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는 어제의 추억, 어제의 상처가 있다. 오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으로 어제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면, 그는 무척 소중한 사람이 될 것이다. <예스터데이>는 티격태격 사랑을 키워가던 석현과 은경, 그리고 미스터리한 조선족 류진운이 각자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다. 훈훈한 결말에 닿기 직전까지, 곳곳에 산재한 유머 폭탄 덕에 리딩 공연날 객석 분위기는 내내 밝았다.
{�작품 소개�}
석현의 아킬레스건은 실패한 첫사랑. 군대에서 짝사랑했던 상관과 헤어지고 제대한 그는 선배가 운영하는 학원의 강사로 일을 시작한다. 학원 수강생인 은경은 석현이 쉽게 감당하기 힘든 당찬 소녀. 하지만 입시 문제로 두 사람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한편, 약혼녀 미우가 늘 흥얼거리던 노래를 부르는 석현에게 가사를 알려달라고 부탁한 진운. 약혼녀를 따라 서울에 온 진운의 가슴 아픈 사연과 은경의 잊지 못할 상처가 드러난다.
신선했던 뮤지컬 창작 경험
리딩 공연을 올린 소감부터 물어보겠다.
엄경석 리딩 공연을 통해 이 작품이 앞으로 더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공연도 못 해보고 무너질까봐 엄청 긴장됐다.
이아람 대본만 보고 혼자서 상상했던 장면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니까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서 좋았다. 드라마의 흐름을 한눈에 죽 볼 수 있었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도 보이더라. 대본에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장면이 생각지 못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혼자 곡을 써놓고선 ‘이게 먹힐까’ 조마조마했는데, 객석에서 빵 터질 땐 무척 좋았다.
<예스터데이>의 시작은 연극 대본이었고, 작가 본인의 경험담이라고?
엄경석 군대 전역한 후에 내게 있었던 일들을 거의 그대로 녹여서 썼고, 한예종 연극원 졸업 작품으로 내게 됐다. 그땐 좀 가벼운 작품을 써보고 싶었다. 재학 시절에 경험한 것은 사회 풍자 요소가 들어간 블랙 코미디 위주였는데, 깊이 있는 작품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달까. 이전에는 뮤지컬에 별로 관심도 없었다. 학교 선배인 (장)유정 누나 덕에 뮤지컬 관련 일을 하며 배웠는데 재밌더라. 올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창작 지원을 받아 처음 쓴 뮤지컬 <유 앤 미>를 올렸고,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선 <예스터데이>를 선보이게 됐다. 두 작품 모두 이아람 작곡가와 함께 만들었다.
엄경석 작가는 연극을 먼저 경험했고 이아람 작곡가는 실용음악을 전공했는데, 뮤지컬 작업의 매력과 괴로움은 어떤 것이었나?
이아람 뮤지컬은 두 작품을 만든 게 전부인데 재밌더라. 가요나 영상 음악을 작업할 때랑 다른 점은 드라마와 음악이 만난다는 것이었다. 드라마의 흐름 속에 가사와 멜로디가 녹아들어 가는 게 매력적이더라. 가요의 경우, 내가 원치 않아도 사랑 이야기를 써야 한다거나 대중들이 좋아하는 멜로디 라인이나 트렌드를 쫓아야 할 때가 있어서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게 아니라 힘든 점도 있었다. 드라마를 이해하는 정도가 일반 관객 수준이다 보니, 캐릭터를 파악하는 데 부족한 면도 있고. 좀 더 드라마를 잘 이해하고 곡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엄경석 뮤지컬 대본은 퇴고 과정이 엄청 길고 힘들더라. 가사 하나, 장면 하나 수정하는 게 연극 대본보다 훨씬 어렵더라. 가사를 아무리 잘 썼다고 생각해도 작곡가가 만든 곡과 맞지 않으면 다시 써야 하고, 그 장면에 연출이 가미되면 또 바꿔야 했다.
뮤지컬에서 협업이 중요한데, 혼자 작업하다 여러 사람이 모이니 어려운 점은 없었나?
이아람 다른 팀은 싸우기도 한다는데 우린 그런 일은 없었다. 특히 작가님이 의견 수렴을 잘해서, 서로 편하게 의견을 공유했다.
엄경석 일단 내가 악보를 못 본다. 주신 곡을 들어보면, 좋더라. 알아서 잘 해주셨겠지, 믿고 따랐다. (일동 웃음) 어설프게 알면 나서서 일을 그르칠지도 모르잖나. 오히려 믿고 맡기는 게 좋았다. 리딩 공연을 올리고 보니, 배우와 연출가 덕을 많이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이 무척 잘해줬고, 연출가가 대사를 약간 잘라 내거나 장면을 옮겨 배치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가 더 좋더라. 역시 각자의 역할이 있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좋은 작품이 된다는 걸 몸소 배웠다.
<예스터데이>의 어제와 오늘
<예스터데이>는 처음 공모에 제출했을 때부터 리딩 공연까지 어떤 변화를 겪었나?
엄경석 학교 다닐 때 <예스터데이>를 뮤지컬 대본으로 바꿔보라고 하셨던 이희준 선생님께 전문가 리뷰를 받았다. 뮤지컬 극작에 대해 모르다보니, 엄청 혼났다. ‘가사를 이렇게 쓰면 작곡가가 곡을 못 쓴다’, ‘대사를 노래 가사로 바꿔라’ 등 기본적인 것부터 배우고 엄청 많이 고쳤다. 그런데 그게 힘들었다면 포기했을 텐데, 정말 재밌는 거다. 그동안 해보지 않은 일을 배우고 차근차근 따랐는데, ‘아, 이 장면이 노래가 되는구나’ 놀라웠다. 선생님께서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셨다. ‘대사가 두 페이지 이상 넘어가면 안 된다’ 이런 걸 누가 가르쳐주겠는가. (웃음)
이아람 음악에선 전체적으로 톤을 맞춰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 처음 작업할 때, 장면별로 따로 곡을 썼다. 놀이동산 장면이라고 하면 거기에 맞는 곡을 쓰고, 이별 장면에선 또 그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장르도 제각각이고, 음악에 통일성이 없더라. 다양한 장르를 취하더라도, 각 장르의 장점을 살리면서 전체 음악의 색깔을 하나로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써서 수정했다.
과거의 아픔을 가진 세 사람이 만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다. 관객들이 세 주인공 각자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세 사람의 사연이 제각각 따로 놀아서 셋이 엮이기엔 부자연스러운 데가 있었다. 세 사람이 서로 공감하는 지점이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중심 드라마에 관객들을 몰입시키지 못하고, 부수적인 장면에서 더 큰 반응을 이끌어내서 아쉬웠다.
엄경석 처음에는 진짜 거의 엮이지가 않았다. 류진운은 그저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일 뿐이었고. 전문가 조언을 받고 수정하면서 이 정도로 발전한 건데, 쇼케이스를 보니 확실히 셋의 관계가 더 긴밀해져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꼭 같은 사건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정서가 하나로 만나는 지점이 선명하게 보이면 좋을 것 같다.
이아람 극 중에서 ‘Yesterday’라는 노래로 석현과 진운이 교감한다. 쇼케이스에서 생략된 부분이 있는데, 약혼녀였던 미우와 진운의 관계에서 ‘Yesterday’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주인공들이 노래로 엮인다는 걸 더욱 부각시켜 보여주면 될 것 같다.
‘Yesterday’는 극 중에서 올드 팝으로 등장하는데, 정말 실제 팝송처럼 들렸다.
이아람 나도 인터넷으로 관객 리뷰를 찾아봤는데, 몇몇이 실제 팝송인 줄 알고 찾아봐야겠다는 글을 남긴 걸 봤다. 성공했구나, 기뻐했다.
발랄하고 재밌었던 ‘그런 Girl’과 ‘그렇군’, 익숙한 느낌의 ‘총상’ 등 편하게 듣기 좋은 음악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아람 듣기 쉬운 음악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예스터데이>
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라서, 어려운 장르를 택하기보다는 듣기 편하고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Girl’은 펑키 디스코, ‘그렇군’은 랩, ‘총상’은 전형적인 록 발라드 등 다양하지만 익숙한 장르이기도 하다.
리딩 공연을 마쳤는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둬서 수정할 생각인가?
엄경석 곧 리딩 공연에 대한 전문가 리뷰 및 관객 설문 결과를 받게 되는데, 그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발전시킬 거다. 아직은 시작하는 단계라 못 보고 놓치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들의 도움을 적극 받아야지. 개인적으로는 ‘총상’이 나오기 전까지 묘한 무게감이 느껴지더라. ‘총상’과 ‘CJ LAND’에서야 관객들이 긴장을 풀고 웃기 시작했다. 진지한 작품이 아닌데 관객들이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달까. 초반에 늘어지고 지루하단 느낌이 들어서, ‘총상’을 앞부분에 배치한다든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이아람 엔딩곡인 ‘간직될 어제’를 가사만 바꿔서 오프닝 곡으로 배치해보면 어떨까 한다. 극이 좀 더 명확해지고 통일성이 생길 것 같다. 음악이 다양한 장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리딩 공연 때처럼 일반적인 밴드 구성이 톤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엄경석 내년에 예그린 앙코르에 참가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가려면 미리 준비를 단단해 해둬야 한다. 예그린 앙코르에서 일등해서 충무아트홀 공연장 대관과 상금을 받는 게 나의 목표다. 이제 일 년 남았다! (일동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0호 2013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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