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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셜록홈즈> 연출가 노우성 [No.109]

글 |배경희 사진 |이맹호 2012-10-09 4,531

 

 

창작뮤지컬의 가능성

 

지난해 9월 개막한 소극장 창작뮤지컬 <셜록홈즈-앤더슨가의 비밀>을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낯설고 작은 뮤지컬은 개막과 동시에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하여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공연에 대한 애정과 끈기 하나로 공연계의 블루칩으로 새롭게 떠오른 사람, <셜록홈즈>의 연출가 노우성을 만났다.

 

 

 

지난해 <셜록홈즈-앤더슨가의 비밀>로 모든 뮤지컬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다. 영광의 한 해가 아닐 수 없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상복이 터졌다. 하하. 너무 감사드릴 일이다. 그런데 상은, 수상하고 딱 15분만 좋은 거 같다. 수상하는 순간은 굉장히 행복하지만, 상을 받고 난 다음부터는 무게가 확 실리더라. 이 정도 하면 상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어떤 기준점이 됐다는 느낌, 거기서 오는 무게감이 있다. 시즌 1도 더 완성도 있게 올려야 할 거고, 시즌 2는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부담감이 크다.


안 그래도 지금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시즌 2에 대한 이야기다. 당초 계획보다 계속 늦어지는 이유가 뭔가.

무대 운용이 가장 큰 이유다. 시즌 1은 중극장을 목표로 소극장에서 시작하고, 2는 대극장을 목표로 중극장에서 출발하고, 3은 아예 대극장에서 시작하자, 애초에 이렇게 계획을 잡았다. 그런데 시즌 2 대본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보니 이 작품을 중극장에서 공연하게 되면 텍스트대로 온전하게 올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중극장에 어떻게든 구겨 넣으면 할 수 있겠지만 시즌 1에서 공간이 작품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험을 겪어봤기 때문에 이번엔 일정을 미루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작업은 40퍼센트 정도 완성됐고 내년에 대극장에서 올리는 걸 목표로 열심히 작곡가를 괴롭히고 있다.


이야기 규모가 커진 건가.

그렇다. 출연 인원도 훨씬 많아질 거다. 시즌 1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최대한 관객을 배려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추리물이라는 낯선 장르를 다루는 창작 초연이다 보니 관객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러브 스토리도 넣은 거고. 그런데 시즌 1이 어느 정도 성공했으니 관객들을 믿고 시즌 2에서는 본격적으로 홈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본격 스릴러 장르 뮤지컬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미 벌어진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가를 추리하는 과정이 시즌 1이었다면, 시즌 2는 홈즈가 범인의 범행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두뇌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다. 이 지점에서 스릴러가 만들어지는 거고.

 

<셜록홈즈>가 개막하던 시기에 다양한 소재의 소극장 뮤지컬이 나오기 시작했고, <셜록홈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그런 움직임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영화 쪽도 시장이 발전하면서 소재가 다양해지지 않았나. 창작뮤지컬이 지금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다. 획일화된 소재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재를 개발하고 있고, <셜록홈즈>의 성공이 그런 부분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셜록홈즈>는 창작자가 중심이 돼서 개발된 프로젝트이다. 원래부터 <셜록홈즈>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셜록홈즈>는 창작자가 중심이 돼 작업이 됐지만, 어떻게 보면 철저한 기획 작품이기도 하다. 노우성이라는 작가가, 연출이 하고 싶은 작품이 있지만, 내 뜻대로 작품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우리의 실력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언어로 관객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해야 하는데 그런 매개체가 무엇인가, 이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셜록홈즈>가 선택된 거다. 홈즈가 너무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또 몇 년 고생해서 창작뮤지컬 한 편 만들면 몇 달 안에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하면 한 작품을 오래 공연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시즌제라는 컨셉이 나온 거다. 여름이니까 스릴러를 해보자, 시즌제 뮤지컬을 도입해 보자, 이런 걸 생각하다가 <셜록홈즈>를 떠올리게 됐다.     


3년 전에 소재를 선택한 건데 개막 당시, 때 아닌 <셜록홈즈> 열풍이 불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셜록홈즈>라는 소재를 떠올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셜록홈즈>를 이 시기에 선택했다는 게 기획적으로 굉장히 멋진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홈즈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나선 코난 도일이 쓴 그 많은 시리즈 중에서 어떤 것을 할까,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원작이 훌륭하긴 하지만 너무 고전적이라 그대로 가지고 오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물만 가져오고 이야기는 새로 쓰자는 결론을 내렸다. 아직은 내가 창작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으니까. 하하. 나중에 나이 좀 먹고 창작할 힘이 없을 때 원작을 보물 창고처럼 꺼내 쓰자, 이런 생각을 한 거다.

친숙한 인물을 가지고 새로운 에피소드로 꾸며서 관객의 호기심을 이끌어낸 것이 성공 요인이 아닌가 싶다. <셜록홈즈> 시리즈는 시즌 3으로 완결되는 건가.

시즌 4를 할 수도 있고, 시즌 5를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말년의 홈즈를 그리고 싶다. 진갑이 넘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홈즈, 죽기 직전의 홈즈, 이런 모습을 그리고 싶다. 시즌제 뮤지컬이니까 나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고 나이 들어가는 것에 맞춰 어울리는 이야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그때 이 원작이라는 보물을 잘 꺼내 쓰려고 지금은 아껴두고 있다.

 

<셜록홈즈> 초연이 성공한 데 배우들 팀워크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배우 오디션 방식이 독특하다고 들었는데.

모든 배우들의 평균 오디션 시간이 한 시간 이상인데, 배우들이 무척 당황해 하더라. 내가 나이를 더 먹으면 한번 보고도 ‘아 저 친구는 뭐다’ 이렇게 알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짧은 시간만 봐서는 음색, 대본을 접근하는 방법, 이런 기본적인 것 이상을 알기 힘들다. 긴 대화를 나눠봐야 내가 이 배우와 같이 갈 수 있겠다는 게 보이는 것 같다. 배우마다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른데, 그 방법에 대해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느냐가 공연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그건 두 달이라는 연습 기간에 “우리는 하나야”를 외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소통의 통로가 잘 만들어질 수 있느냐 확인하는 거다. 그런데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이번 재공연 때는 오디션 시간이 좀 줄었다. 


추리물을 뮤지컬로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확신을 갖기 전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고민이 많을 땐 문제를 아주 단순화한다. 추리물이라고 했을 때 관객들이 기대하는 요소가 많지 않나. 긴장감이나 반전 같은 것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걸 다 따라가기엔 나의 작가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더라. 사실 ‘앤더슨가의 비밀’도 텍스트만 놓고 따지면 추리 소설에 비해 굉장히 떨어진다.


쿨하게 인정하는 건가. 하긴 공연 대본은 그 자체로 완성된 문학이 아니니까.

물론이다. 책만 놓고 따지면 얼마나 훌륭한 추리물들이 많은가. <셜록홈즈>가 가치를 발하는 건 공연이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는 동안 이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는 공연이라는 사실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관객은 홈즈라는 인물과 같은 공간에 있으며, 범인과 같은 공간에 있다, 내가 초점을 맞춘 건 이 부분이다. 공연과 책의 가장 큰 차이는 공연을 볼 땐 관객은 현재에만 집중한다는 거다. 책은 읽다가 되돌려 볼 수도 있지만 공연은 그럴 수가 없다. 그 점이 텍스트가 지닌 허점을 채워줄 수 있다. 관객은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게 되니까 그때 얼마큼의 에너지를 주느냐에 따라 과거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앞의 내용을 예측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공연으로서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넣었겠지만 가장 크게는 셜록 홈즈 캐릭터 자체를 원작과 다르게 천재 괴짜로 만들었다.

나는 원작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내가 본 홈즈는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그중에서 공연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가지고 와 극대화하다 보니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그려졌다. 홈즈는 진지하고 심각해야 되는데 쟤 왜 저러냐는 관객도 있었지만, 원작에 아예 없는 캐릭터는 아니다. 예를 들어 홈즈는 사건을 만나면 아이 같고, 다른 일 할 때는 힘들어하지 않나. 그런 모습을 극대화한 거다.


왓슨을 여자 캐릭터로 바꾼 것도 뮤지컬이라는 걸 감안한 설정이었나?

공연 개막 전,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건 왓슨이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인터넷에서 미쳤다는 이야기도 많이 봤다. 급기야 한국에서는 왓슨이 여자로 나온다는데 둘이 러브 듀엣을 부르는 거 아니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이야기들. 셜록 홈즈 팬이라면 우려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셜록 홈즈와 왓슨 캐릭터를 공연이라는 장르에 녹여낼 땐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소설은 왓슨을 통해 홈즈를 바라보지만, 공연에서는 내 눈앞에 홈즈가 있으니까 서술자라는 왓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상실된다. 어떻게 하면 왓슨이 홈즈 옆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 될까 고민한 결과다.그리고 사실 홈즈는 이성적인 인물이라 어떻게 보면 뮤지컬에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다. 홈즈의 감성적인 창구를 찾는다면 동료 왓슨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남자 듀엣이 너무 싫었다. 하하. ‘All I Want’를 남자 둘이 부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괴로웠다. 음악적 밸런스를 위해서도 여자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두 사람 사이에 러브 라인은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비로 제작비를 충당할 만큼 무리해서 제작을 고집한 이유는 뭔가.

우리는 공연 제작을 목표로 하는 팀은 아니다. 그런데 무리해서 제작을 한 이유는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브로드웨이의 훌륭한 작품을 보면서 너무 부러웠다. 우리도 언젠간 저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 중인 아티스트들과 교류해 보니 더욱 그런 확신이 드는 거다. 우리나라 창작자들이 외국 스태프들보다 개인적인 능력은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공연이라는 건 한 사람의 뛰어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힘든데,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제작자 여러분 우리나라에 좋은 아티스트들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아티스트를 쓰세요. 잘 묶어내면 저들이 정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걸 증명하고 싶었다. 한창 라이선스 작품만 하고, 외국인 연출가, 작가, 작곡가, 편곡가가 넘치던 시기가 있지 않았나. 우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궁극적으로 노우성이 하고 싶은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나는 일출보다 일몰을 좋아한다. 그래서 젊은 남녀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보다는 소외된 사람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삶의 무게가 담겨있는 그런 작품. 언젠간 하겠지.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9호 2012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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