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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미션> 열린 뮤지컬 시장과 그 적(敵)들 [No.90]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상상뮤지컬컴퍼니 2011-03-08 5,180

공연 사상 최초로 관객 불만에 따른 리콜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미션>은 화제작이 되어버렸다. 지상파 9시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사건은 사건이었나 보다. 관객들의 항의로 게시판은 폐쇄되었고 인터넷 공간에는 이 공연을 고소하자는 과격한 선동까지 있었다. 하마터면 <미션>은 문화면이 아니라 사회면을 장식하는 공연이 될 뻔했다. 제작사에서는 주연 배우 교체와 코러스 보강 등 여러 가지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사실상 이 작품을 향한 관객의 평가는 끝난 셈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공연이길래?

 


직접 공연을 봤다. 대다수 관객의 평가대로 역시, 공연은 부실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 구축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습작 같은 각색, 무대 전환이나 스토리 연결의 미숙함을 넘어서 연기 공간 설정도 제대로 구획하지 않은 무책임한 연출, 기능적이지도 않고 조형적이지도 않으면서 심지어 예쁘지도 않은 거추장스러운 무대 세트, 아직도 이런 안무가 있나 싶게 민망하도록 촌스러운 앙상블 안무, 발성도 안되고 음정도 안 맞는 배우들의 빈약한 가창력 등등. 관객들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미션>은 화가 날 정도로 무성의한, 준비 안 된 공연임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함량 미달의 공연은 항상 있어왔다. 새롭게 올라가는 공연의 질이 어떻게 매번 훌륭할 수 있겠나. 초연의 모양새로 보자면 오히려 <미션>보다 더한 공연도 적잖았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이 이렇게 매서운 적은 없었으니 가장 드러나는 이유는 아무래도 <미션>의 과장 광고와 과대 포장이 아닐까 싶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생애 최초 뮤지컬’일 뿐 아니라 120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월드투어 오리지널 뮤지컬’로서 ‘유럽 최고의 제작진’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인 초대형 뮤지컬이라는 뻑적지근한 광고. 거창하긴 해도 이런 식의 광고에 워낙 익숙했던 터라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할 수 있다. 과대 포장의 백미는 역시 티켓 가격이다. 최고가 20만 원이라니. 이건 세계 일류 공연을 볼 수 있는 값이다. 티켓 가격이란 최고의 배우, 최고의 무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만든 이들의 자신감과 자부심에 대한 관객의 경외와 인정을 객관화한 것이다. 그런데 <미션>팀은 다른 것 하나 없이 오로지 자신들이 들인 제작비만을 기준으로 삼아 가격을 설정했다. 아마도 ‘세계를 겨냥하여 10년을 계획한 공연’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는 가격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다 좋다. 그렇다 치자. 문제는 이런 표어가 현실태가 아니라 가능태라는 데 있다. 미래에는 어떻게 작품이 나아질지 모르겠으나 지금 현실의 공연은 미숙한 습작에 불과한데도 가격은 현실태가 아닌 가능태를 기준으로 매긴 것이다. 가능태는 현실태의 밑그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확실함을 포함한다. 좋은 공연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처럼 말하려면 뭔가 근거가 있어야 하는 법.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근거를 어느 한구석에서라도 보여주어야만 한다. 관객이 들인 비용이 미래를 향한 투자인지 아니면 선구안 없이 당한 ‘낚시’인지의 경계선은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말이다. <미션>에서는 그 ‘하나의’ 근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것은 이 작품의 추상적인 목표와도 관련이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목표가 분명하다. 해외 뮤지컬계의 숙련된 노하우를 접목해서 훌륭한 콘텐츠를 우리 힘으로 만드는 것, 그러한 작업을 위해 과감한 물량을 투입하는 것, 그리고 그 작품을 들고 뮤지컬의 본고장인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 당당히 입성하는 것, 국내 관객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로서 장기적인 흥행을 일구는 대표작이 되는 것 등등. 이런 목표가 가능한 것이 되려면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실행 과정을 거쳐야 할 터이다. 하지만 <미션>은, 목표를 세우는 것에는 유능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데는 너무나도 무능했다.

 

하나씩 따져볼까. 그들이 내세운 ‘유럽 최고의 제작진’은 대본과 연출, 노래와 안무 전반에서 아주 볼품없는 작품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영화의 중요한 부분만 따온 채 전후 맥락이 홀랑 생략돼버린 대본은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극의 전개에 따른 인물의 중요성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 정작 멘도자 같은 중요 인물의 대사는 거의 없앤 채 쓸데없는 장면과 중요하지 않은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무리수는 단연 돋보였다.(카를로타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이냐!) 사건을 극으로 구성하는 능력은 전혀 없이 오로지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설명하는 재주 또한 탁월했으니 이 극의 지루함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장면 전환은 물론이요 배우들의 등퇴장을 비롯해 음악과 이야기의 연결에서도 개연성을 만들어내지 못한 빈약한 연출력 또한 예사롭지 않았지만 그중 압권은 대사도 노래도 없는 전투 장면이었으니, 이 긴박감 넘쳐야 하는 장면에서 모든 배우들이 묵언 수행하는 것을 보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압권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일단 뮤지컬을 표방한 공연에서 이렇게 노래가 적을 수는 없는 것이고, 이다지도 극과 상관없을 수도 없는 것이며, 가창력 또한 이렇게 빈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립싱크의 귀재 ‘과라니’앙상블은 노래조차 하지 않더라. 엔리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이 아름답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의 음악 몇 곡으로 두 시간 넘는 시간을 채운다는 것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었다. 그의 아들이 몇 곡을 더 작곡했다고는 하지만 음악적 존재감은 미미했다. 뮤지컬 음악이라기보다는 영화 배경음악에 가깝다고나 할까. 엉덩이를 다 드러내면서 과라니족을 연기한 배우들의 투혼을 비웃는 촌스러운 안무도 모른 척 넘어가진 못하겠다.

 


이쯤 되면 ‘유럽 최고의 제작진’과의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호해진다. 혹시 세계 진출을 위한 전략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적인 작품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네들의 이름값이 아니라 작품의 보편적인 가치이다. 보편성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뮤지컬의 보편성이란 말이 되는 대본에 맥락 있는 음악, 그리고 볼 만한 무대와 노래 잘하는 배우에 다름 아니다. 기본을 튼실하게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굳이 외국까지 가서 적잖은 돈을 쏟아부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들의 무대를 보면서 느낀 것이라곤 저 동네도 창작자들의 상상력이 대단히 부족하구나, 라는 사실을 확인한 정도랄까. 차라리 국내에서 이 정도의 물량으로 승부를 걸었더라면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과라니족으로 캐스팅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면 흥행했을 텐데.


결국 <미션>은 작품의 기본을 다지는 노하우도, 작품의 완성도도, 관객의 선택과 신뢰도 얻지 못했다. 규모로 보자면 아주 큰 실패를 경험한 셈이다. 이런 실패에서 새롭게 깨닫는 배움이 없다면 이것은 뮤지컬 시장을 더 깊은 침체로 가라앉히는 계기밖에 될 수 없다. 대규모 제작에 대한 투자도,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도 점점 더 어려워지겠지. 그러니까 <미션>은 더 나아져야 할 책임이 있다. 사실 <미션>만큼 뮤지컬에 잘 어울리는 텍스트도 드물다. 인간의 악함과 선함이 교회와 정치라는 제도 속에서 부딪히고 문명과 야만이 그 위치를 뒤바꾸는 이야기는 굉장히 극적이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 핵심적인 모티프는 바로 음악이다. 야만과 문명이 서로의 맘을 여는 계기도 음악이고, 인간다움의 가치를 발견케 하는 것도 음악 아니던가. 마지막 장면에서 살육과 폭력의 와중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야만의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세상으로 더 깊이 숨어들 때 손에 쥔 것은 바이올린, 바로 음악이었다. <미션>이 영화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버릴 것과 벼릴 것을 잘 구분해서 다시 길을 잡아야 할 거다. 지금 필요한 건 결단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0호 2011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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