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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리뷰] <초록> 운명을 비집고 몰아친 근현대, 뒤늦은 개안 | 예스24

글 |이주영(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북극성 2026-03-06 1,166

이주영 문화 칼럼니스트가 한 편의 뮤지컬을 심층 분석하는 리뷰를 연재합니다. 


 

 

낙화놀이가 뭘까? 뮤지컬 〈초록〉(현지은 작, 박윤솔 작곡‧음악감독, 김태형 연출, 북극성 주관‧제작, 엠비제트컴퍼니 제작투자)을 보는 내내 궁금증과 호기심이 커져갔다. 작품 속 인물들이 한지에 검은 가루를 조심스레 뿌리고 정성껏 감싸 안아 함께 꼬아서 만드는 ‘낙화봉’과 기대에 찬 목소리로 언급하는 ‘낙화놀이’가 선뜻 상상되지 않는다. 객석을 나서며 검색해보니 낙화놀이는 극중 공간적 배경인 황해도 해주를 비롯 한반도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로 진행해온 전통 불꽃놀이다. <초록>에서 강조하듯 사월 초파일(석가탄일)에 지역공동체의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제례이자 축제였다. 천연재료인 숯가루와 한지로 만들어져 바다에 떨어져도 화학 불꽃놀이에 비해 오염도가 낮아 현대에도 지역 축제로 이어져내려오는 중이다. 한지에 숯가루를 잘 보듬어 꼬아 만든 낙화봉을 줄에 매달아 물 위에 걸어두고 횃불을 붙이면 불꽃이 금가루처럼 물 위로 쏟아져내리는 장관이 무대 위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이제야 제대로 이해되었다. 낙화놀이는 위를 향해 폭발하는 일반적인 불꽃축제와 달리. 빛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수면과 닿는 순간 마지막 숨을 다한다. 어둠을 뚫고 수중으로 가라앉으며 수면을 붉게 물들이는 ‘소멸의 미학’이다. 공중에서 흩어져 사라지는 찰나의 기세가 아닌, 뜨거운 재가 되어 차가운 수면과 충돌하며 빚어내는 역설적 아름다움이다. 격동의 시대를 거슬러 욕망과 꿈을 밀어 올렸으나, 결국 시대의 중력을 이기지 못한 채 스스로 침잠한 <초록>의 등장인물들 삶처럼 말이다.

 

 

희망을 분출하며 꿈에 다가선 순간들

작품은 섬광과 폭풍우로 시작된다. 번개 같은 조명이 어둠을 가르고 검은 도포를 입은 류인(이종석‧김찬종‧김재한 분, 영진과 1인 2역)의 형상이 등장과 동시에 사라진다. 이어서 눈을 가린 채 누더기를 걸친 토마(박규원‧손유동‧김지철 분)가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그는 동생 영진의 이름을 부르며 절망적으로 절규한다. 그 순간 서양식 코트와 스카프를 두른 유희(박란주‧이한별‧전민지 분)가 그를 붙잡는다. 토마는 바다로 뛰어들 듯 몸을 내던지고, 유희는 그를 끌어당기며 막아선다. 유희를 밀치는 토마는 “운명은 영혼을 잠식하여 수면 위로 내민 고개만큼 더 깊이 날 잡아당긴다. 발버둥친다. 끌어당긴다.”라며 절규한다. 첫 넘버 ‘운명’이다.

 

마치 낙화놀이가 끝난 후 재만 가라앉는 심해의 어둠과도 같다. 토마와 유희의 몸싸움으로 시작되는 프롤로그는 시대의 변화를 예감하게 하는 장치다. 유희가 착용한 서양식 코트는 근대의 감각을 품은 외부 세계를 상징한다. 반면 토마는 누더기를 걸친 채 안대를 하고 등장한다. 한때 바다의 흐름을 읽는 어부였던 그는 이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침잠의 상황이다. 유희는 그를 붙잡아 위험에서 끌어내려 한다. 사건이 이미 끝났다는 결론이 아니라, 어떤 세계가 끝장났는가를 보여주기위한 연출이다. 유희의 서양식 코트는 근대가 이미 유입된 이후의 ‘바깥세계’ 감각을 품고 있다. 반면 맹인 토마의 누더기는, 그가 겪어온 시간이 결국 ‘비가시성’으로 수렴했음을 상징한다. 근대의 옷을 입은 유희와 세계를 보지 못하게 된 토마. 시대의 전환 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두 인간의 운명을 압축하는 상징적 이미지이다.

 

과거의 해주 어촌은 활기찬 공간이다. 무대는 프롤로그와 정반대인 밝고 건강한 바다의 색채로 바뀐다. 비극을 예고하는 게 아니라, 희망이 어떻게 비극으로 전환되는지를 감각하기위한 전조같다. 1900년 초기 황해도 해주는 한성에 비해 일제 강점기의 옥죄임이 덜한 시공간이다. 가부장과 남존여비에 몸부림치며 자신을 증명하는 유희와 동생 영진을 위해 학비를 벌어야만 하는 토마는 개인의 욕망에 더 집중한다. 유희는 움직이기 편한 한복 차림에 오른손 소매를 걷어 올리고, 한 손에는 장부를 든 채 뛰어다닌다. 모자를 눌러쓰고 배의 임대 상황과 어획량을 조사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선주의 딸이라기보다 이미 선주의 일을 맡은 후계자에 가깝다. 그러나 공동체의 시선은 냉담하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의 손목을 흘끔거리며 수군댄다. 먹물 얼룩이 묻은 손목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내고 다닌다는 힐란이다. 뱃사람들 역시 그녀를 곱게 보지 않는다. “자기가 선주인 줄 아느냐”며 빈정댄다. 유희가 장부를 적으며 생긴 손목의 먹물 얼룩은 단순한 노동의 흔적이 아니라 ‘여성의 욕망이 가시화된 흔적’이다. 보수적인 공동체가 관습에 반하는 새로운 주체를 어떻게 낙인 찍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논하겠다는 저항과도 같다.

 

토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외지에서 이주한 토마는 녹색 눈에 하얀 피부의 혼혈인이라는 것으로 더한 차별을 겪었으나 비극적 인물은 아니다. 그를 향한 낯선 눈들은 극복 가능한 영역에 있다. 사람들은 그의 눈을 기이하게 바라보며 그 눈이 어디서 온 것인지, 어떤 혈통을 품고 있는지 수군거리지만 바다 위에서는 토마에게 의지한다. 물살의 방향과 바람의 변화를 몸으로 읽고, 어장이 형성되는 자리를 직감적으로 찾아내고, 그물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능수능란한 뱃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마의 초록 눈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공동체 안에서는 낙인의 표식이지만, 바다 위에서는 세상을 읽는 감각의 은유가 된다. 그에게 바다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가 처음으로 긍정되는 공간이다. 이런 토마에게도 첫눈에 반한 유희 외에 소중한 존재가 있다. 이부동생 영진이다. 한성에서 공부하는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토마는 바다로 나간다. 정형화된 대사인 “넌 공부만 하면 된다. 다른 건 형이 책임질 테니.”는 사실 토마의 삶을 계속해서 더 큰 성공과 성취로 밀어붙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사랑의 표현같지만 동시에 약속이자 속박이 된다. 토마의 만선을 향한 욕망은 단순한 출세욕이 아닌, 동생의 미래를 떠받치는 형의 책임이자 공동체 속에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류인이다. 토마의 내면에서 응축된 감정, 불안과 욕망,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어느 순간 인격을 얻어 형상화된 캐릭터이다. 이 작품이 여러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의 단골 아이템인 이중인격, 혹은 내면의 자아를 통해 무의식을 드러내는 심리극 형태로 읽히는 이유이다. 흥미로운 점은 류인이 처음부터 파괴적인 존재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토마를 적극적으로 돕는 조력자로 자리매김한다. 바다에서 살아남는 법과 만선을 이루는 길을 찾아준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비극의 씨앗도 동시에 싹튼다. 감정이 외부 인격으로 존재하게 되는 순간, 토마는 감정을 다루는 주체가 아니라 감정에 이끌리는 존재가 된다. 2막에서 폭발하는 질투와 망상은 사실 이때 이미 시작된 셈이다.

 

1막의 정점은 토마와 유희가 합심해 청상아리를 잡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음악과 움직임은 완전히 다른 에너지로 전환된다. 피아노 반주로만 시작되는 리듬 위에서 토마와 유희는 술 한잔으로 제를 올리고 서로를 바라보다가 바다를 향해 몸을 돌린다. 토마가 준비한 세 개의 미끼는 순차적으로 류인의 손에 의해 바다에 던져진다. 창과 낙시 바늘 역시 토마의 손을 거친 후 류인이 이어받아 상어를 관통한다. 동시에 류인은 부채를 활용해 꼬리와 머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물속에서 돌진하는 상어로 변신한다. 청상아리 잡이 장면의 화룡점정이다. 상어를 잡아 올린 직후 토마와 유희가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그들의 도전과 용기의 대가이자 당당하게 해주 공동체로 편입하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낙화에서 전기로, 이동하는 빛의 체계

초반에 언급했듯이 낙화놀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1막 초반 토마와 유희가 함께 낙화봉을 만드는 장면은 공동체의 축제를 준비하는 평온한 노동처럼 보이지만 비극의 기운을 품고 있다. 작품의 서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시대적인 압박과 공동체의 편견을 타파하고 꿈의 조건을 쟁취하는 1막의 상승과 희망의 드라마는 2막에 들어서면 비극의 기운을 뿜어낸다. 유희를 얻는 것이 꿈이었던 토마는 만선을 기록하고 유희와 함께 청상아리까지 잡아 공동체에 입성했으나 선주인 장인의 진정어린 인정까지 획득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해 꿈같은 나날을 보냈지만 동생 영진이 금의환향하여 장인의 인정을 받으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진다. 한때 토마의 빛이었던 동생 영진과 아내 유희의 관계를 오해하면서 촉발된 파국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토마의 망상이 영진을 죽음으로 이끌고 그들의 삶을 집어삼키는 순간, 등불이 전부였던 어둠의 해주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오는 극적 전환이다. 날로 시력이 떨어져 저녁에 조업을 못하는 토마를 위해 영진이 오랫동안 유희와 상의해 준비한 선물은 유품이 되었다. 토마와 몸싸움 끝에 널부러진 영진은 토마가 유희와 언쟁하는 동안 실족하고 만다. 영진을 집어삼킨 바다의 공간감과 깊이감을 실감케 하는 사운드 효과와 동시에 북과 드럼, 심벌즈의 사운드가 몰아친다. 한 시대가 열리듯 객석 뒤편에서부터 백열등이 하나씩 켜진다. 낙화놀이에 비할 바 없는 장관이자 이 작품의 백미이다. 객석 전체가 근대화의 물결인 백열등에 휩싸이고 관객들은 쏟아지는 근대의 빛에 부지불식간에 노출된다. 작품 안 세계관과 작품 밖 시대상을 동시에 체험하는 몰입의 순간이다. 무대까지 순차적으로 켜지는 백열등이 마지막에 다다른 곳은 바로 무대 위이다. 백열등 여러개가 드롭다운 형태로 유희와 토마 머리 위에서 켜지는 순간 이야기는 다시 오열하는 등장인물의 파국과 함께 사적 서사로 전환된다.

 

<초록>의 무대는 대형 장치보다 배우의 신체 움직임과 조명 디자인, 그리고 상징적 오브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소극장 창작뮤지컬이 흔히 취하는 방식이지만, 이 작품은 그 제한을 비교적 창의적으로 확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청상아리 장면이다. 실제 상어를 재현하는 장치나 역동적인 바다 영상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관객들이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게 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류인이 부채를 활용해 상어의 형상을 만들고 부채를 빠르게 회전시키며 꼬리의 움직임을 만들어 상체의 방향을 급격히 전환해 공격적으로 돌진하는 찰나의 움직임에 빠져든다. 토마와 유희의 동선 역시 상어의 움직임에 역동적으로 반응한다. 즉 상어는 무대 위의 ‘객체’가 아니라 배우들의 움직임 속에서 생성되는 존재다. 이 방식은 관객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호출한다. 속도와 리듬을 활용해 음악과 조명디자인, 시소같은 배와 섬세한 미끼 등의 소품을 동시에 활용해 일사불란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낙화놀이 장면 또한 주목할만하다. 실제 불꽃을 사용하는 대신 금가루가 바다를 상징하는 무대 벽면 위로 리드미컬하게 떨어지며 낙화의 이미지를 만든다. 조명은 금빛 입자를 반사하며 물 위로 떨어지는 불꽃의 잔상을 확장한다. 공동체에서 인정받기위한 제문 낭독 주체를 놓고 토마와 영진의 기세 싸움이 벌어지고 화려한 낙화 불꽃놀이는 절정에 달한다.

 

<초록>의 넘버들은 대학로 창작뮤지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팝 발라드 중심 구조와는 다소 다른 방향을 취한다. 이 작품의 넘버들은 선율 중심이라기보다 리듬과 레치타티보에 가까운 구성을 많이 활용한다. 특히 초반 넘버들은 대사와 노래의 경계가 비교적 느슨하다.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설명하는 레치타티보 형식은 심리극과 망상 부분에 집중되는데 극의 진행을 빠르게 만들면서도 인물의 심리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효과를 낸다. 대표적인 예가 1막의 ‘상어잡이’ 넘버와 2막의 '어쩌다 우리' 넘버이다. 1막은 토마와 유희가 합심해 해주 공동체와 가부장세계의 틀을 깨고 성공적으로 입성하는 청상아리잡이 장면이고 2막은 유희와 영진의 불륜을 상상하는 토마의 망상 장면이다. 피아노 건반의 리듬 패턴이 반복되다가 점차 악기가 추가되고 리듬이 확대된다. 북과 드럼과 심벌즈가 극적 전환에 섬광처럼 등장하는 방식도 주목할만하다. 청상아리를 잡기 직전 류인의 넘버인 ‘출정표’의 “휘~몰려온다, 휘~남서풍이, 휘~자욱하게” 장면과 영진이 사망하고 전기가 객석 뒤부터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장면 등 시대극의 운명적 전환에 주로 사용되는 이런 방식은 작품의 세계관과도 긴밀히 연동된다.

 

영진이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들리는 사운드 이스케이프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일반적인 물소리 대신 더 낮은 공명과 금속성 잔향이 섞인 음향이 사용되었다. 단순한 낙수 효과가 아니라 심연으로 깊이 가라앉는 느낌을 만든다. 관객은 물리적인 낙하가 아니라 감정적인 추락을 체험하게 된다. 전기가 들어오는 백열등 점등 장면은 바로 이런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더욱 극대화된 감정적 격동을 체험케 한다.

 

작품 설명에서 언급하듯 <초록>은 김동인의 단편 「배따라기」를 오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그 관계는 단순한 차용이라기보다 근대문학의 정서를 현대 공연 텍스트로 재배치한 시도에 가깝다. 「배따라기」는 바다와 항해, 그리고 형제 관계를 중심으로 한 서사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다루는 작품이다. 특히 동생과 형 사이의 관계, 그리고 여성 인물을 둘러싼 오해와 질투의 구조는 <초록>의 서사와 밀접한 한편 극명한 차이를 실감케 한다. 「배따라기」가 개인의 비극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다면, <초록>은 그 개인의 비극을 시대 변화의 맥락 속에 놓는다. 김동인의 작품이 근대문학의 출발점에서 인간의 욕망을 탐구했다면, <초록>은 바로 그 근대가 실제 삶의 공간으로 밀려오는 순간을 무대 위에서 체험하게 만든다. 「배따라기」의 바다가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초록>의 바다는 전통적 세계와 근대적 세계가 충돌하는 경계선이다. 

 

 

‘초록’의 다성성, 네가지 의미

<초록>의 비극은 단순한 질투의 결과가 아니라 근대라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균열로 읽힌다. 따라서 초록은 단순한 색채를 넘어, 인물의 운명과 시대의 흐름을 관통하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초록은 ‘낙인과 소외의 색’이다. 주인공 토마의 형안(炯眼)에 깃든 초록빛은 평범한 항구 마을 해주에서 그를 이방인으로 고립시키는 주홍글씨였다. 공동체의 낯선 시선과 의심은 토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초록을 차별과 배제의 상징으로 고착시킨다. 둘째, 초록은 ‘자연과 생명의 근원적 색’이다. 이는 숲과 들판을 가로질러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생명의 박동을 의미한다.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넘버 ‘초록 리프라이즈’의 “광야에서 숲까지, 숲에서 바다까지 초록이 말을 거네”처럼, 초록은 인간의 비극적 서사와 무관하게 도도히 흐르는 대자연의 시간을 드러내며 인물들의 고통을 묵묵히 응시한다.

 

셋째, 초록은 ‘질투와 파멸의 색’이다. 창작진들이 역시 오마주 했다고 밝힌바 있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가 정의한 ‘초록 눈의 괴물(Green-eyed Monster)’처럼, 토마의 내면에서 자라난 의심은 사랑을 잠식하고 끝내 유희와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낙인의 상처에서 피어난 열등감은 독성 어린 초록색 질투가 되어, 찬란했던 삶의 불꽃을 스스로 꺼뜨리는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초록은 ‘새로운 시대와 변화의 색’이다. 1900년대 초반, 낡은 세계의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의 파도가 밀려드는 격동기 속에서 초록은 멈추지 않는 성장을 상징한다. 찬란하게 타오르다 침몰하듯 스러지는 낙화의 운명처럼, 구시대의 인물들은 소멸해 가지만 그 비극적 토양 위에서 새로운 시대의 초록은 기어이 다시 싹을 틔운다. 비록 다가오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함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영진의 죽음 이후 토마는 자신의 눈을 찌른다. 그 도구는 칼도 창도 아닌 만년필이다. 만년필은 기록과 지식, 그리고 근대 문명의 도구다. 토마는 바로 그 도구로 자신의 눈을 찌른다. 근대의 도래 앞에서 자신이 더 이상 세계를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이자 근대를 거부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토마가 “내 불안, 내 질투, 내 욕망이 내 눈을 가렸다.”라며 성찰에 이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대단원의 성찰에 대해 토마 역의 세 배우들 해석도 3인 3색이다. 박규원은 저인망 그물처럼 깊이감 있는 저음부터 고음을 아우르는 벨칸토 발성으로 풍성한 감정을 전달한다. 손유동은 마치 TV문학관을 보는듯한 문학성을 드러낸 섬세 표정과 눈빛으로 절망을 전달한다. 김지철은 창작진들의 전작인 마당극 뮤지컬 <판>에 합류했던 호흡을 되살려 비움과 내려놓음의 공허함을 드러냈다.

 

뮤지컬 <초록>은, 가장 생명력 넘치는 ‘초록’의 찬가 속에서 가장 처절한 ‘소멸’의 미학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등장인물에게는 비극이지만 시대상으로 확장하면 순환의 이치와 닿아있다. 토마의 초록 눈이 대자연의 초록으로 회귀하며 스러지는 순간, 관객은 시대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은 한 인간의 삶이 남긴 지독한 여운과 마주한다. 유희가 끝내 맹인으로 홀로 살기를 선택한 토마에게 예를 전하며 담담히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역시 토마의 마지막 넘버를 통해 시대의 허망함, 그리고 순환하는 자연의 숭고함을 동시에 포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초록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한 인간의 정체성에서 시작해 세계의 시간으로 확장되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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