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계의 고전, 드라큘라
전설 속의 뱀파이어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게 된 데에는 소설 『드라큘라』의 공이 컸다. 흥미로운 사실은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이 역사 속에 현존했다는 것. 바로 15세기 루마니아 군주였던 블라드 3세였다. 용(혹은 악마)의 아들이란 의미의 ‘드라큘라’로 불리던 그는 죄인을 산 채로 꼬챙이에 꿰어 서서히 죽이는 것을 즐겼을 만큼 잔혹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잔혹성은 소설 속 피를 좋아하고 온갖 고문을 가하는 드라큘라 백작의 성향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아일랜드의 작가 브램 스토커는 드라큘라 백작에게 무덤에서 일어난 산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의 이미지를 결합시키며, 대중적으로 뱀파이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려주었다. 창백한 얼굴, 날카로운 콧날, 붉은 입술, 새하얀 송곳니, 지금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는 뱀파이어의 이미지는 대부분 드라큘라 백작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비단 겉모습뿐만이 아니다. 자연의 힘을 이용해 동물을 부리고,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고, 마늘이나 십자가에 꼼짝하지 못하는 드라큘라의 성향 또한 뱀파이어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여심을 사로잡은 뱀파이어
뱀파이어의 행보는 여느 악령들과는 조금 달랐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무시무시한 특성은 그만큼 상대를 매혹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한 뱀파이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1994년 제작된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있다. 1990년대 뱀파이어물의 붐을 일으켰던 이 작품은 당대 최고의 두 꽃미남, 브래드 피트와 톰 크루즈를 내세우며 뱀파이어에 대한 호감도를 무한 상승시켰다. 그들은 단순히 피를 갈구하는 야수가 아니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영생으로 인한 권태에 괴로워하는, 더 인간적인 뱀파이어였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뱀파이어는 야만적이라는 그간의 선입견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그로 인해 뱀파이어는 좀 더 젊고 아름다운 존재로의 변신을 꾀할 수 있게 됐다.
뱀파이어계의 또 하나의 핫스타는 꽃미남 뱀파이어 에드워드. 바로 2000년대 전 세계를 뱀파이어 열풍에 빠트린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스테파니 메이어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트와일라잇>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얼짱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소녀 벨라의 사랑을 그리며 뱀파이어물과 틴에이저 로맨스물의 환상적인 결합을 이루었다. 에드워드는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섹시함까지 겸비하며 뱀파이어계에 한 획을 그은 캐릭터. 100살이 넘은 나이지만 고등학생으로 살아가는 그는 놀라운 스피드와 동물적인 감각,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다. 기존의 뱀파이어들과 달리 밝은 빛에 노출되면 다이아몬드처럼 온몸이 반짝일 뿐 치명타를 입지 않고, 인간의 피를 거부하고 동물의 피를 마시는 채식주의자(?)라는 신비로운 특성을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끓어오르는 뱀파이어 본능 때문에 인간인 벨라와의 사랑 앞에 피에 대한 욕구를 이겨내야 하는 숙명도 따른다.
액션 본능 뱀파이어
뱀파이어는 액션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1998년 첫선을 보인 <블레이드> 시리즈는 감각적인 스타일의 뱀파이어 액션물로 남심을 공략했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분한 블레이드는 생모가 임신했을 때 뱀파이어에게 물리게 된 탓에 반은 인간 반은 뱀파이어로 태어났다. 인간과 뱀파이어의 우성 인자만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빛과 마늘, 십자가를 봐도 끄덕없다는 게 특징. 거기에 각종 무기들을 다루는 솜씨나 무술 실력도 일등급이다. 새까만 선글라스와 가죽옷을 입고 인류를 지키기 위해 뱀파이어 사냥에 나서는 블레이드는 명불허전 뱀파이어계의 액션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케이트 베킨세일에게 여전사 아이콘을 부여한 영화 <언더월드>는 뱀파이어 여전사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의 종족 전쟁을 테마로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선보였다. 우아한 뱀파이어 전사단 ‘데스 딜러’에 소속된 셀린느는 타이트한 라텍스 슈트를 입고 현란한 무술을 뽐내며 섹시함까지 뿜어내는 인상적인 캐릭터. 또한 마늘, 십자가 등에는 강하지만 빛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설정이 더해졌다.
웃음을 전하는 뱀파이어
공포가 아닌 웃음으로 보는 이를 매혹시키는 뱀파이어들도 있다. 팀 버튼과 조니 뎁이 여덟 번째로 호흡을 맞춘 2013년작 <다크 섀도우>가 대표적이다. 1966~1971년 방영된 인기 TV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저주를 받고 200년 후 뱀파이어로 깨어난 바람둥이와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마녀의 판타지 코믹 공포 로맨스다. 조니 뎁이 분한 콜린스는 흡혈 행각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무서운 캐릭터지만, 200년의 시간 차에 멘붕을 겪으며 하는 짓마다 죄다 허당인 반전 매력을 보여준다. 조니 뎁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과 말투가 이 캐릭터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귀엽고 사랑스런 뱀파이어를 완성시켰다.
국내에서는 김수로를 앞세운 액션 코미디물 <흡혈형사 나도열>이 뱀파이어와 한국식 토종 코미디의 만남을 선사했다. 형사 나도열이 흡혈 모기에게 물린 후 성적으로 흥분하면 뱀파이어로 변한다는 황당한 설정을 바탕으로, 나도열이 평범한 인간에서 영웅으로 변하는 과정에 코믹 코드를 더한 것. 뱀파이어로 변신하기 위해 야동의 힘을 빌려서라도 흥분해야 하고, 완벽한 뱀파이어로 진화될 땐 눈동자가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빛에 약한 뱀파이어의 본성에 따라 나도열은 음지에 숨어 악한들을 물리치는데, 상황마다 김수로의 현란한 입담이 펼쳐져 B급 뱀파이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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