 길에 폭우를 만나 음산한 성에 들러 특별한 경험을 겪는 <록키 호러 쇼>나, 여름방학 대학교 친구들과 별장에 놀러 가 좀비들을 만나게 되는 <이블데드>는 괴기물의  요소도 있지만 모험물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두 작품에서도 좀비와 외계인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이 겪게 되는 특별한 경험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괴기물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입장에서 서술하느냐, 그에 상대하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삼느냐에 따라 이야기 전개 방식이 달라진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주인공으로 설정되었을 때는 그 인물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초자연적인 존재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는 반면, 그에 맞서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는 공포물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상당히 많은 공포영화에서 주인공은 사이코패스나 귀신이 아니라 그들에 대항하는 이들이다. 이런 공포물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공포감을 주는 쪽보다, 공포감을 느끼는 쪽에 감정 이입하게 만든다. 뮤지컬에서 제대로 된 공포감을 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괴기물일지라도 공포감을 주는 대신 코믹성으로 승화하거나 메시지를 담아낸다. 

<이블데드>는 B급 공포영화의 공포감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경우다. 여름방학 친구들과 여행을 간 별장에서 애쉬는 좀비의 공격을 받고 좀비로 변한 친구와 동생을 살해한다. 한쪽 팔이 좀비로 변하자 전기톱으로 잘라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스토리인데, 이러한 공포를 과장된 연출을 통해 코믹한 장면으로 변신시킨다. 심지어 좀비들이 객석에 잠입하여 피를 뿌리는 스플래터 존(Splatter Zone)을 마련해 관객들이 피의 축제를 즐길 수 있게 했다. B급 코미디와 경쾌한 춤과 노래, 특히 좀비들의 집단 군무는 좀비를 두려운 존재에서 친근한 존재로 바꿔 놓는다.

사회성이 반영된 작품에서 공포를 주는 기괴한 캐릭터는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스위니 토드>에서 스위니 토드는 이익만 추구하는 산업사회에서 살인 기계로 변한 인물을 상징한다. 스위니는 자신의 아내와 딸마저도 알아보지 못하고 살해하려고 한다. <리틀 숍 오브 호러스>의 오드리2 역시 현대인의 욕망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폐업을 앞뒀던 꽃집 점원 시모어, 그는 독특한 꽃을 발견하여 키우게 되고, 그 꽃을 보러 오는 손님들로 꽃집은 다시 성행한다. 시모어가 짝사랑하는 오드리의 이름을 따 오드리2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키워왔는데, 이 꽃에는 비밀이 있다. 사람의 피를 먹으며 자란다는 것이다. 시모어는 점점 자라는 오드리2에게 피를 주기 위해 오드리의 남자 친구, 자신을 의심한 사장을 먹이로 제공한다. 그러다 결국 사랑하는 오드리마저 공포스런 꽃의 먹이가 된다. 오드리2는 만족을 모르고 끊임없이 증식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에서는 오드리2가 객석에 있는 관객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욕망임을 보여주기 위해 객석까지 자라는 장면으로 마무리했다. 국내에서 공연할 때는 에어 튜브를 이용해 객석으로 오드리2의 줄기가 뻗어 나가는 장면으로 같은 효과를 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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